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물체가 한여름의 무더위로 헉헉거리고 있는 8월 초순, 녹색의 벼로 뒤덮인 들판은 이따금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풀파도를 타고 출렁거린다. 송곳처럼 뾰족한 벼 잎 끝에는 메밀 잠자리 한 마리가 위태로이 걸쳐 앉아, 일렁이는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이리저리 흔들거리고 있다. 논둑 가에서 자라난 코스모스도 어느덧 빨갛고 하얀 꽃잎을 펼쳐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오늘날, 아침 식사로 밥 대신에 빵을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등 식생활이 변화하고, 끼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쌀이 풍요해졌다고 하지만, 쌀에 대한 무관심이나, 식량주권의 인식 부재 등은 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도시의 학생들에게 쌀이 어떻게 열리는지 그려 오라고 하니, 커다란 나무에 하얀 쌀이 달려 있는 그림을 그려서 왔더라는 소리를 듣고 아연실색한 적이 있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국민이라면 벼가 어떻게 생기고,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의 밥상에 오르는지에 대한 지식쯤은 상식으로라도 알고 있어야 한다. 도시를 벗어나기만 하면 어느 곳이든 논이 널려있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는 더욱 그렇다. 자유나 건강 등은 우리가 누리고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모르다가, 잃어버린 후에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이 인간의 습성이라고들 하는데 쌀도 예외가 아니다. 기상재해나 전쟁 등으로 쌀의 공급이 중단된다고 생각해 보라. 이는 당장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다.
쌀 소비가 줄어들고 있고 하지만 아직까지 밥은 우리의 주식(主食) 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 민족은 갈빗집에서 고기와 술로 잔뜩 배를 채워 위 속에 물 한 방울 들어갈 틈이 없어도, 마지막 메뉴로 된장찌개나 누룽지를 주문해야만 비로소 식사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빵으로 아침을 때운 경우의 점심식사나, 점심을 면이나 피자 등으로 해결한 경우의 저녁식사는 항상 밥이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불문율이기도 하다.
우리의 식단에서 아직까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쌀이 재배되고 가공되어 우리의 식탁에 오르기까지는 수많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 농부는 이른 봄부터 못자리를 만들어 볍씨를 뿌리고, 모가 다 자란 초여름에는 모내기를 한다. 벼의 주 생육기간인 여름에는 거름주기, 잡초제거, 병충해 방제 등 수많은 농부의 손길을 거쳐야 벼가 제대로 자라서 다가오는 가을에 알찬 열매를 맺는다. 추수한 벼는 따가운 가을 햇볕에 건조시킨 후 창고에 저장하여 일 년 내내 우리의 식사를 책임진다.
수확된 벼는 쌀로 가공되는 마지막 공정을 거쳐야 비로소 밥을 지을 수 있는데, 이 공정이 행해지는 장소가 방앗간이다. 방앗간은 방아로 곡식을 찧거나 빻는 곳으로써, 사용하는 동력원에 따라 물레방앗간(수력), 디딜방앗간(인력), 연자방앗간[말이나 소 등의 축력(畜力)], 풍차방앗간(풍력) 등으로 나뉜다. 좁은 의미의 방앗간은 벼나 보리, 밀 등 곡식을 찧거나 빻는 장소이다. 쌀을 빻고 쪄서 떡을 만드는 떡방앗간이나 고춧가루를 빻는 고추방앗간 등도 방앗간에 속한다. 최근에 와서는 커피방앗간, 치킨방앗간처럼 방앗간이 특정 메뉴를 만드는 장소의 의미로 변질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뽕나무밭과 더불어, 방앗간은 예로부터 남녀가 은밀히 만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이는 방앗간이 대부분 마을과 떨어진 시냇가나 들판에 위치한 경우가 많은 데다가, 사람이 상주하지 않고 사방이 밀폐되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띌 가능성이 낮았기 때문이다. 방앗간은 또한 시끄러워서 남녀의 말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갈 염려가 없다는 것도 밀회의 장소로 이용된 한 요인이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방앗간이 당시의 주식이었던 벼과 보리를 가공하는 것이 주된 작업이었다. 그중에서 보리는 가공 공정이 비교적 간단하다. 보리방아의 첫 공정은 탑처럼 생긴 나무 구조물 입구에 보리를 쏟아부으면 구조물 속에서 주걱처럼 생긴 기구들이 맨 위에 위치한 탱크로 보리를 퍼 올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는 보리를 공중에서 쉽게 이동하면서 가공하기 위한 일종의 준비단계이다. 상부로 올려진 보리들은 관을 타고 깔때기처럼 생긴 기계로 이동한다. 이 장비의 중심에는 둥그렇게 생긴 그라인더가 위치해 빙빙 돌아가는데, 그 표면은 콘크리트 재질처럼 까칠까칠하여 통 속 보리의 표피를 깎는다. 충분히 깎인 보리는 마지막으로 철사로 촘촘히 엮인 체 위를 통과하면서 가루는 걸러지고, 보리쌀만 모아져 다음 용기 속으로 옮겨진다. 보리의 표피가 깎여 가루가 된 것이 보릿겨이며, 이것은 별도로 수집되어 가축의 사료나 거름으로 사용된다.
