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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송 Jul 26. 2023

파란만장했던 민초(民草) 들의 삶

    흔히 인간은 경제적 동물(호모 에코노미쿠스) 이라고 한다. 자신의 이익극대화를 위해 가장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존재인 것이다. 이 경제적 동물이라는 인식의 기저(基底)에는 인간의 생존본능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든 살아남기 위해서는 의식주라는 기본적인 요소를 해결해야 하며, 이를 위해 돈과 같은 경제적 자원이 필요한 것이다. 이 요소가 결핍되면 인간의 존엄성도 상실되게 마련이다. 골딩(W. Golding)의 ‘파리대왕(Lord of the Flies)’은 무인도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어떡하든 살아남겠다는 인간의 생존욕구가 그들을 얼마나 타락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유년시절에는 오늘날에 비해 인간의 존재 가치는 존중받지 못했다. 특히 경제 수준이 낮은 농촌사람들에게는 먹고사는 문제가 우선이었고, 그들의 인격이나 존엄성은 부차적인 사항이었다. 당시 시골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비인간적, 비인격적 상황과 관련되어 아직도 나의 뇌리 속에 남아있는 사건 몇 가지가 있다.



 

  1960년대 말, 추수가 끝나고 겨울로 접어든 농촌 들녘은 황량하고 을씨년스러웠다. 꼬마 아이 너 댓 명이 텅 빈 논에서 축구시합을 하고 있는 것 외에는 인기척이라고는 없었다. 마을 입구 초가집 부엌에서는 한 아낙네가 식구들의 점심으로 보이는 고구마를 삶고 있다. 맞은편 외양간에는 비쩍 마른 누렁소가 눈을 감은 채 되새김질을 하고 있었다.


 

   이맘때면 농한기라 별일 없는 남정네들은 동네 입구 구멍가게에 모여 노름판을 벌인다. 오전부터 대여섯 명이 어두컴컴한 방에서 열심히 화투장을 돌리고 있었다. 방안은 온통 싸구려 담배가 내뿜는 매캐한 연기로 자욱했다. 방 중앙에 펼쳐진 국방색 모포 주위에는 됫박만 한 소주병 몇 개가 내용물이 모두 징발당한 채 널브러져 있다. 멤버 중에는 약관 35세인 다나까라는 사람도 끼여 있었다. 일제 치하에서 해방된 지 20년이 넘었는데도, 그 사람만 아직까지 일본식 이름을 사용하는 이유를 우리는 알 길이 없었다.

   오후 무렵, 남편의 도박벽(賭博癖)이 걱정되는 듯 다나까 부인이 가게에 들렀다. 그날도 어김없이 노름판에 끼여 있는 그를 발견하고는 이젠 차라리 체념한 것 같았다. 남편이 술과 노름으로 가산을 탕진하는 통에, 다른 사람의 논밭을 소작하여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삶이 그녀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다나까 부인은 가게에서 10원짜리 라면 3개를 산 후 그곳을 나섰다. 그녀가 마을 안길로 들어설 무렵, 뒤따라오던 다나까와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 여자가 어디서 그 비싼 라면을 함부로 사가지고 가는 거야?"


   당시에는 라면도 함부로 먹을 수 없는 사치스러운 음식이었다. 이번에는 여자도 호락호락하지 않고 남편을 쳐다보며 앙칼진 목소리로 대들었다.


       "왜? 나는 라면 좀 먹으면 안 되나?"


   알코올에 중독된 건지 판돈에 눈이 뒤집힌 건지, 벌겋게 충혈된 눈동자로 째려보고 있던 다나까의 오른손이 허공을 가르며 그녀의 따귀를 갈겼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갈 무렵, 다나까의 친척 되는 사람이 우리 아버지를 찾아왔다.


       "형님, 자전거 좀 빌려주이소"


       "왜, 어디 가게?"


       "다나까 마누라가 파라티온을 마셨는데, 보건소 가서 의원 좀 모셔오게요 “


   독성이 너무 심해 훗날 생산이 중단된 맹독성 농약 파라티온! 다나까 부인은 그 파라티온 한 병을 단숨에 다 들이켰던 것이다.

   대나무에 둘러 싸여 일 년 내내 음침한 외딴집에서, 눈만 붙은 아들딸 셋을 남겨두고 그녀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그날 밤에는 숲 속의 두견새도 울지 않았다.

   이틀 뒤, 다나까 집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상여 한 채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다나까는 그날도 술에 취해 있었다. 상여 뒤에는 하얀 상복을 입고 한 손에 유과를 든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조잘거렸다.


       "우리 엄마 죽었어요, 상여 나갈 거예요"




    어느 초여름 저녁, 그날도 우리는 어김없이 동네 한가운데의 철도에 모였다. 여름밤 철도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훌륭한 놀이터가 된다. 우선 이곳은 모여든 사람들이 양쪽 레일에 마주 보고 걸터앉아 담소하기 편한 장소이다. 기차가 지나가고 나면 세찬 바람이 불어 시원할 뿐 아니라, 덤으로 모기까지 날려주기도 한다.

   어스름한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 저 멀리서 서울발 순환열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당시에는 최고속, 최고급인 통일호 기차였다. 일행 중에는 타지에서 우리 동네로 머슴살이 온 청년도 있었다. 그의 나이는 18세쯤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정확한 나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더니 자기가 저 기차를 세워보겠다고 했다. 빠른 속도로 달려오던 기차가 철로 한가운데 서있는 사람을 발견하고는 경적을 울리기 시작했다. 기차가 50미터 정도로 가까워졌을 무렵 기관사는 급제동을 걸었다. 순간, 레일 위의 기차 바퀴가 불꽃을 내뿜으며 미끄러지더니 그 청년 바로 앞에서 멈추었다. 우리는 혼비백산하여 보리밭 속으로 도망쳤고, 차에서 내린 기관사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그냥 두지 않겠다고 고함을 쳤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다음 정차 역에 도착하여 경찰서에 신고를 했고, 경찰이 우리 마을에 출동하여 기차를 세운 청년을 색출하기 시작했다. 그렇잖아도 세상살이가 고달팠던 청년은 그날 저녁 농약을 마시고 짧은 인생을 마감하였다. 그에게 인생은 한낮 소꿉장난에 불과한 것 같았다.

    인편(便)으로(당시에는 전화도 없었다) 아들이 죽었다는 연락을 받은 부모님이 이틀 뒤 주인집에 도착하였다. 그들은 관을 살 돈조차 없었던지 헝겊으로 칭칭 감은 아들의 주검을 들고 나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들을 손수레에 싣고 우리 집 맞은편에 위치한 공동묘지로 향했다. 수레 뒤에서 피를 토하듯이 처절하게 절규하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


        "병택아, 저승에서나마 좋은 부모 만나 잘 살거래이“


   그 청년의 무덤은 아직도 공동묘지에 그대로 있다. 나는 그곳을 볼 때마다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 마음 한 편이 아려 온다.

   동네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많은 희생자를 내었던 철길도 인근 지역으로 옮겨가고 레일마저 걷혀 이젠 조용하고 평온하기 그지없다. 기차 바퀴의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에 지금까지 잠들지 못하고 구천을 헤매던 영혼들이 영원한 안식처에서 영면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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