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iplined, Optimistic, Open-minded"
아침에 일어나니 미국 친구들 그룹챗에 메시지가 와있었다. Facebook memories 스크린샷과 함께.
Annalise: "14 years ago was Judy's audition. Still a special memory!"
Caroline: "Omg this memory will remain forever!"
한국은 2월 29일 아침이었지만 친구들은 2월 28일에 보낸 메시지.
버클리 오디션 본 그날이 벌써 14년 전이구나 싶지만 그날은 일분일초가 생생히 기억난다.
2010년 2월 28일은 일요일, 여느 때처럼 추운 시카고 겨울이었다.
여러 지역에 교수진을 파견해 오디션을 진행하는 버클리 덕분에 나는 보스턴 캠퍼스까지 가지 않고 시카고에서 오디션을 볼 수 있었다.
당시 나는 고등학교 senior이었고, 버클리 오디션 준비를 나름 열심히 한 상태였다.
추운 일요일 아침, 7시쯤 일어나서 손가락 좀 풀고, 블랙 원피스를 입고(한겨울에 얇은 여름 원피스를 입었었다. 불쌍한 나 ㅠㅠ) 프린트해 놓은 구글맵을 챙겨서(초행길을 갈 땐 미리 구글맵 프린트가 필수였던 시절!!) 집을 나왔다.
일요일은 온 가족이 교회에 가는 날이라 나는 오디션 장소에 친구들과 함께 가기로 했었다. 당시 할머니댁에서 살고 있었는데, 다들 주무시던 시간이었는지 집에서 혼자 조용히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내 귀여운 붕붕이 연두색 뉴비틀 시동을 켜고 약속대로 친구들 세 명을 픽업하러 갔다.
가장 친하고 가까이 사는 캐롤라인, 학교 근처에 사는 토이와 애나리사.
시카고 외곽 한적한 동네에 사는 우리 네 명은 연두색 뉴비틀을 타고 조용한 일요일 아침, 시카고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길 헤매다가 오디션 늦으면 어떡하지, 사고라도 나면 어떡하지, 다운타운 운전할 일은 거의 없는 데다 초행길이라 겁이 많이 났다. 그런 불안함 때문에 오디션 자체에 대해 긴장할 겨를이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차에서 함께 수다 떨어준 친구들 덕분에 불안하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운전을 했다.
다행히 오디션 장소를 한 번에 잘 찾아서 여유 있게 들어갔다. 무슨 학교 건물이었는데 낡은 건물인 데다가 조명도 거의 꺼져있어서 살짝 오싹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굉장히 추웠다. 이렇게 으스스한 데서 버클리 오디션을 한다고..?
"Berklee Audition" 싸인을 따라가니 복도에 앉아서 순서를 기다리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있었고, 나도 친구들 세 명과 함께 대기석에 앉았다.
Assistant가 와서는 내 이름과 오디션 일정을 확인하고는 악보 몇 장을 주며 15분간 warm up 하라고 작은 피아노실로 안내를 해줬다.
받은 악보는 15분 후 오디션 때 "초견"으로 연주해야 할 악보 몇 장이었다.
'이렇게 쉬운 악보를 준다고..?'
너무 단순한 악보여서 웜업 없이 바로 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어쨌든 15분의 연습시간은 주어졌으니 내가 준비한 자유곡을 치면서 얼었던 손을 녹였다.
15분보다 더 지났을 때쯤, 연습실을 나와 오디션실로 안내를 받았고 푸근한 이미지의 할아버지 교수님 세 분이 앉아계셨다.
"Tell us about yourself!"
교수님들께 내 소개와 준비한 자유곡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했다.
"제가 너무 좋아하는 The Tom and Jerry Show라는 곡을 연주할 건데 제가 듣고 일일이 악보를 그렸어요"
(당시엔 시중에 악보가 없었다. 있었어도 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듣고 따라 치면 되니까?)
오선지 스프링공책에 연필로 빼곡히 그린 11장짜리 악보를 펼쳐서 보여드렸다. 혹시나 내가 직접 악보를 만들었다는 걸 믿지 않을까봐.
"Wow, let's hear it!"
엄청 떨렸지만 열심히 준비한 대로 5분 가량 되는 곡 연주를 큰 실수 없이 마쳤다.
교수님 세 분이 박수와 감탄을 아낌없이 표현하셨다. 미국 특유의 "Amazing, fantastic, excellent!" 등등.ㅋㅋ
그중 한 분은 정확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I will never play piano again." 내 연주 이후엔 감히 피아노에 손도 안 대시겠다는 트럼펫 연주자 교수님이셨다. ㅋㅋㅋ
그렇게까지 많은 칭찬을 받을 줄은 전혀 생각도 못했다. 일단, 처음 오디션실에 들어갔을 때 교수님들의 환한 표정부터가 내가 예상했던 모습과 정 반대였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겪었던 대회, 평가, 시험, 경쟁 분위기에 익숙했던지라 "무표정에 차가운 눈빛의 교수들이 내가 못하는 걸 최대한 찾아내려고 할 거야"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자유곡은 성공적으로 마쳤구나, 휴, 큰 거 지나갔다.
"So, you must have perfect pitch."
"Yes"
내가 절대음감을 가졌다는 걸 알고는 음감 테스트는 하지도 않고 바로 pass.
교수님 한분이 두꺼운 악보집을 가져오시더니 "piano"라고 쓰여있는 섹션을 펼치셨다.
"You had 15 minutes to practice this, right?"
엥? 제가 15분 웜업 때 받았던 악보랑 다른걸요..? 이건 처음 보는 악보예요...
