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겨울철의 시골 경로당

by 여송

2017년도 며칠밖에 남지 않았다. 연말 때마다 들려오는 "다사다난했던 한 해"라는 표현은 올해에도 어김없이 적용될 것 같다. 이러한 심정을 반영하듯 한창 추워야 할 계절임에도 스산한 잿빛 하늘에 겨울비까지 내린다. 이럴 때는 차라리 눈이라도 내리면 울적한 기분을 잠시나마 전환시켜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도 잠시일 뿐, 난방시설이 빈약하고 단열처리가 잘 되어 있지 않는 썰렁한 시골집에서는 겨울철이 되면 무엇보다도 따뜻한 날씨가 가장 반가운 손님임에는 틀림이 없다.


여름철, 녹색의 생명으로 활기를 띠던 들판은 어느덧 황량한 공간으로 변하였고 가을철, 누렇게 익은 벼로 요로왔던 논은 텅 빈 황무지가 되었다. 아침마다 들판에 서리가 하얗게 내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입에서는 하얀 입김이, 떡방앗간의 시루떡 찜통에서 솟아 나오는 뜨거운 김처럼 뿜어져 나온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청둥오리 한두 마리만이 자신이 살아있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을 뿐, 땅 위의 생명체는 이미 사라졌거나 보이지 않는 흙 속에서 웅크리고 앉아 추운 겨울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농한기인 겨울철, 마을 골목에는 인적이 뜸하고 집안에서 노인들과 같이 늙어가는 개나 닭들도 추운 계절에 무료함과 추위에 지쳤는지 아무 소리도 없이 조용하다. 궂은 날씨에 배까지 고픈 듯, 가느다란 소리로 처량하게 울어대는 길고양이의 울음소리만 차가운 아침 공기를 가른다. 그러나 그 울음소리도 잠시 뿐, 녹이 슨 철제 가두리를 차에 실은 채, 개나 고양이 산다고 외치면서 동네를 오르내리는 도축업자의 스피커 소리가 들리자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진다. 죽음이 곁에 다가왔음을 알아차리는 동물들의 직감이 전율을 느낄 정도로 무섭게 다가온다.



시골 동네 주민이라고 해봐야 대부분 독거노인들인 이들은, 춥고 할 일 없는 겨울철이 되면 아침을 때우자마자 동네 한가운데 위치한 마을회관 겸 경로당으로 하나, 둘 모여든다. 점심때가 되니, 노인들의 아픈 허리를 지탱해 주는 유아용 유모차가 경로당 앞마당에 꽉 찼다. 난방용 기름값이나 전기요금이 아까워서 썰렁한 집에서 담요를 뒤집어쓰고 날 밝기만 기다려 온 이들에게, 난방시설이 잘 되어 있는 경로당은 갓난아기의 요람처럼 따뜻하고 훈훈하다.



성한 곳 없는 몸으로 힘겹게 경로당에 도착한 노인들은 각자 상대방의 얼굴을 확인하고, 어제저녁에도 모두가 무사히 잘 보냈다는 데 대해 안도하는 표정으로 인사를 건넨다. 가끔 경로당의 단골고객이 거동이 불가능하여 요양원으로 갔다거나, 한밤중에 몸이 아파 병원으로 실려 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남의 일 같지 않다는 듯 표정이 어두워진다.


점심때가 되자, 경로당에서 병아리 취급받는 젊은(?) 노인들이 씻은 쌀을 대형 전기밥솥에 안쳐 점심밥을 짓는다. 어제는 호탄 댁이 감자와 토란을 가져와서 그것으로 점심을 때웠는데, 요즘 같은 겨울철엔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날이 많다. 반면, 여름이나 가을철에는 마을 사람들이 수확한 농작물이나 과일들을 수시로 이곳에 갖다 놓는 탓에 특식이라는 호사스러운 식탁이 꾸려지기도 한다.


밥이 완성되면 각자가 가져온 반찬들을 펼쳐 놓고 둥그렇게 모여 앉아 숟가락질을 시작하며 인생 말년의 외로움을 달랜다. 각자 집에서 홀로 식사하는 이른바 혼밥에 비해, 이곳 경로당에서 여럿이 모여서 하는 식사는 별로 차린 것은 없지만 그 맛은 꿀맛이다. 모름지기 식사란 단순이 음식물을 섭취하는 것이 아니고, 가족이나 동료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정(情)이라는 메뉴가 첨가되어야만 제대로 된 음식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진리를 이들은 체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밥상을 물린 후 각자 앞에는 따끈한 커피가 담긴 종이컵이 놓이고, 인담댁 아들 자랑, 조동 댁 딸 자랑 등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한다. 이 대열에도 끼지 못한 노인들은 방구석 한 편에서 둥그렇게 모여 앉아 도박판을 벌인다. 이들에겐 고스톱도, 속칭 나이롱 뻥도 너무 복잡한 게임이라고 하며, 밋밋한 민화투 한 메뉴만으로 하루 종일 노름판을 벌인다.


