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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Apr 23. 2022

30 사랑스러운 마사코 할머니

마사코상 이야기




마음으로 서비스하는 일본료칸에서의 에피소드입니다. 3년간 동료와 손님에게 얻은 배움과 깨달음을 회고하며 기록합니다.





영화 <인턴>의 벤 할아버지




영화 <인턴> 에서 벤 할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야기하는 부분이 참 인상적이었다.



함께 나이 들고 싶은 사람이 있잖아요?

우리가 그랬어요.

놀라운 건 아내는 항상 한결같았다는 거예요.
그러기 쉽지 않죠.

삶을 아주 쉽게 다뤘어요.
항상요.

힘든 순간에도요.


영화 <인턴> 중, 벤 할아버지 대사




벤 할아버지와 먼저 떠난 아내,

모두 닮고 싶은 어른상이다.


삶을 아주 쉽게 다루는 사람.



현실세계에서 오키나와의 마사코 상이

내게 그런 존재였다.







꿈을 접고 미래에 대해 막막할 때 시골 농촌 프로그램인 우프(WWOOF)를 떠났다. 꽃이 있는 곳을 검색하다가, 오키나와의 본섬에서 비행기로 30-40분 더 떨어진 이시가키라는 섬에 원예 농장이 있었다. 그리고 호스트는 70대 할머니이다.



‘헉 무서운 할머니 아니야?’ 라고 걱정을 안고 갔지만 일본 만화책에 나올법한 귀여운 할머니의 모습이다.



마사코상은 혼자 큰 원예 농장을 운영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주변에 자녀들과 손자, 증손자가 살고 있어, 가끔 일손이 필요할 때 도와주러 온다.



그녀는 모든 사람과 쉽게 친구가 되었다. 마치 <영화> 벤 할아버지가 세대불문하고 모두와 친해지는 친화력을 가진 것처럼 손자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꽃나무를 사러 오는 손님들과 금세 친구가 된다. 그리고 원예농장을 관리하는 것을 보면 모든 걸 쉽게 다루는 것 같아 보인다.




가장 큰 매력은 '그녀의 유머'이다. 손님으로 처음 본 사람과도 그녀의 유머와 호탕한 웃음소리에 마음의 빗장이 금방 풀어진다.



그녀의 베프는 50대의 멋진 남자인데 저쪽 바다 절벽에 2층 집을 짓고 1층에는 부인과 살고, 2층에선 레스토랑을 한다. 본인이 셰프이기도 해서 문을 열고 싶을 때만 열고 간판도 없다. 부자 사람인 거다. 그 또한 마사코 상 못지않게 유머러스하다. 둘은 오랫동안 베프로 지내고 있다.



마사코 상이 저녁잠에 들기 위해 하품을 할 때까지, 매일 밤 둘 혹은 셋이서, 식탁에 둘러앉아 배꼽 빠지게 웃고 수다를 떨었다. 우리는 세대가 다 다름에도 마사코 상을 중심으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녀는 빵 잼을 푹푹 푸는 내 모습을 보고는 한마디도 해 주었다. "이걸 보고 사람을 알 수 있지." 그 이후로 다른 사람을 배려하여 좀 더 신경 쓰게 되었다.




나중에는 내게 '오까-상(엄마)'이라고 부르라고 했지만, 나는 왠지 쑥스럽기도 하고 그녀의 이름 부르는 것이 참 좋았다.



“마사코 상~”


영화 <인턴>



내게는 마사코 상이

영화 <인턴> 벤과 같은 존재이다.







우리는 한 달 정도 함께 지냈다. 그 이후로는 이시가키에 오지 못했는데, 일본에 다시 살게 되고 마침 사원 여행으로 다시 올 기회가 생겨서 얼른 휴가를 신청했다.



3년 조금 넘게 못 만났는데도 어색함이 없다. 그런데 얼굴에서는 세월이 느껴지기도 했다. 헤나로 물을 들인 빨간 머리의 양키 할머니가 되었지만 말과 행동은 변함없다.



연세가 많으셔서 그동안 걱정도 많이 됐었다. 전화를 걸 때도 떨린다. 제발 받아주세요. 하고 긴장하며 전화를 걸게 된다. 전에 왔을 때, 일하고 생활하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연세가 있으셔서 이제는 오키나와 본섬에 가는 비행기도 못 탈거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3년 넘어 본 할머니의 모습이 그대로라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이때는.






