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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Jun 15. 2020

취직하고 싶지만 취직하기 싫다

돈 한 푼 못 버는 출근이 시작됐다

회사를 그만둔 지 다섯 달이 돼 간다. 실업급여는 7월까지 나오고, 6월 즈음부터 회사를 알아봐야겠다는 계획을 얼마 전부터 실행했다. 4개월 정도 그야말로 '아무것도 안하고' 아내,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야 알았다. 육아와 가사노동은 직장생활보다 훨씬 고되다.


적어도 이전 회사에서 받은 만큼의 연봉은 받아야지, 출퇴근시간 30분 이내 거리의 회사를 찾아야지. 라는 식의 목표가 있었다. 7월까지 새 회사에 입사하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퇴직금도 모아둔 돈도 좀 있고, 아내가 결혼 후 오픈하지 않은(!) 비상금도 있다. 거기다가 재난지원금까지 받고 보니 그럭저럭 살 수 있다. 올해 연말까지 쭉 쉬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쉬는 게 쉬는 게 아니란 거다. 열다섯 평이 채 안되는 투룸에 오롯이 내 공간은 없고,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를 돌보며 보낸다. 당연히 19개월이 된 아이는 더할나위 없이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자는 시간을 빼고는 그 녀석의 '평안'을 위해 모든 걸 챙기는 게 녹록지 않다. 아내는 나의 백수 상태에 별로 불안을 느끼지 않는데 정작 내가 달라진 이유다. 이렇게 가정주부로 있다가는 우울증에 빠져버릴 것만 같다.


그러고 보면, 퇴사 이전의 아내와 우리 엄마를 포함해 세상의 모든 독박 육아맘들의 헌신은 경이로울 정도다. 개인적 보상도 성취도 없는 그 고된 노동을 묵묵히 해왔다는 게 사무칠 정도로 슬프다. 돈 벌어온답시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내에게 아이를 맡긴 나는 아무리 '돕는다' 해도 다 갚지 못할 빚이 있다.

 

점심식사 이후 오후 시간대에 집을 나서 구직활동을 하고 있는 게 맘 편치 않은 것도 그래서다. 노트북을 몇 시간씩 들여다보며 입사할 만한 회사를 찾는데, 문득문득 집에서 아이와 씨름할 아내 생각에 미안해진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새로 쓰고 하루에 열 개는 되는 회사에 지원하다가도 '덜컥 붙어버리면 어쩌지' 하는 걱정마저 든다. 예상보다 빨리 회사에 들어가야 하는 날이 오면 난 하루아침에 다시 '바깥사람'이 될 테니까.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지원한 언론사에서 면접 제의가 왔다. 이전 회사를 끝으로 다시는 기자 따위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뭐 일단 면접만큼은 보기로 했다. 워라밸이 무너지는 것도 싫고 '빨아주는' 글 쓰기도 싫지만 희망연봉을 충족한다면 들어가버릴 지도 모른다. 그렇게나 다른 업계의 문을 두드렸는데 결국 연락 온 건 다시 언론사라니. 나이 서른일곱의 낯선 경력직 지원자가 이렇게나 매력이 없는 존재구나 싶다.


그러니까 혹시라도 당신이 기업의 브랜드마케터·카피라이터·에디터·스토리텔링 분야 채용 담당자라면 어서 연락주길 바란다. 가능하면 출근은 7월 이후에 하면 좋고, 좀 더 늦어져도 괜찮다. 서로 가능성만 확인한다면야 돈이나 지위 같은 문제는 조율할 용의가 있다. 어찌됐건 하루빨리 '돈도 못 벌면서 카페로 출근하는 남자'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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