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가 해준 음식을 먹는다는 것
"이거 먹고싶지 않아." 내가 차린 점심식사 메뉴를 보고 아내가 말했다. PT를 받으며 저탄수화물 식단을 실천 중인 아내를 위해 자그마치 '실곤약 닭가슴살 비빔국수'를 식탁 위에 올린 결과였다. 순간 말할 수 없을 만큼 불쾌해져서 툴툴거렸다. "그럼 버려"라고.
2년이 좀 넘은 결혼 생활에서 느낀 것 중 하나는, 결혼 생활이란 '끊임없이 차이를 발견해 나가는 일'이란 점이다. 화장실 변기 옆에 두루말이 휴지를 거는 방향, 아이의 장난감과 동화책을 정리해 두는 위치, 식사 후 설거지를 하는 것과 커피를 마시는 것 사이의 우선순위 등등등. 지금껏 사소한 차이들을 하나하나 알아 왔고, 여전히 알아가는 중이다.
식습관과 입맛은 이 수많은 차이 중에서도 가장 민감한 문제다. 나는 향신료나 양념을 사용한 볶음 요리를, 아내는 된장찌개나 콩나물국 같은 걸 즐겨 한다. 그야말로 극과 극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스스로 해서 먹어야 한다는 얘긴데, 그러기엔 너무 비효율적이다.
육아와 가사를 병행하는 현실 속에서 더이상 우리 부부에게 요리는 취미가 아니다. 아이에게 먹일 음식을 준비하다 보면 나와 아내의 식사는 그야말로 '허기를 채우기 위해' 떼우는 끼니가 되기도 한다. 다이어트를 위해서라곤 해도, 씽크대 앞에서 삶은계란이나 미숫가루를 '흡입'하다 보면 개인으로서 품위를 잃어버리는 기분까지 든다. 모처럼 제대로 된 요리를 해서 먹는 시간이 소중한 이유고, 그렇게 만든 요리가 아내에게 인정받길 바라는 이유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 역시 내 요리를 달가워하지 않는 아내에게 토라질 자격은 없다. 요리하는 아내를 두고 이런저런 잔소리를 한 적도 있고, 완성된 음식을 먹는둥마는둥 하기도 했다. 종종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해 주면 좋을텐데'라는 생각에 섭섭한 마음도 든다.
결혼 이전엔 제대로 자취 한 번 해본 적 없는 아내와 내가 만들 수 있는 요리는 터무니없이 한정적이다. 당연히 '내 취향이 아닌' 배우자를 위한 메뉴를 요리하는 건 우리에게 꽤 무리한 일이다. 인터넷 레시피를 보고 새로운 메뉴를 시도해 보는 것도 아이를 돌보는 와중에는 좀처럼 쉽지 않다. 아이가 잠든 뒤 늦은 저녁을 차리기는 귀찮고, 배달 음식으로 해결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결론적으로 배우자로 하여금 내가 원하는 요리를 해주길 바라는 건 욕심이다. 함께 할 식사를 준비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운 일이고, 우리 각자의 식성이 만고불변하는 것도 아니니까. 내가 맛있는 걸 상대방도 맛있게 먹어주길 바란다면, 상대방의 요리 역시 맛있게 먹어야 한다. 바라건대, 그러다 보면 언젠가 둘의 취향이 겹쳐지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