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과 망각 사이에서 맞닿는 두 청춘 <너의 이름은>

동일본 지진, 세월호까지 떠올리게 하는 '신카이 월드'

by 오늘

바닷가 소도시 이토모리에 사는 여고생 미츠하와 도쿄에서 생활하는 남자 고등학생 타키. 서로 알지도 못하는 두 사람은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 상대방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이때부터 일주일에 두세 번씩 서로 바뀌어 생활하게 된다. 이들은 상대의 일상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각자 뒤바뀐 삶에서 한 일을 휴대폰에 기록하는 등 나름의 룰을 통해 관계를 이어간다. 그러던 중 갑작스레 이러한 현상이 중단되면서 두 사람 간의 연결고리는 끊겨 버리고, 이에 타키는 미츠하를 만나기 위해 그가 사는 곳을 찾아 나선다.


애니메이션 영화 <너의 이름은>은 영락없이 신카이 마코토 감독다운 작품이다. 각자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두 청춘 남녀를 서로 멀찍이 세워두고, ‘우연’이란 이름으로 그 사이에 가느다란 끈을 잇는다. 그 끈은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으면서 내내 애간장을 녹이다가 마침내 눈부신 인연으로 귀결되며 폭발하고야 만다. 서로 멀기만 한 두 주인공의 이야기는 감독의 전작 <별의 목소리>(2002)와도 닮았고, <초속 5센티미터>(2007)의 판타지 버전 정도로 느껴지기도 한다.

미츠하와 타키가 꿈을 통해 서로의 삶을 대리한다는 설정은 영화를 관통하며 커다란 시사점을 남긴다. 서로의 육체와 시공간을 공유하는 두 사람의 관계가 물리적 거리에 구애받지 않는 교류를 통해 마치 영혼 간의 교감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상대방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상대방이 될 수는 있다는 모순. 영화는 그 틈새의 괴리 속에서 두 주인공이 겪는 에피소드들을 풋풋하고 유쾌하게 그리다가,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이를 서로를 향한 강렬한 열망과 그리움으로 대치한다. 그렇게 영화는 이들의 세계를 더할 나위 없이 가까우면서도 동시에 한없이 멀기도 한 ‘평행우주’처럼 그린다.


거대한 혜성이 1200년 만에 지구를 찾는다거나 미츠하가 할머니로부터 실매듭을 전수받는 등의 설정은 영화의 주요 모티프다. 두 주인공 각자의 내면에만 존재해 온 친밀감이 이 소재들을 통해 객관적 증거로써 제시되는 장면들은 이들의 관계를 하룻밤 꿈으로 그치지 않게 한다. 특히 밤하늘을 수놓는 혜성의 궤적은 더할 나위 없는 시각적 환희와 압도적인 슬픔을 동시에 자아내는 요소가 된다. 여기에 미츠하가 머리에 맨 리본 또한 두 주인공 사이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며 관객의 눈시울을 붉히는 데에 성공한다.


영화 후반부 미츠하를 추적하는 타키 앞에 펼쳐지는 진실은 클라이맥스 역할을 톡톡히 하며 가슴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더 이상 서로가 ‘될 수 없는’ 두 주인공의 기억 속에 상대방은 점점 희미해져 가고, 이들이 서로에 대한 그리움과 더불어 자신의 망각과도 싸우는 모습은 아릿하게 다가온다. 그렇게 영화는 끝내 미츠하와 타키의 특수한 관계를 ‘잃어버린 것’에 대한 노스탤지어로까지 확장시킨다. 떠나보낸 공간과 사람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결코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될 기억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며 잠들어 그이 모습 보였을까,
꿈이라 알았으면 눈 뜨지 않았을 것을.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이 와카(정형시) 구절처럼, 결국 <너의 이름은>이 다루는 건 ‘그리움에 대해서다. 그건 서로를 향한 미츠하와 타키의 그리움이기도 하고, 도쿄를 대하는 미츠하의 동경이거나 이토모리에 대한 타키의 호기심이기도 하다. 이미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세계’를 겪고 난 이가 다신 그곳에 돌아갈 수 없음을 알았을 때 느껴지는, 아릿한 '정신적 통증' 말이다. 영화를 보고 동일본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바닷 마을이, 나아가 세월호 사고로 떠난 꽃 같은 아이들이 떠오른다면 그런 맥락에서 일 것이다. <너의 이름은>을 통해 새로운 ‘신카이 월드’가 건네는 메시지는 바로 거기에 있다. 2017년 1월 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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