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와 동생의 옷장 속 추억
A 님과 함께 속옷 서랍칸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깊숙한 곳에서 비닐에 담긴 새 속옷들이 나왔다.
"이건 동생이랑 같이 산 건데, 사놓고는 입지도 않았네요."
A 님은 속옷이 담긴 투명 비닐을 꺼내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결국 속옷들은 서랍 밖 비우는 물건 옆에 놓였다.
그러고 보니, 전에 외투 정리할 때 A 님 동생 얘기가 나온 적이 또 있었다. 주로 차분한 색의 옷이 많았던 A 님 옷장 안에, 개성을 뽐내는 꽃무늬 겨울 잠바가 눈에 띄었었다.
"화려한 옷도 입으시군요!"
"동생하고 같이 산 거예요. 제 스타일은 아니지만 동생이랑 맞춰서 샀어요."
A 님 직업과 어울리는 얌전한 옷들과는 달리, A님 나이에 맞는 귀엽고 생동감 있는 이미지를 상상하니, 내 마음까지 설렜다. 주변 옷들과는 안 어울리지만 동생과의 추억이 담긴 소중한 옷이었다.
동생분은 지금 멀리, 미국에 있다고 한다. 속옷을 정리할 때 알았다. A 님은 그동안 동생과 함께한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꽤 보관하고 있었다.
"A 님, 물건을 정리하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알게 돼요. 이 옷들은 단순히 입는 게 아니라, 동생분과의 소중한 추억이 담겨 있네요."
"맞아요, 입을 때마다 동생 생각이 나요."
물건들은 우리와 소중한 사람들 간의 관계를 반영한다. 하지만 물건을 소유하는 것만이 그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은 아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다.
"A 님, 물건을 통해 추억을 떠올리는 것도 좋지만, 동생한테 연락해서 마음을 표현해 보세요. 그게 더 큰 의미를 가질 거예요."
얼마 뒤에 A 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동생과 따뜻한 대화를 나눈 내용이었다.
A 님이 정리를 서두른 이유도, 동생 부부네가 미국에서 오기 때문에 타이밍에 맞춰 정리 졸업을 하고 싶어 했었던 것이다.
나 또한 비우는 옷들 중에 언니와 관련된 물건들이 많았다. 내 경우는 언니가 쓰고 줬거나, 버리려고 하니까 아까워서 가져온 것들이었다. 정리 축제를 하면서 정신적, 물리적으로든 너무 의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심리적 거리를 두고 관계를 더 소중히 하게 됐다.
반면에 A 님은 동생과 함께 미국에서 쇼핑했던 추억 물건들이었다. A님과 동생분과는 물리적 거리가 있다 보니 물건에 애정을 담고 있었다. 이제는 쓰임이 없는 물건들을 놓아주며, 직접 사랑을 더 표현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정리는 단순히 물건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를 다시금 되새기고 소중히 여기는 기회가 된다.
정리를 하면서 '진짜 내게 무엇이 소중한지' 알 수 있다. 물건에 담긴 추억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추억을 함께 나눈 사람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물건을 정리할 때, 사람이든 물건이든,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것을 잊지 말자. 그것이 진정한 정리의 지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