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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Apr 24. 2022

31 마사코 상, 저 고민이 있어요.

멘토에게 묻다



마음으로 서비스하는 일본료칸에서의 에피소드입니다. 3년간 동료와 손님에게 얻은 배움과 깨달음을 회고하며 기록합니다.






전편에 이어서...




"마사코 상, 저 마사코상한테 상담받고 싶은 게 있어요. 제 진로에 관한 거에요.



아오이 유우가 료칸 여주인으로 나온 드라마 <오센>



지금 일하는 료칸은 일하기에 참 좋아요. 함께 일하는 사람들, 회사의 대우나 휴관일에도 놀러다닐 수 있는 자유로움도 있죠. 평점 1등으로 료칸에 대한 자부심도 있구요. 그리고 이제 제법 외국인 동료들이 많아져서 일도 훨씬 편해졌어요. 조선족 친구들인데 일본어, 한국어, 영어에 중국어까지 할 줄 아니까 글로벌 시대의 인재란 이 조선족 친구들이 아닐까 싶어요."




지금 료칸의 평일은 일본이 아닌 또 다른 외국 같다. 외국 손님들로 가득 차서 시끌벅적하고, 금액이 비싼 주말에는 일본 손님들로 차서 조용한 분위기이다.



"그런데 말이죠. 일도 편해졌는데 이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이곳에서 필요한 사람인가?'


한편으로는 '내가 이곳에서 더 성장할 수 있을까?'


왜냐하면 저는 일본의 정성스러운 서비스인 '오모떼나시'를 배우려고 온 건데, 점점 글로벌화되어가는 게, 외국인 손님들에 맞춰 우리 시스템까지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는 거에요."




사장님은 프런트에 있던 일본인 직원들을 모두, 다른 부서로 이동시키고 이제는 외국인 직원들이 전면에 나와있다. 물론 예약 담당 후지타상과 유코상이 프런트 사무실에 있긴 하다. 그러나 프런트 후방을 지킨다.



아, 나와 같은 시기에 들어온 동기 일본인, 마츠시타상! 우리 외국인들과 마쓰시타 상이 함께 한다. 그래서 평일에는 외국인인 우리가 활발히 료칸을 안내하고 일본인이 많은 주말에는 마쓰시타 상이 조금 더 안내를 많이 간다.




외국인 친구들 사이에서 '요즘 그녀가 일을 덜하는 것 같다' 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외국인 대응이 우리가 더 능숙하니깐 뒤로 빠지게 되는게 아닐까? 나도 혼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이 친구들이 들어오고 나서는 중국인 손님들이 오면 그냥 넘기게 되었다. 중국 손님이 많은 어떤 날은 이런 기분이 들었다. '나 이곳에 필요한가...? 한편으로는 예전에 일본인 동료들도 갑자기 외국인 손님들이 많아지기 시작했을 때, 이런 감정을 느꼈겠구나. 싶다. 이렇게 또 몰랐던 것을 알아간다.



아오이 유우가 료칸 여주인으로 나온 드라마 <오센>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하고 있는 서비스가 '오모떼나시'는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제가 들어왔을 때만 하더라도 일본 동료들, 특히나 수준 높은 서비스를 하는 콘도 상이나 깐깐한 나가오 상한테 떨면서 배웠는데, 이제 알려줄 사람도 없는 거죠. 아니, 이제는 가르쳐주고 배우고 하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에요. 정보를 제공하는 호텔 컨시어지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



그냥 이대로 일하고 제 여가 시간을 더 행복하게 보내는 것도 좋겠죠… 한창때는 료칸 할머니가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마사코 상에게 료칸의 좋은 점이 있는 반면, 아쉬운 점에 대해 얘기했다.




그리고 그동안에 있었던 '호시노' 기업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그때 오키나와에 와서 리조트 클럽메드의 시스템에 관심이 생겼던 것처럼 호시노라는 기업이 제 눈에 들어왔었어요. 한번 이직 실패의 경험도 맛봤죠. 그리고 또 일 년 후에 호시노 사장의 세미나가 열린다고 해서 천명 규모의 큰 세미나를 들으러 갔어요. 죽어가는 지방의 료칸들을 다시 호시노스럽게 경영을 하고, 지방 특색을 살리는 이벤트로 활기 있는 숙박시설로 만들어가더라고요. 세계 호텔들과 비교하며, 일본 숙박업에 대한 비전과 경영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꽤 흥미로웠어요.




세미나에 참석한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아무래도 제 차림이 튀었을 거예요. 다들 면접 차림을 하고 왔거든요. 예전에 저를 면접 본 담당자와 마주쳤어요. 인사를 건넸더니, 저를 불러 소파 한 켠에 앉게 됐어요. 그리곤 유명한 지방의 총 지배인님을 데리고 오셨어요. 요즘 그곳에 한국 손님들이 점차 찾아오기 시작했으니, 관심 있으면 연락 달라고 하면서 명함을 주셨어요. 얼굴이 너무 잘생기셔서 혹하긴 했지만, 설마요. 그곳엔 관심이 없었어요. 사실 제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그때까지도 몰랐죠."




