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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Jul 25. 2022

이혼후 집 정리 feat. 케렌시아 만들기

정리 에피소드





내가 집을 찾았을 때, 두 마리 강아지들은 온 집안을 날뛰었다.


초등학생 두 자녀와 두 마리의 강아지를 키우는 전문직 여성 M님(Mom의 앞글자)의 이야기이다. 코로나로 아이들의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면서 거실은 아이들의 공부방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강아지들이 계속 짖고 뛰어다녀서 컨설팅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자녀들도 강아지를 컨트롤할 수 없기에 M님만이 케어가 가능하다. 또한 강아지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아서 한 방에 함께 놓아두지 못하는 상황. 안방은 곳곳에 벽지를 긁어놓아 여러 곳이 벗겨져있다.



안색이 안 좋아 보인 M님이었는데 강아지들까지 케어하며 땀이 송골송골 맺힌 모습에 마음이 많이 쓰였다. 또한 두 따님의 공간에 대한 요구사항까지 조율하느라 힘들어 보였다.



그리고 몇몇 가구들을 가리켰다.



남편하고 살 때 가구들이에요.
싹 다 비울 거예요.





이어서 거실 한가운데를 차지하는 안마의자에 앉으며 이야기를 꺼냈다. M님은 그중에 그나마 온순한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있다.


"아.... 이 안마의자도 비우고 싶은데... 여기 가운데 앉아서 아이들을 감시해야 해요."


옆에서 두 아이들이 "엄마!!"라고 동시에 소리쳤다.



"아~ 이 안마의자가 컨트롤 타워군요."


나의 말에 M님이 동의하며 웃었다.



대부분 집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오래된 안마의자는 크고 투박한 디자인에 거대한 존재감으로 한 공간을 차지하고 인테리어도 해친다. 그래서 곧잘 비우기 1순위 목록이 되곤 한다.



그런데 그곳에 앉은 M님의 모습이 그렇게 편안해 보일 수가 없다. 물론 감시 의자이기도 하겠지만...



‘보기에도 똑 부러지는 두 딸을 감시하는 척하며 M님도 쉴 수 있는 케렌시아가 아닐까?’ 하고 짐작해 본다.



케렌시아 (Querencia)
 : 스페인어로 안식처, 피난처를 의미.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며 혼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



우리는 일단 정리한 후에 공간이 남으면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그리고는 M님을 위해서 안마의자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보통 현장 당일은 고객님이 있어야 하지만 M님의 직업 특성상, 쉬는 것이 어려워 비울 물건들은 미리 처리해 두기로 하셨다. 테이프를 전달했다. 당일에 묻지 않고 비울 수 있도록 미리 가구에 테이프를 붙여놓기로 했다.



‘물건들 정리도 정리이지만, 안 좋은 감정이 드는 가구들을 집에서 빼고 나면, M님의 속이 얼마나 후련할까?’



M님은 미니멀 리스트였다. 하지만 정리 방법을 몰랐던 것이었고 아이들의 자잘 자잘한 물건들이 많기 때문에 분류하고 정리하면 되었다.



작업 당일에 두 딸은 미니멀을 지향하는 엄마의 성향을 닮았는지, 놀라울 정도로 자신의 물건들을 두 봉지 세 봉지씩 비워냈다.






정리 후,

퇴근한 M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먼저 텍스트의 양에 놀랐다. 그리고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분이셨나 하고 다시 보게 되었다. 장문의 글로 한 문장 한 문장에서 M님의 기쁨이 고스란히 묻어져 나왔다.



그리고 며칠 뒤,

꽃을 사서 식탁 위에 두었다며 인증 사진을 보내주셨다.





부엌을 깨끗이 정리하고,

식탁 위에 딱
꽃만
놓아두고 싶어요.


[예시] M님의 이상적인 식탁




M님이 그리던 이상적인 집이었다. 그 소망이 이루어졌다.




이제 묵은 짐들을 다 비운 M님은 쾌적해진 거실 한가운데 안마의자에 앉아있을까?


아니면 예쁜 꽃 한 송이가 놓인 식탁이 M님의 새로운 케렌시아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어디서든 행복한 미소를 띠며 이 문자를 보내고 있을 M님을 상상할 수 있으니, 나 또한 행복하다.



참, 강아지들도 전보다 온순해졌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정리의 힘이 정서적으로 사람에게 그리고 함께 사는 애완견에게까지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내 마음까지도 묵은 짐들을 다 내려놓은 기분이다. 속이 시원하다!



여러분의 케렌시아는 어디인가요?







똑똑.

어제부터 이 글 조회수가 육만회가 훌쩍 넘었는데 Daum 어디서 유입되는지 알려주실 천사분 계실까요? 참 궁금합니당.

(천사님께만 보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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