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가 올해 중학교에 입학했다.
1호는 겨울방학 내내 동굴 속 곰처럼 지냈다. 그러다 3월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교복을 말끔히 차려 입고 등교를 시작하더니 친구와 학교 생활에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제한을 걸어놓았던 핸드폰도 혹여나 필요할까 싶어 나름 양껏 풀어주었더니 물 만난 물고기처럼 침대와 하나가 되어 핸드폰과 혼연일체가 됐다. 밖에서는 친구들, 집에서는 핸드폰과 침대로 아이의 일상이 채워진다. 그동안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즐겼던 아이라 왠지 모를 미련이 들지만, 어쩌면 지금 이 상황이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꼴을 봐주기란 생각처럼 너그럽지 못하다.
중학교 입학시키며 부모로서 바라는 점들이 있었다.
친구들과 잘 어울려 사이좋게 지낼 수 있길 바라면서도, 체육시간이나 미술시간 등을 즐겁게 참여하며 선생님께도 이쁨 받고 학교 행사에도 적극 참여할 수 있는 그런 아이가 되길 바란다. 더구나 공부까지 잘하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있겠냐만은!!
욕심인걸 안다. 그래서 난 당분간 1호의 공부를 관리하지 않기로 했다.
초등학교 6학년까지, 정확히는 중학교 입학 전 2월까지 나와 함께 했던 공부는 끝이 났다. 초등학교 1학년 입학과 동시에 시작된 엄마표 공부는 나 나름대로 체계적이고 욕심내지 않게 진행되었다. 아이의 불만도 많이 있었고, 고비도 여러 번이었지만 그때마다 지혜롭게 잘 버티고 넘겨왔다. 그래서 자리 잡은 자기 주도 학습이 선물처럼 자리 잡은 거라 생각했는데, 아뿔싸! 사춘기란 것은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것을 뒤엎어 놓기에 충분한 것임을 지금 실감하고 있다.
예상했던 일이다. 분명 사춘기 때에는 끌어다 놓고 공부시킨다고 공부가 될 리 없다. 그래서 초등학교 6년 동안의 시간이 절실했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스스로 공부해야 하는데 내가 놓아줄 시기가 사춘기, 정확히는 초등학교 때까지라는 것을 감으로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겐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다른 집 아이를 대하듯, 멀찍이서 바라보며 그저 응원과 웃음을 보내면 될 일이다. 최소 2년. 2년 동안 기다려보련다. 그보다 짧으면 더 좋고, 길면 할 수 없지 않겠는가. 난 그저 믿고 기다려준다는 원칙 같은 말을 실천 중이다. 열심히 놀고 다시 공부를 하겠다고 돌아올 날이 오긴 할까. 그런 의문이 들기 시작하면 불안해진다. 어차피 자기 인생, 후회도 아이의 몫이니 기다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