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 남은 여름의 잔해들

by 여송

'고'(기온), '대'(열대야 수) 등의 화려한 수식어를 훈장처럼 온몸에 달고 다니던 금년 여름도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다. 말복이 지나고 나니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마저 감돌기 시작한다. 돌부처처럼 꿈쩍도 않던 한낮의 폭염은 자연이 만든 초대형 선풍기 '릭'이 몰고 온 세찬 비바람에 다소 기가 꺾인 모습이다. 하지만 다음 주부터는 다시 30도가 넘는 날씨가 계속될 거라는 기상청 예보를 보면, 이번 무더위는 지지리도 우리 곁을 떠나기 싫은가 보다.


지난 여름은 돌이키기 싫을 정도로 지내기가 힘겨웠던 계절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먼저 하늘을 쳐다본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인 창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상쾌함보다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오전 중에는 그나마 덜 더워 이리저리 그늘을 찾아다니거나 선풍기 바람을 쐬기도 한다. 오후가 되어 기온이 올라가면 언덕 너머로 불어오는 자연풍이든, 선풍기의 인조풍이든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온다. 사람의 체온인 36.5도보다 높은 기온에서는 바람을 쐴수록 더 더워지는 것이다. 이럴 때에는 주변에 있는 도서관으로 달려가 책이라도 읽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저녁 무렵이면 오늘 하루를 무사히 냈다는 안도의 한숨과 더불어 저 멀리 서쪽 하늘을 바라본다. 좀 시원해졌으면 하는 기대와는 달리, 붉게 물든 석양의 하늘은 내일 역시 무더울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허탈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청산별곡이 흘러나온다.


이리공 저리공 하여 낮으란 지내 왔손저,

올 리도 갈 리도 없는 밤으란 또 어찌 하리라.



무자비하게 내리쬐는 한낮의 태양빛은 콘크리이트 바닥을 프라이팬처럼 벌겋게 달구어 놓았다. 그 위로 뻗은 호박넝쿨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호박잎은 마치 끓는 물에 데친 것처럼 풀이 죽었다. 폭염과 가뭄 속에서 겨우 결실을 맺은 호박 열매도 이글거리는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누렇게 말라죽었다. 가혹한 자연환경으로 인해 종족 번식의 본능을 포기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붉은 벽돌로 쌓은 담장 앞에 일렬로 도열한 옥수수도 모두 하얗게 말라버렸다. 담벼락의 벽돌들이 내뿜는 열기를 저 연약한 식물들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와중에서도 아직 파란 빛깔을 띠면서 생존해 있는 옥수수 한 포기가 있다. 이 생명체는 아직 아기를 업고 있어 차마 이 세상을 뜰 수가 없는 모양이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어린 자식을 위해 생명의 끈을 놓지 못하는 옥수수의 모성애가 눈물겹다.



시골집 앞뜰, 음식쓰레기 더미 위에는 파리 떼가 새까맣게 모였다. 마치 윌리엄 골딩(William Golding)의 '파리대왕(Lord of the Flies)'처럼. 악마를 상징하는 이 파리들은 오늘날 우리가 처한 자연적, 사회적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외딴섬에서 죽은 멧돼지의 머리에 붙어서 피를 빠는 파리들이나, 가뭄과 열기로 모든 것이 말라버린 상황에서 촌로(村老)들이 내다 버린 쓰레기들로 간신히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에게 생존이라는 것은 하나의 전쟁일지도 모른다.


한낮의 폭염을 뚫고 한 할머니가 걸어가고 있다. 이 할머니는 곧추 펴지지 않는 허리 때문에 유아용 보행기에 의지하여 힘겹게 발걸음을 옮긴다. 그녀는 찜통 같은 자신의 집에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동네 한가운데 위치한 무더위 쉼터를 찾아가는 중이다. 뜨거워진 포도(鋪道) 위로 난 그 길은 무더위에 약한 노인들에게는 목숨을 건 여정이다. 하지만 이 고행의 길 저쪽에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쉼터와 반가운 얼굴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언덕 위, 나무 덤불 아래로 어린 길냥이 두 마리가 고개를 내밀었다. 초봄 무렵 태어난 연약한 이들에게 올여름의 무더위는 너무도 가혹하다. 더부룩하게 자란 털은 보기만 해도 등에 땀이 줄줄 흐를 것 같다. 이들은 한여름의 열기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호기심 어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러 주변을 살핀다. 그들의 눈동자는 어린아이들의 그것처럼 티 없이 맑고 순수하다. 모쪼록 새로 태어난 이 귀여운 생명들이 모진 환경에 잘 적응하여 오래도록 생존해 나갔으면 한다.



이 폭염 속에서도 매미는 제철을 만난 듯 큰 소리로 울어댄다. 이들은 땅속에서 애벌레로 7년 정도 살다가 이제 막 성충이 된 것이다. 지상에서의 이들의 생존기간은 고작 한 달 정도. 이 기간 중에 그들은 짝을 만나 사랑을 나누고 자손을 번식시켜야 한다. 매미의 울음소리는 짝짓기를 위한 구애의 소리이며, 따라서 일종의 세레나데인 셈이다. 이 한 달의 삶을 위해서 그들은 땅 밑 어둠 속에서 그 오랜 기간을 기다려야 했고, 주위의 천적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했으니 한여름의 폭염이 대수이겠는가.


그래 실컷 울어라, 아니 노래하라.

마지막 남은 한 달의 생을 위해서.

그대들의 몸과 마음속에 남아있는

한 방울의 정열과 사랑마저도

이 폭염 속에 활활 불살라라.


어느덧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도 지났다. 시골집 앞 뜰에서는 가을의 전령인 실솔(蟋蟀)의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아무리 여름이 가기 싫다고 발버둥을 치더라도 자연의 법칙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어찌 여름뿐이랴? 인생살이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러한 만고불변의 진리 앞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것뿐이다.


태풍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아스팔트 바닥에는 잡초가 몇 무더기 솟아올랐다. 단단하게 굳은 아스팔트는 겉으로는 강인해 보이지만 생명이 없다. 잡초는 비록 가냘프고 연약해 보이지만 살아 숨 쉬는 생명체이다. 이 잡초가 딱딱한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온 것이다. 삶과 죽음의 차이이다. 모든 생명체는 이처럼 신비하고 강인한 것이다.



한여름의 열기 때문에 열매를 맺지 못하던 호박도 이제야 결실을 맺기 시작한다. 뜨거운 콘크리이트 바닥을 피해 소나무 가지 사이에 자리 잡은 끝호박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기 시작한다. 이 호박은 사람 손으로도 올려놓기 어려운 위치에 위태롭게 자리하고 있다. 자연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생물들의 적응력이 놀랍다.



요즘 같은 초가을에 열리는 끝호박은 갈치찌개의 부재료로 안성맞춤이다. 조만간 이 호박으로 갈치찌개를 만들어 다가오는 가을을 맛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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