마사코상은 중간중간에 질문도 하고 웃음 포인트를 만들며,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좀 전에 말한 호텔 컨시어지 같다고 느끼던 때에, 아. 올해 1월이었어요. 호시노 1호점 가루이자와가 너무 궁금한 거예요. 때마침 휴관일과 휴무를 연달아 잡아 도쿄를 경유해 무작정 그곳에 갔어요."




에어비앤비 예약만 하고 정보 없이 도착한 가루이자와는 놀랍게도 호시노 마을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런데 맙소사. 호시노에서 재정비 기간이라며 내가 있는 동안 대부분 가게들까지도 영업을 안 했다. 그래도 그 안의 마을은 구경할 수 있었다. 한적하니 사람들은 없었지만... 채플(예식장) 안에는 들어갈 수 있었다.



그 안에서 직원 한 명을 만났고 길을 물어보다가 어느 직원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여기서 한국인은 결혼식을 안 하는지, 한국인 손님은 많이 없는지, 근무환경은 어떤지... 몇 가지를 물었다. 업무는 이것저것 다 한다고... 이 부분이 내가 뚜렷하게 여기서 하고 싶은 직무가 없다는 큰 이유였다.




"대부분 가게가 휴업이라 한적한 호시노 마을을 둘러둘러 구경했어요. 그런데 어둑해질 무렵에 보니, 아늑한 조명의 북 카페가 열려 있었어요. 반가운 마음에 몸을 좀 녹이려고 들어갔는데, 책 중에 한 권이 눈에 띄더라고요. 호시노 사장의 얼굴이 들어있는 표지에 호시노 경영에 관한 책이었어요. 저는 곧장 자리에 앉아 읽기 시작했고, 한 20% 정도 읽고 제가 뭘 깨달았는지 아세요?




'아, 내가 취업이 아니라, 호시노 경영에 관심이 있었던 거구나!!'




그걸 거기까지 가보고서야 깨달았어요. 그래도 거길 떠나기 전에 책을 보고 깨달은 것도 참 다행이지 머예요."




1호점에 가고 싶었던 것도 호시노 사장을 만나고 싶었던 이유였고, 세미나에 참석한 것도 경영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이때도 깨닫지 못하자,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내 발이 여기까지 끌고 와서 나에게 알려주려고 했던 것 같다.




책을 구입하고 카페를 나왔다. 가루이자와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에어비앤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스키장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까지 온 게 아깝다는 생각에 혼자라도 용기를 냈다. 스키장이라도 가자!




그렇게 다시 돌아와 변함없이 일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한국에 있는 지인이 베트남에 갈 거라고 했다. 갑자기? 놀래서 물어봤더니, 글로벌 리더양성 프로그램에 참여해 1년 동안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경영도 배우고 언어도 배운단다. 그렇구나. 하고 당시에는 흘려 들었는데,



며칠 후 뜬금없이,

'경영' 이란 단어가 뇌리에 스쳤다.



그리고 지인에게 연락해서 자세히 물어봤다.





그러고 보니, 대학교 때 경영학과 학생들 사이에 혼자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재밌었다.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찾아보니 프로그램 설명회가 열린다고 한다. 나는 휴무일을 맞춰서 한국에 가기로 했다. 사무실에 방문해서 물어보고, 또 설명회 하는 곳에 찾아가서 이야기를 들었다. 들을수록 고민은 깊어졌다.




1년의 투자, 낯선 동남아, 이 나이에 단체생활, 빡센 공부. 새로운 도전. 그리고 그에 따르는 기회비용.




그러던 중에 오키나와로 사원 여행을 오게 되었고, 나는 할머니께 상담을 드리고 싶었다.




"글로벌 리더 양성 프로그램이라는 게 있는데 1년간 경영과 제가 선택한 그 나라의 언어를 공부하게 된데요. 지금 있는 곳도 참 좋지만 이러다 료칸 할머니가 되어버릴 것 같아서 좀 걱정돼요. 그런 제 모습을 상상하면, 너무 지루하거든요. 그런데 이런 고민도 지금이 편하니까, 행복에 겨운 소리인 거잖아요?"



마사코 상이 이야기한다.


"행아, 내가 지금 이 나이가 되고 제일 후회되는 게 뭔지 알아?





바로 영어 공부야."



나는 적잖이 놀랐다. 할머니는 나와 같이 홈스테이를 하러 온, 미국이나 유럽 친구들과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분이었다. 하지만 그녀 나름대로 영어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모양이다.


마사코 상은 말을 이었다.



"젊었을 때, 다니던 회사에서 영어 교육을 지원해 주는 기회가 있었지. 근데 그걸 내가 놓친 거야. ‘그때 배웠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며 시도를 하지 않은게 아직도 후회돼.




행아~"



다시 한번 나를 부르신다.



"행아, 공부는 하루라도 더 젊었을 때 하는 거야."




나는 마사코 상의 이 한마디에 도전해 보기로 결심했다.




마사코 상,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감사합니다.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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