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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기형 Nov 30. 2022

우린 점 위의 점 일 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발견한 문장과 시선 part 1

1990년 2월 14일, NASA 우주 탐사선 보이저 1호는 지구로부터 60억 km 떨어진 먼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면 사진 한 장을 찍고 인류에 전송합니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창백한 푸른점(Pale Blue Dot)'이라고 명명했던, 인류 역사상 가장 철학적인 사진이라 불리는 지구의 모습.


칼 세이건은 '우리는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 산다' 고 말했고, 천문학자 닐 디그래스 타이슨은 '우리는 점 위의 점 위의 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좌) 61억 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촬영한 지구의 사진    (우) NASA에서 30주년 기념으로 디지털 리마스터한 사진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 전문 기자 룰루 밀러가 쓴 삶의 혼돈과 질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과학자였던 저자의 아버지는 '이 넓은 우주 속 인간은 중요하지 않아'라는 가치관 아래, 인생은 '혼돈 Chaos'라고 말하는데요. 이는 저자의 어린 시절을 옥죄는 커다란 세계관이 됩니다.

인생의 의미는 없어. 신도 없어. 어떤 식으로든 너를 지켜보거나 보살펴주는 신적인 존재는 없어. 내세도, 운명도, 어떤 계획도 없어. 그리고 그런 게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믿지 마라. (...)  
진실은 이 모든 것도, 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란다.

넌 중요하지 않아. 그러니 너 좋은 대로 살아.


그런 그녀에게 위로가 된 존재는 스탠퍼드대학 초대 학장을 지낸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었습니다.

분류학자라는 건, 거대한 ‘생명의 나무’의 형태를 밝혀냄으로써 지구의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일을 하는 과학자이지요. 그는 물고기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이었습니다. 당대 인류에게 알려진 어류 중 1/5 가량이 그와 그의 동료들이 발견한 것이라고 합니다.


김춘수 시인의 '꽃'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 이 역시 이름을 부여하는 일의 장엄함을 보여주기도 하는데요. 철학에는 어떤 것이 이름을 얻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사상이 있습니다.  정의, 향수, 사랑 같은 건 그렇게 불러주기 전까지는 대체로 불활성 상태였지만, 누군가 이름을 붙이고 말하고 쓰기 시작하면서 세상에 존재하게 되는 거죠. 데이비드 스타 조던 역시 물고기에 이름을 붙여주면서 '혼돈 Chaos'의 세계에 '질서 Cosmos'를 부여합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꽃> 중에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물고기를 분류하는 과정에서 두 차례 큰 지진을 경험하게 됩니다. 물고기를 담아놓은 병이 떨어져 깨지고, 이름표가 떨어져 나가고 물고기가 바닥에 흩어지는. 혼돈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 질서를 세우려는 모든 시도는 결국 실패할 운명이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그러나 그는 파괴된 잔해에서 이름표를 찾아 다시 물고기 목살에 꿰매 붙입니다.


남들은 포기할 만한 시련 속에서 그는 어떻게 끝까지 해낼 수 있었을까요? 이것은 스토리 에디팅과 리프레이밍의 힘입니다. 적당한 수준의 자기기만과 긍정적 착각이 Grit(끈질긴 투지)을 획득하는데 도움이 되는 거죠. 어쩌면 진화가 우리에게 준 가장 위대한 선물은 “우리는 실제보다 더 큰 힘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을 품을 수 있는 능력인지도 모릅니다. 실패와 역경, 정체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노력과 흥미를 유지하는 것. 여기에서 저자는 위로를 받고 희망을 발견하죠.


그러고 보면,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일로 가득하고, 원하는 것을 손에 얻는 것은 아득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렴 어때'의 마인드로 한 발 한 발 걸음을 내딛고, 차곡차곡 자신만의 세계를 쌓아가며 작은 성취를 하나씩 모아갈 수 있습니다.  물론, 쉽지 않지요.



책의 후반부 이야기는 part 2에서 계속됩니다.



[칼 세이건 - 창백한 푸른 점] https://www.youtube.com/watch?v=x-KnsdKWNp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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