장어덮밥을 사드리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엉덩이 전시회'를 구경한다. 소들의 밥시간 때만 볼 수 있는데, 내가 왔다고 이렇게 전시회를 열어주다니.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다.



'엉덩이 전시회'는 마사코 상이 이름을 붙였다. 소들이 일렬로 코를 박고 여물을 먹을 때, 우리는 소들의 뒷모습을 보게 된다. 큰 소의 엉덩이들이 나란히 그리고 가지런히 붙어있는 모습이다.



아마, '엉덩이 전시회'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칠 법하다. 나는 이런 마사코 상의 유머가 너무 좋다. 무거운 이야기도 그녀의 유머 한방으로 꺄르르 웃고 나면 가벼워진다. 마법 같은 재주가 있다. 정말 삶을 쉽게 다루는 것만 같다.






첫날 밤,

할머니는 내일 아침 5시 30분에 본인이 다니는 모임에 같이 가자고 하신다.


"네? 그렇게 일찍이요?"


예전같으면 가지 않았겠지만, 할머니와의 추억을 더 만들고 싶어서 함께 가기로 했다. 캄캄한 아침에 우리는 출발을 했다. 인적 드문 곳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강당 안에 들어가니 환하고 넓은 강당에 교실처럼 책상이 놓여있다.



성경책? 불경책? 과 같은 좋은 글귀가 담긴 책 한 권을 받았다. 모두가 다 같이 한 챕터를 읽었다. 그리고 원하는 사람 몇 명이 앞에 나와서 고해성사 같은 것을 한다. 모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갑자기 이방인인 나에게, 나와서 이야기하지 않겠냐고 권한다. 아앗... 저는 쑥.. 쓰...



진솔한 공간이라, 두 번 이상 거부할 수 없었다.




"아... 음... 저는 한국인이고 지금 일본에서 일하고 있어요. 사원 여행으로 오키나와에 왔다가 마사코상을 만나러 3년 만에 다시 왔지요. 3년 전, 마사코 상 집에 홈스테이를 하며 인연이 됐어요.



마사코상은 정말 대단한 분이세요. 비즈니스도 잘하고, 친화력도 좋고, 미국 유럽 친구들과 영어로 소통을 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녀를 좋아합니다.


마사코상, 정말 감사해요. 사랑해요."



얘기하다 보니, 사랑고백이 되어버렸다.




이 시간 이후로는 웃음치료사인 분이 리더가 되셔서 다 같이 웃고, 책상을 둥그렇게 다시 배열해서 다과 타임을 가졌다. 마사코상은 내가 드린 온천 마을의 센베 과자를 챙겨오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여전히 캄캄한 시골 새벽길이다.


할머니는 운전하면서 말씀하신다.



"내가 나이가 드니, 점점 자식들의 잔소리가 많아져. 자꾸 나한테 잘못했다고 꾸짖는 거야. 그래서 작아져. 근데 행아가 와서 사람들 앞에서 나에 대해 그렇게 말해 주니,


나~ 기분이 정말 좋아."




할머니가 말을 꺼내기까지 마사코 상의 그런 마음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었다. 아무런 어려움도 없을 것 같았던 할머니도 세월이란 시간에 마음이 이렇게 작아지는구나. 싶다. 내가 이곳에 오기로 약속한 날의 어긋남도, 이유가 있었던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이 슬퍼지는 만큼 입도 꾹 다문다.



‘여기 와서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할머니 보러 오길 잘했다. 나도 할머니께 힘이 됐다니 너무 기쁘다.





오후에는 할머니와 삽을 들고 나갔다. 일이 생활이기 때문에 와서 일을 안 할 순 없다. 그리고 흙을 만지는 건 정말 좋다.



흙을 고르며 옆에 있는 할머니를 불렀다.



"마사코 상..."




사실 할머니를 뵈러 온 목적이 따로 있었다.

내가 힘들 때 정신적 지주였기 때문에, 마사코 상이라면 지금의 내 고민도 쉽게 해결해 주실 것 같았다.




다음 화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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