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 리허설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단 한 번이라도 리허설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전심을 다해 살아보겠지. 그리고 잘못된 부분을 잡아보려 순간순간 집중하고 체크하려 들 거야. 나의 동선을 확인하고, 적절한 표정과 대사였는지 되돌아보며 그때의 호흡과 발성의 크기조차 상황에 맞게 구현되고 있었는지를 생각하겠지. 그런 선택의 순간이 온다면 과연 난 잘 살아낼 수 있었을까.
나의 수준과 맞는 수능 성적표를 손에 쥐고 갈 수 있는 대학을 고를 때. 부모님의 한숨 소리와 나의 심장박동은 내 귀에서 맴돌아 생각이란 회로가 잘 작동되지 않았을 그때, 정작 내가 갈 수 있는 대학의 수준이 그 정도라는 것을 현실적으로 깨닫게 되었던 그 순간. 리허설의 과정이 있었더라면 그 힘들었던 순간을 피하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를 했었을까?
취업이란 장벽을 넘어보려고 여기저기 정보를 찾던 중 과연 나를 받아줄 회사가 있을까란 생각에 대학원이든 임용고시든 돌파구를 찾아 헤매던 그때. 내가 리허설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옳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결과적으로 봤을 땐 남들 부러워하는 연구소에 합격하면서 딱 한 장의 이력서로 마무리된 나의 취업 경력은 그렇게 호화스럽다 못해 써 내려갈 이야기도 없이 끝이 났는데, 그게 리허설에서 보였을까.
10년 사귄 남자 친구와 3~4번의 이별 끝에 결혼을 하게 되던 날. 난 왜 감동적이지 않았지? 우여곡절 끝에 했던 결혼임에도, 결혼식 준비하는 과정 또한 쉽지 않았는데도 난 감동이라는 말 대신 '드디어 끝' 이란 말만 되뇌며 지루하고 고된 결혼식이 끝나길 기다렸었지. 과연 이 사람하고 행복할 수 있을지란 불안보다는 앞으로 내가 이 선택을 후회할 날이 몇 번이나 있을지 그게 더 궁금했던 그때, 리허설이란 과정을 거쳤더라면 그 사람 대신 다른 사람을 선택하는 결정을 했을까? 아니면 결혼식을 더 단출하고 심플하게 준비해서 결혼식의 과정의 고됨을 좀 줄였을까?
혼수 준비로 살림살이를 사대던 그때, 큰돈 쓰는 김에 더 써보자는 심보로 엄마에게 미싱을 선물했었다. 1등 메이커는 아니더라도 내 수중에 쥐어진 돈으로 감당할 수 있었을 적절한 상품을 골랐다. 뿌듯한 마음으로 엄마 품에 안겨드렸을 때 환하게 미소로 화답해주신 엄마의 얼굴이 아직 선명한데, 정작 고장이 났을 때 수리 맡길 곳이 없었다. 또는 부품이 없거나 수리비용이 너무 비싸서 곤란한 일이 있음을 보고 몇 푼이라도 더 주고 더 비싸고 좋은 메이커로 선물할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두꺼운 천을 두세 번 접어 미싱을 돌리려고 하면 들어가지 않아서 소용이 없게 된 그 선물. 리허설을 했었더라면 이런 고충을 미리 알 수 있었을까. 후회가 되지 않게 상품을 선택하며 두고두고 잘 쓰실 수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
막내가 막 걷기 시작할 무렵, 가족들과 공원으로 놀러 갔다가 둘째를 잃어버릴 뻔했다. 더 좋은 자리로 돗자리를 옮기던 와중에 막내만 안고 일어서버린 엄마를 쫓아오지 못한 둘째가 길을 잃은 것이다. 잘 따라오겠거니 하며 한 손엔 막내를 안고 다른 한 손에는 짐가방을 든 채 정신없이 사람들 틈을 걸었는데 뒤늦게 안 둘째의 실종. 10분도 안돼서 찾긴 했지만 다시 떠올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때의 아찔함이 그대로 전달되어 온다. 만약 리허설의 기회로 둘째를 잃어버리지 않았더라면, 다시 찾았을 때의 안도감을 내가 느끼지 않았더라면 육아의 고충이 감사함으로 돌아오지 않았겠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아이가 제일 소중하고 귀하다는 것을 절감하며 산다. 둘째가 말썽을 피우고 나에게 모진 말을 할 때마다 그때를 기억하며 귀한 내 자식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힘든 시간을 견뎌내고 있다. 그런 거다. 인생은.
생각이 많아진 틈에 들어온 수많은 과거의 순간들. 그 순간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고 그런 나를 사랑하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리허설의 기회를 잡아 조금 더 나은 인생을 산다고 조금 더 나은 내가 되리란 보장을 누가 해준단 말인가. 한 번쯤 아쉬운 때마다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겠을 선택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곁에 있어준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며, 그리고 앞으로 있을 미래를 꿈꾸며 살아야겠다. 그래야겠다.
인생은 원래 그런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