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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머리 앤을 좋아하는 우리들

낭만 있는 INFP 인프피

by 지혜


"정리 일을 하는 데, 인프피 INFP라고요??"




MBTI 유형을 들으면 다들 놀랍니다.

정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보통 계획적인 'J'형일 텐데,

저는 마지막 글자가 'P'라는 말을 하면 의아한 눈빛을 보내곤 합니다.

하지만 제가 추구하는 정리는 단순히 물건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과의 대화'를 통해 진짜 원하는 것을 찾는 과정입니다.

또한, 일상 정리는 나를 돌보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해요.


INFP 유형의 대표적인 캐릭터 중 하나가 바로 '빨간 머리 앤'입니다.

저는 성인이 되고 나서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고,

앤 셜리 (Anne Shirley)라는 인물에 푹 빠졌어요.

제 정리 철학에 끌려서 찾아오신 분들은 단순히 정리 수납을 잘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저처럼 '자신만의 정리 방식'을 찾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S님은 조금 특별했어요.

제 중학교 친구도 어릴 때부터 앤을 참 좋아했는데,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취향이 바뀌었다고 하더라고요. 이제는 앤이 너무 시끄럽다고 느껴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

현실을 살아가느라 감상적이고 이상적인 꿈들을 잊고 지내다 보면,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S님도 그랬어요.

온라인 정리 코칭을 하던 중에 S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죠.

“저는 T 성향의 이성적인 사람이라 (그리고 S 현실적), 설렘 같은 감정에 따라 물건을 고르는 게 어려워요. 별로 취향이라는 것도 없고요.”

패션에는 관심이 없다고 하셨죠. 정리가 끝난 후 남은 옷들을 보니, 기본 스타일과 뉴트럴 톤을 선호하는 취향이 분명히 보였어요.

취향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정리를 하다 보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되죠.

그리고 또 다른 큰 발견이 있었습니다.

옷, 책, 서류 정리를 끝내고, 4번째 소품 정리를 할 차례였습니다.

옷장 안에 있던 리빙박스를 열었을 때, S님에게 특별한 의미 있는 물건들이 나왔어요.

바로 빨간 머리 앤의 지난 달력, 메모지, 스티커들이었죠. S님이 그것들을 손에 들었을 때, 표정이 달라졌어요.

설렘 가득한 얼굴이었어요.

포장 이사하고 업체에서 넣어둔 그대로, 몇 년 동안 꺼내보지 않았던 물건이었죠.

“거실에 꺼내 놓으면 아이가 좋아하겠어요.

아이가 쓰는 건 안 아까운데, 제가 쓰는 건 왜 이리 아까운지...”

S님은 모든 것을 아이 위주로 생각하고 생활하고 있는 시기였죠.

저는 S님이 스스로를 위해 먼저 사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제안했어요.

"S님의 옷장 플라스틱 서랍장에 빨간 머리 앤 스티커를 붙여보면 어떨까요?"

"좋아요!!"

그리고 다음 레슨 때, S님의 옷장 안 서랍장은 한층 더 S님 다운 공간이 되어 있었습니다. ​​옷장 문을 열고 서랍장을 볼 때마다 Anne이 S님을 반겨줄 테니까요.​​​



또 다른 M님과의 정리에서도 비슷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서재 정리가 끝나고 명예의 전당에

‘빨간 머리 앤’의 책이 올려진 걸 보고 저도 반가웠어요.

M님이 남겨둔 책장의 여백은

앞으로 꿈꾸는 미래를 위한 상상의 공간이었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앤의 한 대사가 떠올랐어요.

Anne이 호화로운 대저택을 갔을 때 한 말이었죠.

“난 이런 걸 줄곧 꿈꿔왔었어.

근데 계속 보고 있으니까 그리 마음이 편하지 않네. 방 안에 모든 게 갖춰져 있고 그게 전부 멋진 것이기 때문에 상상을 할 여지가 없지 뭐니? 상상할 것이 많이 있다는 것이 행복한 것인지도 몰라.”

너무 가득 채워진 공간보다 여백이 있는 공간이 더 풍요로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빨간 머리 앤의 명대사처럼,

“상상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요?”

우리도 그 설렘을 다시 꺼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낭만적인 공간에서 살고 싶나요?

우리는 모두 Anne Shirley처럼 마음속에 낭만을 품고 있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잊고 지낼 때가 많아요.

당당하게 내 명예의 전당에 낭만적인 물건을 올릴 수 있는 삶, 생각만 해도 설레지 않나요?

공간을 둘러보며 숨겨진 낭만과 설렘을 찾아보세요.

앤처럼, 우리의 낭만을 잃지 않고 실수를 통해 배우며,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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