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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Apr 07. 2022

24 어른의 좋은 조언이란?

일본료칸 주방 막내


주방에는 호랑이 주방장이 산다.





1. 오카다상이 그만둔데요


주방에서 일하는 막내 직원, 오카다 상.

그녀는 요리 전문학교를 졸업해 료칸 주방에 취직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 늦게 끝나는 일이라, 주방 사람들은 항상 고단해 보인다.



보통 직원들에게 사적으로 마음을 내주는 편은 아니지만, 어린 친구가 고생하는 모습이 마음이 쓰인다. 일뿐만 아니라, 주방에는 호랑이 주방장이 있기 때문에 모두가 숨죽여 일을 하고 있다.



막내는 주방에서 ''이다. 코스요리의 마지막인 디저트를 담당하기까지도 시간이  걸리는 인사 시스템으로, 막내는  코스의 온갖 잔심부름을 해야 한다. 하루에  번을 혼나는지, 가끔 체크인 전에 주방 문이 열려있으면 100미터 정도 떨어진 프런트까지 주방장의 호통치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런 주방의 분위기를 금세 알 수 있었다.



어느날, 마음이 쓰였던 막내 직원인 오카다상이 그만둘 예정이라고 말을 걸어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디서 나온 배짱인지 모르겠지만, 이 사실을 전무님(사장님 부인)께 알려서 막아주길 바랬다.


"오카다상이 그만둔데요."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주방은 주방장이 통솔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모든 것은 주방장의 결정에 따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카다상이 그만둔다는 말을 버릇처럼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남아있는 막내들이 없을 것 같다.




오카다 상은 그 이후로, 불평불만을 하며 꾸역꾸역 2년 정도를 더 다녔다. 다른 곳으로 이직할 곳이 결정됐을 때도, 주방장이 다른 곳 입사 일정을 연기해서 조금 더 일해 달라는 요청에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너무 정에 연연해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 요청을 받아들이면, 이미 떠나기로 결정된 상황에서 더 힘들게 지낼 것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주방장이 오카다 상에게 더 연장해서 일해 주니까 고마운 마음에 이전과는 다르게 다정하게 대하진 않을 거야. 이것만은 알고 결정했으면 좋겠어.”


남에게 끌려가지 않고, 본인이 현실을 직시하고 깊게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고 후회가 없길 바랬다.



오카다상이 어떤 결정을 하든 마음이 다치지 않길, 조금 더 단단해 지길 바란다. 문제는 환경 탓이지만 말이다. 굳세어라, 오카다상!





2.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온 주방 사람


한국에서 보낸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예전에 일했던 남자 직원의 소개로 료칸 주방에서 일하고 싶다고 한다. 그는 요리 자격증이 있고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취득한 상태이다. 번호마다 알록달록 색상을 넣은 10개의 궁금한 점들이 적혀있다.


막내의 역할과 주방 분위기, 그리고 단 1년의 워홀비자로 까다로운 료칸의 주방에서 배울 것은 다른 곳보다 많지 않다고 생각했다. 남동생 같은 심정으로 '이곳에서 원하는 만큼 배울 수 없을 것 같다. 오지마’라고 단호하게 말해주고 싶었다.


에둘러 표현했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이곳에 와있었다. 그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기에 질문에 대한 답변을 성실히 해 주었다.


료칸 측에서도 성실한 한국인이 일 많은 주방에 일하러 온다고 하니 마다할 리가 없다. 워킹 홀리데이 비자는 취업비자와 같은 복잡한 절차가 필요 없기 때문에 금방 들어왔다.



알록달록 질문지와는 정반대의 이미지로, 일본에 들어온 한국인 남자는 덩치가 꽤나 컸다. 그리고 순진해 보였다. 열정 열정! 이 얼굴에 가득하다. 그런 마음으로 혹독한 주방에서 일할 걸 생각하니 안쓰럽기도 하다.



결국 예상대로 1개월 좀 넘게 일을 해본 그는 전무님께 상담을 한다. 전무님은 그의 말을 듣고 료칸에 대해 공부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에 오전에는 이불 부서에서 일하기로 했다고 한다. 나도 입사하고 이불 부서에서 일해 보며 전체를 파악하는 눈을 길렀기 때문에 그에게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주방은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일하는 타이트한 스케줄이라 얼굴을 통 보질 못했다. 사무실의 생각을 전해 들었고, 그의 생각은 어떤지 직접 듣고 싶었다.


그는 "주방에서 막내로 지내면서 너무 정신이 하나도 없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내 시간이 없다. 시스템도 없어서 배울 게 없다. 근무시간이 짧은 이불 부서 일을 오전에 하면서 일본 대학 편입 공부를 해 볼까 한다" 고 말했다.


'그으래에? 흐응...' 머릿속에 물음표가 많았지만 딱히 할 말도 없었다.



그 이후 한 달도 채 안돼서 들리는 말, 그가 그만둔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든 마음은, 같은 한국인으로서 단기간에 그만둔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식재료 공부할 것도 많고 아직 일을 파악했다고 하기엔 너무 이른데?


생소한 어느 지방의 큰 리조트 주방에서 일할 예정이라고 한다. 또다시 물음표가 많았지만, 새로운 일을 축하했다. 처음의 열정이 내 예상보다는 일찍 식었고, 오전에는 이불 부서 일을 하며 공부시간을 확보해 학교 들어간다는 결심도 급히 접은 그가, 이제는 부디 좋은 곳에서 워홀 생활을 만끽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느새 그가 한국에 돌아갈 1년이 되었나 보다. 새삼스레 전화가 걸려왔다.

그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가득 차 있고 한국에 돌아가서 뭐든 가능하다는 듯이 의기양양했다. 리조트에서 열심히 일해 실력을 인정받아서 주방장의 옆자리까지 갔다고 했다. 보통의 시스템으로는 몇 년 이상의 한참이나 걸리는 일이다. 하지만 지방의 리조트 경우에는 특히나 한국인의 근면 성실함이 더 눈부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로 든 생각은, 이곳에 온다고 했을 때 단호하게 오지 말라고 못했던 후회였을까. 물음표를 너무 많이 삼킨 탓일까. 이번에는 좀 더 현실을 자각하도록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1년 동안 타지에서 정말 수고 많았어. 지금 이 호기는 정말 좋아. 그런데 말이지, 한국에서 뭐든 다 해낸다는 기대감은 너무 크게 갖지 마. 몇 개월 만에 부주방장의 위치까지 갔다는 것으로 한국에서 인정받기는 힘들 거야. 하지만 지금의 그 자신감은 중요하니 잊지 마. 한국에서도 행운을 빌어."






시간이 꽤 지난 지금은 두 사람 모두 우직하게 주방의 한켠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나 스스로가 기대를 많이 품고 상처받는 타입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조언이랍시고 타인에게 오지랖을 부리는 것 같다. 그들에게 현실을 모르는 척하며 찐하게 응원해 주는 편이 좋았으려나, 싶다.


멋진 어른의 조언을 해 주고 싶다. 좋은 조언이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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