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머신에서 본 알래스카 빙하

by 연주신쥬디

[스케치로 남긴 세계여행] 1권이 어느새 30장의 기록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조금 더 넓어진 저의 세상을 담은 두 번째 스케치북을 펼쳐보려 합니다. 그 첫 페이지는 거대 빙하를 홀로 독점했던 저만의 비밀스러운 명당에서 시작됩니다.


케치칸, 주노, 스캐그웨이, 헤인즈, 밴쿠버.. 알래스카 크루즈 중에 여러 번 들락날락 한했던 기항지들이다.

크루즈에 있으면 기항지에 내리는 일은 늘 설레는 일정지만, 알래스카에서는 예외가 있었다.

배에서 내리지 않고 글레이셔 베이(Glacier Bay)를 구경하는 건 기항지 관광 그 이상의 설렘을 주었기 때문이다.


거대 빙하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명당은 단연 뱃머리(Bow)였지만, 그곳은 늘 승객들로 북적였고, 파노라마 뷰가 펼쳐지는 라운지 역시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승객들로 빈틈이 없었다. 하지만 내겐 나만의 비밀스러운 명당이 있었다. 인파를 피해 파노라마뷰를 독점할 수 있는 곳, 바로 8층 뱃머리에 위치한 Gym이었다!

매일같이 가던 이곳은 전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언제든지 알래스카 대자연을 시원하게 감상할 수 있는 곳이었다. 특히 러닝머신들은 뱃머리 중앙에 놓여 있었는데, 거기서 달리기를 할 때면 마치 내가 캡틴이라도 된 듯한 재미있는 기분이었다.

가끔은 유리창에 핸드폰 기대놓고 운동하는 동안 타임랩스를 촬영하기도 했다.

당시는 2015년, 아이폰에 타임랩스기능이 막 출시된 시절이었다. 지금에 비하면 현저히 떨어지는 화질이었지만, 유리창에 핸드폰을 기대놓고 운동하면 Zaandam의 역동적인 동선을 15초짜리 짜릿한 영상으로 담을 수 있었다.



러닝머신에서 본 빙하 풍경은 이러했다. 이 흑백 스케치로는 감히 전해지지 않는 감동이지만…

만년설 덮인 산과 푸른 빙하, 그 모든 걸 거울처럼 반사하는 유리 같은 빙하수, 유유히 떠있는 빙하 조각들, 그리고 이 거대한 자연을 보기 해 Bow에 모인 조그마한 사람들까지 끄적였다.

빙하 조각이 녹아 떨어지는 순간도 많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천둥소리 같은 무서운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감히 흑백 그림으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때의 감동을 선 하나하나를 통해 남기는 건 정말 특별한 일이다.




알래스카 크루즈 계약을 마치고, 흑백으로만 남겨둔 스케치가 아쉬워 캔버스에 다시 그 풍경을 옮기고 색을 입혔다.

2015년에 그린 그림인데, 지금 이 빙하는 얼마나 녹았을까 궁금하다.



2015년 Zaandam호를 타고 누볐던 알래스카 항해기가 궁금하시다면, 브런치북에서 확인해 보세요. [브런치북: 크루즈 피아니스트 in 알래스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