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등반가들이 등산을 하는 유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오르고자 하는 산의 정상까지 최단 시간에 주파하는 데 목적을 두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등산로 주변의 산새들의 지저귐이나 계곡 물소리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두 번째 유형은 산을 오르내리는 동안 주위의 풍광이나 자연의 신비를 감상하면서 느긋하게 등산 과정을 즐기는 스타일이다. 이들은 대신 등산코스나 등반시간에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여자선수들의 활약상은 전 세계가 인정할 정도이다. 어렸을 적부터 피나는 노력으로 체력을 단련하고 기량을 연마한 이들이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골프 외의 다른 활동에는 큰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LPGA 경기가 끝나자마자 바로 연습장으로 가서 연습에 몰두할 정도라고 한다. 시합이 끝나면 영화나 연극 등 취미활동을 즐기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서양 선수들과 대조적이다. 한국 선수들의 선수생명이 짧은 이유도 이러한 생활태도에 있다고 생각된다. 현역에서 물러나는 프로선수가 대부분 은퇴식에서 이젠 좀 쉬고 싶다고 말하는 이유도 이러한 생활태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도 여러 가지다. 어떤 사람은 나름대로의 인생 목표를 설정해 놓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역량을 결집한다. 반면에 다소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각자에게 주어진 환경이나 인생관, 성격 등이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자라온 고향 농촌의 사람들이 걸어온 인생역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조상 대대로 가난하게 생활해 온 그들의 삶은 자신들의 보다 풍족한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 자라나는 후손들에게는 그들이 겪은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서 온갖 역경을 헤치고 살아온 가시밭길이었다. 그들은 농사일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묵묵히 그 일에 종사하여 왔다. 이러한 조상들의 인생행로는 후세에게도 영향을 미쳐, 이들 역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노력하여 부나 명예를 얻는 것을 인생의 유일한 목표로 생각해 왔던 것이다. 이들에게 여행이나 문화생활은 접근하기조차 어려운 하나의 사치품에 불과했던 것이다.
외적인 환경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인생관이나 가치관은 우리의 생활태도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한 예로 고향집의 텃밭에는 식재료가 되는 농작물 외에는 어떤 것도 심지 않는다. 배불리 먹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백여 평이나 되는, 텃밭 치고는 꽤 넓은 밭에는 콩, 깨, 부추, 마늘, 파 등 먹거리들로만 가득 차 있다. 그 흔한 민들레나 제비꽃 등은 구경하기조차 어렵다.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는 이 식물들은 인간의 정서를 풍부하게 하는 꽃이 아니고, 농작물에 해로운 잡초로 각인되어 있다. 그러기에 이들이 농작물 사이에 고개를 내밀면 우리는 가차 없이 뽑아버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인간이란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면 그 일에 대해 권태감이나 싫증을 느끼게 되어 있다. 특히 그 일이 자신이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해야 할 경우에는 더욱 그럴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면 자기가 하는 일에 만족을 얻지 못하고 작업 능률까지 떨어진다. 직장인들이 주말에 휴식이나 여가활동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며칠 전 지인으로부터 봄꽃 몇 송이를 선물 받았다. 군자란처럼 넓적한 잎에 코스모스 모양의 순백색 꽃잎을 가진 품종과 쑥잎처럼 생긴 잎사귀에 보라색 꽃이 달린 품종 두 가지이다. 관상용 꽃에 대해 특히 문외한인 나는 이 꽃들의 이름조차 모른다. 이 꽃들은 화분에 담아 가꾸는 꽃이 아니고 노지에 심는 꽃이라고 했다. 아직까지 아침 기온은 영하에 가까운 쌀쌀한 날씨라 다소 걱정이 되었지만, 비닐봉지 속에서 시들시들해 가는 이들의 자태가 안쓰러워 텃밭 가장자리에 옮겨 심었다.
심은 지 며칠이 지나서도 이들은 여전히 무사하다. 아니, 뿌리가 꽉 끼일 정도의 일회용 화분에 갇혀 있을 때보다 차라리 생기가 도는 듯했다. 처음 심어 보는 관상용 꽃에 대해 내가 염려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야생에의 적응력이 강한 것 같다.
이들 꽃이 차지하고 있는 면적만큼 상추나 파 등 밭작물의 재배면적이 줄어들 것이다. 비록 먹거리는 다소 줄어들지 모르지만, 활짝 핀 꽃을 바라보면서 얻는 감동과 정서는 그에 못지않은 산물일 것이다. 이들은 또한 텃밭 작업으로 지친 농부의 심신을 달래주는 청량제가 될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꽃, 김춘수-
꽃을 심은 텃밭 옆의 밭둑에는 민들레가 노란 꽃망울을 터트렸다. 지금까지 이들은 나에게는 꽃이 아니라 잡초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들 꽃을 보며 그 자태에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들의 향기에 감탄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할 것 같다.
산들거리는 봄바람에 민들레의 꽃잎이 가냘프게 춤추고 있다. 이들은 나에게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듯하다. 자기들의 이름도 좀 불러달라고. 나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이제 막 솟아난 민들레꽃에게 환한 얼굴로 인사한다.
“그래, 반갑다. 민들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