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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Apr 28. 2022

33 마지막 퇴사 사요나라

會者定離 去者必返 (회자정리 거자필반)

마음으로 서비스하는 일본료칸에서의 에피소드입니다. 3년간 동료와 손님에게 얻은 배움과 깨달음을 회고하며 기록합니다.



전편에 이어서...




마지막 에피소드입니다.







그렇게 ‘사장님의 든든한 빽’을 얻고 한국에서 다시 2차 테스트를 진행했다. 전보다 마음을 더 편하게 갖고 결과를 기다릴 수 있었다.





직원들에게는 여전히 말을 아꼈다. 소문이 워낙 빠른 곳이기도 하고 확정되지 않은 말을 했다가 괜히 사기를 떨어뜨리게 될까 봐 우려됐다.




결과가 나왔다. 선택을 받는 입장에서, 흐릿하기만 했던 미래가 선명해지는 것을 느낀다. ‘GO’ 합격이다. 나는 한국, 일본도 아닌, 제3의 국가로 갈 것이다.



10일 내로 퇴사준비와 일본 생활을 마무리해야 한다.



나는 2층 사무실 계단을 오르며 사장님께 보고한다. 기쁜 표정은 숨길 수 없었다.






“저 합격됐어요.”


사장님의 큰 눈은 더 땡그랗게 커졌고, 좀 늦은 감이 있었지만 곧 “오메데또-(축하해-)” 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제는 직원들에게 이야길 해야 한다. 1층으로 내려와 프런트를 등지며 컴퓨터 예약시스템에 열심히 글자를 입력하고 있는 유코 상에게 다가갔다. 예약 담당이며 유일하게 사적으로도 마음을 나누며 친하게 지낸 동료이다. 말을 꺼내자마자 깜짝 놀랐다. 그녀는 대성통곡을 했다. 오 마이 갓. 일하는 시간에 실수했다. 잘 모르고 있었던 부분이지만, 그녀는 꽤 많이 나를 의지해 왔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먼저 이야기를 안 해도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다들 놀랐을 것이다. 들어온 지 오래되지 않아 인사만 나누던 이불 부서의 스텝 분까지도 아쉬워해 주셨다. “그만둔다며…” 한 마디씩 말을 건네 왔다. 마음이 편치 않다. 사장님께라도 미리 말해두길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의 퇴사를 예전부터 바라던 히토미상은 제일 신나 보인다. 미래를 응원해 주는 건 좋지만 서운한 표정도 좀 보여주세요. 이후에 료칸 밖에서 만나 응원의 좋은 말씀들을 해 주셨다.



사용했던 토스트기, 믹서기, 청소기 등 그리고 키우던 아이비 화분까지 모두 자취하는 유코상에게 주었다. 그렇게 일본 생활을 마무리해 나갔다.



쵸상, 중국인 동료가 밤에 전화가 왔다. 따로 연락하는 사이가 아닌데… 밖으로 나오라는데 갑자기 불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거절했다. 다음 날, 유코상이 쵸상한테 들었나 보다.



“행아, 어제 쵸상이 나오랬는데 거절했다며?” (꺄르르)



그리고 며칠 후 밤에도 전화가 와서 불러내길래 다시 거절을 했다. 미리 약속하면 나갈 텐데, 왜 자꾸 급으로 불러내는지 모르겠다. 뭐든지 열심히 하는 이 친구는 일에 있어서 크나큰 동기부여가 됐다.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아서 일의 권태로움을 상쇄시켜주는 동료이기도 했다. 그가 어느 날 무례한 손님이 지나가자 나에게 칭찬을 건넨 일이 있었다.



“행아는 어떻게 그렇게 침착하게 대할 수 있어요? 저 같으면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했을 거예요.”



유리멘탈로 시작한 나도, 어느샌가 한 뼘 자란 것 같아 듣기 좋은 말이었다.




떠날 때 사랑받고 있었음을 느끼는 것 같다.


마침 마을은 여름 축제 중이다. 마을 한가운데서 샤부샤부 송별회 파티가 열렸다. 사장님, 전무(부인)님에 두 아이까지 그리고 프런트 사무실 직원들이 함께 하며 사장님이 구워주는 고기를 먹으며 호사를 누렸다.



마을 청년부로 축제일을 하고 있는 사장님의 동생, 기무라 타쿠야 상이 보여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행아!! 그만둬?? 한국 가??"



아하하, 배꼽이야. 혼자만 모르고 있다. 료칸에서 맨날 일하기 싫어서 죽을 상을 하고 있던 타쿠야 상. 요즘 마을축제 준비 중이라 통 얼굴을 못 봤었다.



'청년부 활동 말고 료칸에도 관심을 가져달라고요...'

평소에 료칸 일 열심히 하라는 나의 무언의 눈 째림(ㅡㅡ)에도 예쁘다 예쁘다 해줬던 타쿠야 상은 재밌는 캐릭터라, 미워할 수 없었다. 많은 웃음을 줬는데, 마지막에 감사인사를 전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선물로 받은 롤링 페이퍼에는 료칸 직원들의 마음이 담긴 글자가 한가득이다. 다들 새로운 도전을 축하하고 응원해 주고 있다.




일본어 사이로 열심히 글자를 적은 그린 티가 나는 한글이 눈에 띈다. 그 옆에는 사장님의 이름이 쓰여있다. 





일본 동료들은 나의 열정을 보고 자극을 받았었다고 한다. 내가 그들에게 배운 만큼 나도 무언가를 줄 수 있었다는 것은 큰 기쁨이다.



유코 상은 포토북을 만들어서 주었다. 오키나와 사원 여행, 둘이서 간 스키장, 웃긴 사진을 공유했던 추억들이 모두 고스란히 담겨있다.



마츠시타 상이 나의 이름을 새겨준 파일럿 펜과 오타니 상이 준 웨지우드 컵은 아직도 잘 쓰고 있다.



다시 찾아와 준 손님들이 선물로 준 목도리, 가방도 여전히 잘 쓰고 있다.



남아있는 물건들만큼 소중한 추억들도 브런치에 잘 담아본다.






會者定離 去者必返 (회자정리 거자필반)

만남에는 헤어짐이 정해져 있고 떠남이 있으면 반드시 돌아옴이 있다.



아쉬워하지 않을게요.

다시 만날 때까지.




사요나라. 안녕…




에필로그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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