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얻어낸 중학생이라는 지위는 새로운 일상과 책무를 내게 부여하였다. 무엇보다도 등하교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했다. 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우선 2km 철도 길을 걸어 읍내의 기차역까지 가야 한다. 거기서 통학열차를 타고 10km 정도 떨어진 시내에 도착한 다음, 또다시 2km 남짓한 도심지를 지나야 학교에 도달할 수 있었다. 도시에서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보다 수월하게 등교할 수 있었지만, 당시의 농촌형편상 기차요금과 버스요금을 이중으로 감당할 여유가 없었다. 기나긴 등교거리와 다양한 등교수단으로 인해 학교까지 가는 시간도 많이 걸렸다. 9시까지 등교하기 위해서는 6시 40분에는 집을 나서야 했다. 이 시간대면 여름철에는 해가 중천에 떠 있지만, 겨울에는 어둠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새벽 여명(黎明)이었다.
중학교 개학 첫날, 두려움과 기대감이 반반 정도로 혼합된 퓨전감정을 가슴에 안은 채 나는 교실 문을 열었다. 나는 투계장의 수탉처럼 볼품없는 몰골에 대해 멸시하는 듯한 시선을 온몸으로 받으며 내 자리에 앉았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나와는 달리, 초등학교 동창들끼리 웃고 떠드는 도시 아이들의 모습은 깡촌 출신의 촌놈을 주눅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얀 얼굴과 세련된 행동은 그들로 하여금 초원에서 야생동물처럼 자라난 우리와는 다른 종족으로 보이게 했다.
수업시간이 되면 나의 몸과 마음은 움츠려 들었다. 선생님과 학생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들은 사전에 짜 맞춘 각본 같았다. 쉬는 시간에 영어 교과서를 펴놓고 거침없이 읽어 내려가는 급우들을 보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간신히 중학교 입시를 통과한 시골의 초등학교 학생들과는 달리, 도시 출신의 학우들은 중요 과목에 대한 선행학습이 어느 정도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인간이나 동물은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펭귄은 조류이지만 날지 못한다. 바다가 주된 생활 터전인 이 동물의 날개는 딱딱하고 평평한 물갈퀴로 진화하였다. 하늘을 나는 조류들과는 달리, 펭귄은 해양생태계에 적응하여 수영하고 다이빙하는데 적합한 몸을 가지게 된 것이다. 나 역시 낯설었던 도시생활에 점차 적응하게 되었고, 그 결과 학급 분위기에 동화될 수 있었다. 3월 말, 처음으로 치러진 월례고사에서 받은 예상외의 성적은 학교생활에 있어서 자신감마저 갖게 해 주었다.
길고 복잡했던 등굣길로 인한 에피소드도 다양했다. 1학년 여름방학 직전 집중호우로 홍수가 났다. 마을 옆을 흐르는 영천강의 도도한 물결은 강변의 철도 옹벽을 무너뜨리고 레일을 엿가락처럼 휘어놓았다. 자연의 힘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이다. 당장 기차가 운행하지 않아 학교에 갈 수가 없었다. 요즈음 이 정도의 천재지변이면 등교를 하지 않아도 될 상황이지만, 그 시절에 학교를 빼먹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의 중대한 사건이었다.
어둠이 자욱이 깔린 새벽 4시쯤 집을 나서서 학교로 향했다. 그날따라 안개마저 짙게 끼었다. 철길을 따라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저벅저벅 자갈 소리가 어둠을 뚫고 산산이 흩어졌다. 산허리를 잘라 만든 철도를 한 시간 가까이 걸어 첩첩산중의 고갯마루 입구에 도착했다. 출력이 약한 증기기관차는 이 고갯길을 오르지 못해 몇 백 미터를 후진한 다음, 다시 힘을 내어 오르곤 하던 가파른 길이었다. 고갯마루 양 쪽에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300m 정도 이어져 있다. 기찻길 경사를 줄이기 위해 산 정상 부위를 파낸 흔적이다.
협곡으로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둑어둑한 반대편에서 규칙적으로 자갈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린아이의 나약한 마음에 머리털이 곤두서고 오금이 저려 왔다. 생명체인지 귀신인지 조차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존재를 피할 곳도, 숨을 곳도 없는 막다른 길이었다. 한쪽으로 비껴서 조용히 걸어가고 있는데, 산발머리에 누더기를 걸친 건장한 남자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다행히 괴물 같은 남자는 별 일 없이 지나갔고, 동시에 “후유~”하는 안도의 탄식이 내 입에서 터져 나왔다. 당시 가끔 볼 수 있었던 소위 부랑자였다.
1시쯤 수업이 끝나는 토요일이면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통학열차가 출발하는 오후 6시 30분까지 기차역 대합실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참다못한 학생들은 철로를 따라 도보로 귀가하기도 했다.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철도 터널을 통과해야만 한다. 가끔 터널 속에서 기차를 만나기도 했는데, 그럴 때는 터널 벽에 큰 대(大) 자로 달라붙어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기관사도 짧은 기적(汽笛)을 울려 경고를 보내는 선에서, 사건이 될만한 일을 말썽거리 정도로 마무리 지었다. 이처럼 학교로 오가는 길은 힘들고 험난했지만, 이 여정에도 점차 적응하여 무사히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