오후가 되자 경로당 미닫이문이 스르르 열리더니 비에 젖은 반백의 머리에, 얼굴에는 제법 굵은 주름살 맺힌, 경로당 멤버가 되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남자가 "어무이"하고 부른다. 양 손에는 두유팩과 소주병으로 묵직한 비닐봉지가 들려 있다. 방 한가운데서 다른 노인들의 아들과 딸 자랑을 들으면서 의기소침해 있던 갈촌댁이 모처럼 찾아온 아들의 모습을 보고 갑자기 얼굴이 환해지면서 일어선다. 직장생활로 바쁠 텐데 뭣 하러 왔느냐고 하면서도, 간신히 일으켜 세운 상체의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일 년 중 낮이 가장 짧은 동지가 엊그제라, 점심때 먹은 밥이 채 내려가기도 전에 경로당 밖은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한다. 노인들은 하나, 둘 자리를 털고 일어서서는 각자의 집으로 향한다. 화투판에서 마지막까지 자리를 차지했던 할머니 한 분이 오늘 200원이나 잃었다고 툴툴거리면서도, 노름판 동료에게 오늘 밤 연탄가스 조심하고 내일 다시 보자며 작별 인사를 잊지 않는다. 그들은 썰렁하고 반겨주는 이 없는 오두막집에서, 동지섣달 기나긴 밤 내내 잠 못 이루면서 뒤척일 것이다.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동네 곳곳에 매달아 놓은 스피커에서 이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정동 댁 아들이 거금 10만 원을 희사하여 할머니들 온천욕을 시켜 드린다고 하니, 아침을 잡수시고 경로당 앞으로 곧장 모이라는 내용이었다. 잠시 후 동네 골목에선 노인들이 아픈 다리를 질질 끌면서, 힘겨운 발걸음으로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경로당 앞에는 벌써 인근 온천휴양지에서 온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할머니들의 얼굴마다 웃음꽃이 피었고, 따라 나온 강아지들도 꼬리를 흔들며 반긴다. 잠시 후 죽봉댁 아들이 나타나더니, 온천욕 후 시원하게 드시라고 맥주 한 박스를 버스에 싣는다.


시골집 바로 맞은편, 어스름하게 어둠이 내려 않은 텃밭에는 아직도 뽑지 않은 고춧대가 을씨년스럽게 비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고춧대의 끝에는 수확철을 놓친 끝 고추가 된서리에 하얗게 변색되어 희나리가 된 채 매달려 있다. 도로 주변의 국유지를 쪼아서 텃밭을 일구며 간신히 살아가던 이 밭의 주인은 지난여름, 90세의 나이로 한 많은 인생을 마감하였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변호사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말재주가 뛰어나고 농사일에 야무졌던 이 할머니는 불행히도 작은 아들은 가슴에 묻고, 큰며느리는 집 나가는 등 자식농사는 제대로 짓지 못해 말년을 우울하게 보내야만 했다. 잡초 한 포기 없이 명경같이 말끔하던 텃밭이, 할머니 가신 이후 황폐화되어 황무지로 변했다. 경로당의 터줏대감으로, 마을의 어른으로 동네의 대소사에 있어서 큰 힘이 되었던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경로당 노인들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들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할머니의 장례는 다른 사자(死者)처럼 도시의 장례식장에서 치러져 조문객들은 그곳에서 조문을 해야 했다. 하지만 장례식 마지막 발인 날에는, 이 동네에서 살다 세상을 떠난 다른 어른들처럼 할머니를 운구하는 장의차가 고향에 들러서 노제를 지냈다. 동네에 남은 어른들은 모두 나와 할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눈물로 배웅한다. 그런 광경을 보는 내 마음도 한겨울의 우중충한 날씨처럼 무겁다.


할머니와의 영원한 작별 이후, 경로당에 모인 노인들 사이에는 먼저 가는 사람이 복 받은 사람이라는 자조 섞인 말이 유행이라고 한다. 오늘도 고향 마을의 경로당에는 추운 겨울의 한기(寒氣)를 피해 노인들이 모이고 있다. 생전에 경로당 한쪽 구석에서 화투 치던 할머니의 빈자리가 겨울바람에 유난히 썰렁해 보이고, 살아남은 노인들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인생이라는 기나긴 여정 속에서 마지막을 보내는 사람들이 모인 오늘날의 경로당 모습, 이것은 몇 년 후의 우리의 자화상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死의 讚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