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서 돌아봐야만 느낄 수 있는 온기
생방송을 진행하는 베테랑 스포츠 기자 브루스(브루스 박스라이트너 분)는 매사에 남다른 승부욕을 지닌 한 가정의 가장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브루스는 고등학교 농구 선수인 아들 제이슨(켄턴 듀티 분)의 시합을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고, 시합 중 제이슨을 향한 판정에 불복해 코트까지 뛰쳐나와 심판에게 항의한다. 이 과정에서 브루스는 우발적으로 심판의 코를 부러뜨리고 이 장면이 동영상으로 촬영돼 퍼지면서 대중의 질타를 받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고소까지 당한 그는 생방송 앵커 자리에서 하차하고, 법원으로부터 사회봉사 명령을 받아 구세군 본부에서 봉사 활동을 하게 된다.
영화 <실버벨>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할리우드 크리스마스 영화다. 부부와 두 자녀로 이루어진 오붓한 4인 가족이 중심에 있고, 이들이 갑작스레 닥쳐온 고난과 갈등을 극복하는 과정을 그린다. 가족애와 인간애가 동시에 작동하면서 결국에는 사랑으로 충만한 가정과 사회로 귀결되는 전개는 퍽 익숙하지만 언제나처럼 마음을 녹이는 데에 유효하다. "크리스마스에는 사랑을,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이란 노랫말처럼, 이 영화는 '크리스마스가 있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러한 영화의 온기를 담아내는 가장 큰 그릇은 역시 주인공 브루스다. 영화 초반부 브루스는 "이겨야 산다"는 구호를 내건 채 만사 오로지 1등 만을 추구한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세일 품목을 선점할 계획을 세우고, 마을에서 개최하는 크리스마스 장식 콘테스트에서는 이웃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다. 사회봉사 명령으로 팔자에도 없던 '실버벨'을 흔들며 구세군 냄비 앞에 섰을 때의 행동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근무시간 동안 가장 많은 금액을 모금한 사람을 선정해 상을 준다는 말에 오가는 사람들을 붙잡아 기부를 강요하다시피 하고, 크리스마스 선물 포장 봉사활동 때에는 맹목적 경쟁심에 어린아이와 다투기까지 한다.
이런 브루스가 구세군 사관 멜빈(안토니오 파가스 분)을 멘토 삼아 조금씩 변해가는 과정은 인상적이다. 특히 '순수한 봉사'를 실천하는 멜빈의 구세군 사무실에 원주민 문화를 연상시키는 인테리어 소품들이 장식되어 있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흑인인 그에게서 이민자들을 도운 인디언의 모습이 엿보이고, 브루스에게서는 개척정신으로 포장된 백인 침략자의 모습이 연상되는 것이다. "가장 큰 자가 되려면 모든 사람을 섬겨라"라는 성경 구절을 인용한 멜빈의 충고가 조금씩 브루스의 내면에 스며드는 과정에서 미국 주류 사회의 반성이 느껴지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봉사의 의미를 깨달아 가는 브루스가 저널리스트로서도 한층 성장하는 후반부 전개는 또 다른 시사점을 남긴다. 자신 때문에 상처받은 아들 제이슨, 그리고 남모르는 비밀을 지닌 미식축구 스타 데릭까지. 두 사람의 진심을 이해하고 내면을 보듬는 브루스의 모습은 좋은 인생 선배이자 좋은 인터뷰어로서 잔잔한 울림을 남긴다. 그렇게 시종일관 내달려 온 브루스가 어느새 여유로운 미소로 가족들과 함께 맞는 크리스마스 아침, <실버벨>의 메시지는 방점을 찍는다. 비교와 경쟁에서 한 발짝 떨어져 뒤돌아보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2016년 12월 15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