벼를 찧는 공정은 한 단계의 공정을 더 거쳐야 한다. 일단 상부로 퍼 올려진 벼는 가느다란 파이프 속을 통과한다. 이 파이프는 고속으로 회전하면서 벼 표면에 세로로 나 있는 선을 터뜨려 껍질을 깐다. 이 선은 벼 표피의 이음매여서 다른 부위보다 쉽게 터진다. 껍질이 분리된 벼는 풍로 속을 이동하면서 껍질과 알맹이를 분리시키는데 이 껍질이 왕겨이다. 벼의 껍질만 제거한 쌀이 바로 현미이며, 현미를 원하면 이 공정만으로 도정작업이 끝난다. 백미를 원하면 껍질이 벗겨진 현미를 그라인더가 있는 기계 속으로 이동시켜 보리나 들깨 껍질을 깎을 때처럼 현미의 표피를 깎는다. 백미는 표면을 깎는 정도에 따라 10분도, 8분도, 6분도 등으로 나누어진다. 높은 분도일수록 표면을 많이 깎은 것이며, 따라서 빛깔도 희다. 이 등급을 구분하는 데는 특별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고 전적으로 방앗간 주인의 경험에 의해 결정된다. 주인은 그라인더가 돌아가는 통 속의 쌀을 수시로 꺼내 목표한 분도로 깎였는지 확인한다. 현미가 원하는 수준으로 깎이면 다시 체 위를 통과하여 가루(쌀겨)는 걸러지고 백미만 남으면서 도정작업은 끝난다. 보리는 껍질을 까지 않고 그라인더에 갈아 보리쌀을 만드는 반면, 벼는 껍질을 깐 다음 그라인더에 가는 점에서(백미의 경우) 두 곡물의 도정 방식에 차이가 있다. 보리는 껍질과 알맹이의 결합 정도가 벼보다 훨씬 단단하다 보니 껍질을 까기가 어려워 그라인더로 갈아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끔 껍질이 까지지 않은 벼가 쌀 속에 섞여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미"라 한다. 이 미는 대부분, 벼가 완전히 건조되지 않아 벼의 껍질이 터지지 않는 경우에 발생된다.
현미가 백미보다 건강에 좋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미밥은 거칠고 찰기가 없어 백미밥보다 식감이 좋지 못하다. 요즈음엔 압력밥솥이 보급되어 현미밥도 큰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다. 예전에는 현미밥은 엄두도 낼 수 없어 전적으로 백미밥을 먹었다. 결과적으로, 쌀 중에서 가장 영양가가 많은 쌀눈, 식이섬유가 풍부해 다이어트나 장 청소에 좋은 현미 표피 등은 모두 쌀겨에 섞여 소나 돼지에게 갖다 바쳐진 셈이다. 쌀에 대한 무지, 밥 짓는 기술의 부족 등이 가져온 일종의 희극이다.
80호 남짓 되는 고향마을에도 예전에는 방앗간이 두 개나 있었다. 어릴 적부터 우리는 수시로 방앗간을 드나들었다. 그곳에서는 주로 벼과 보리를 찧어 쌀과 보리쌀을 만들고 밀을 빻아 밀가루를 만들었는데, 쌀을 찧는 경우보다 보리를 찧거나 밀을 빻는 경우가 더 많았다. 당시에는 그 정도로 쌀이 귀했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방앗간에 방아 찧으러 가는 날은 비록 보리밥이나 국수일지언정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세월이 흐른 지금, 고향의 방앗간 중 하나는 아직도 문을 닫지 않았다. 돈벌이가 되지 않아 건물은 허름하고 도정기계들도 낡았다. 방앗간의 동력원으로, 위풍당당했던 20마력짜리의 커다란 원동기는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 조그마한 모터가 들어섰다. 농민들이 생산하는 벼 대부분을 정부에서 수매하여 지정된 방앗간에서 대량으로 도정하는 현실에서, 마을 주민들의 식량으로 쓸 벼만을 바라보고 영업하여야 하는 동네 방앗간은 방아 일만으로는 생존하기가 불가능하다. 다행히 방앗간 주인은 농사일도 겸하면서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다. 더구나 줄어드는 쌀 소비량, 농촌 집집마다 보급된 가정용 정미기에 갈수록 일거리가 줄어듦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버티고 있는 방앗간을 보면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곳에는 나의 추억이 서려 있고, 무엇보다도 내가 수확한 벼로 내가 원하는 분도의 쌀을 찧을 수 있어서 좋다. 비록 벼 외의 다른 곡식들을 취급하지 않는 정미소(精米所)로 전락한 지 오래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나에게 위안이 된다.
방앗간 주인은 고령으로, 언제 이 일을 그만둘지 모른다고 했다. 방앗 거리도 나날이 줄어들고 도정작업의 대가로 받는 수수료도 올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언젠가는 이 방앗간도 문을 닫으리라는 것도 다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 방앗간이 존재하기를 바라는 것은 단순히 나의 육체적 편리함이나 경제적 이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