교수님들도 잠시 엥? 하시길래
"제가 받았던 악보엔 가사가 있었어요"라고 했더니 펄럭펄럭 두꺼운 악보집을 넘기더니만 "혹시 이거였어?" 하고 보여주신 악보는 "Vocal" 섹션이었다.
YES!
안내원이 내가 보컬 오디션을 보는 줄 알고 초견 악보를 잘못 준 것이었다.
띠용~~~
"Oh well, let's do REAL sight reading, then."
교수님은 다시 piano 섹션의 악보를 펼치더니 나보고 "진짜" 초견으로 연주를 해보라고 하셨다.
모두에게 주어지는 15분 연습시간이 나만 없는 채로 연주를 해야 하는 상황!
순간 당황했지만 다행히 내게는 쉬운 악보여서 정확하게 연주를 마쳤다.
오! 그럼 나는 불리한 상황에서 연주 잘했으니까 포인트 좀 얻으려나? 내심 기뻤다.
"Perfect. Now, can you reharmonize it?"
갑자기 그 자리에서 화성 편곡을 하라니 ㅠㅠ 전혀 예상치 못한 시추에이션!
당시 내가 알던 화성학 기초를 활용해서 몇 군데 코드를 바꿔서 연주했다. 굉장히 자신 없는 톤으로 쑥스러운 미소를 띠고 살살 연주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Good good. Show me some blues."
"Any key?"
"Yes, any key."
가장 만만한(?) F 블루스 연주로 오디션의 마지막 관문을 넘었다.
많이 긴장했었는데 교수님들의 따뜻한 미소와 칭찬으로 화기애애하게 오디션을 마쳤다.
오디션실을 나오는데 대기하던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ㅇ_ㅇ? 나한테 박수를? 얼떨결에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나는 인터뷰실로 바로 안내를 받았다.
마침 내 친구들이 인터뷰실 바로 앞에 앉아서 내가 인터뷰실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날 응원해 줬다.
Latoya라는 예쁘장한 젊은 여자와 1:1로 앉아서 인터뷰를 시작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난 인터뷰 준비를 많이 하지 않았었다. 인터뷰는 면접인데! 면접은 어렵고 무서운 건데!
많은 한국 입시준비생들과 다르게 나는 "입시 전문" 학원을 다니거나 꿀팁을 전수받는 상황이 아니었다. 주어진 정보는 버클리 웹사이트에 나온 정보가 전부였다. 입학지원서와 자기소개서도 혼자 쓰고 제출했고 지역 오디션 신청도 혼자 하고 학교와 이메일 여러 번 주고받으며 입시 준비를 했다.
아무튼, 난생처음 "면접"을 하는데 그냥 친구랑 대화하듯이 자연스럽고 재밌게 질문을 주고받았다.
버클리에 왜 오고 싶은지, 무슨 전공을 왜 하고 싶은지, 내가 살아온 배경, 등등 예상했던 질문들 외에 기억에 남는 질문이 하나 있다.
"Describe yourself with three adjectives."
세 개의 형용사로 나를 표현하라고라고라... hmm... 잠깐을 고민하고 내가 대답한 단어는
Disciplined, Optimistic, Open-minded 이렇게 세 개였다.
내가 얘기하고 나서도 "오 나 좀 잘 골랐네" 싶었다. ㅋㅋㅋㅋㅋ
Latoya도 만족스러웠는지 오호~ 하며 타이핑을 하고는 내게 물었다.
"아까 복도에 앉아서 널 응원하던 three girls는 누구야?"
"They're my friends!"
"You came here with your friends?"
내가 친구들이랑 왔다는 사실이 조금 신기하다는듯한 반응이었다. Cousins일까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가족이라고 하기엔 세명의 생김새가 많이 다르다. 미국인, 태국인, 브라질인, 나는 한국인 ㅋㅋㅋㅋ 그래서 누구냐고 물어본 것 같다.
애들이 오디션 보러 올 땐 대부분 학부모가 동행하니 친구 셋 데려온 내가 특이하긴 하지.
Latoya와의 인터뷰를 편안하게 마치고 나오자마자 역시나 세명의 친구들이 호들갑을 떨며 나를 맞아줬다.
오디션 끝! 인터뷰 끝! I'm done! I'm free!!
연두색 뉴비틀 붕붕이를 넷이서 타고 복잡한 시카고를 빠져나와 한적한 우리 동네의 파스타 샐러드집 Sweet Tomatoes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미국인, 태국인, 브라질인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며 내 평생 잊지 못할 2010년 2월 28일을 보냈다. 지금까지도 돈독한 우정을 가꿔나가는 우리 네 명. 내게 정말 중요하고 긴장도 많이 했던 입시 오디션의 순간에 동행해 준 친구들, 진짜 고맙다!
친구들 말에 의하면, 복도에서 내 연주소리가 다 들렸는데 그때 사람들이 다들 놀라고 쫄아서(?) 내 정체를 그렇게 궁금해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오디션실에서 나왔을 때 다들 박수를 친 거였구나!
그 당시 나는 다른 버클리 입시 준비생들이 어떤지 전-혀 몰랐다. 학원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땐 유튜브도 완전 초창기라 아무것도 없었고, 주변에 음대 입시를 하는 친구도 없었기 때문에 나를 상대적으로 평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어렸을 때 한국에서 참가한 피아노 대회 경험, 비슷한 수준의 곡과 연주력으로 경쟁자 모두가 쟁쟁했던, 서로를 견제하던 그 경험을 토대로 버클리 오디션도 그럴 것이라 예상했었다. 대부분 나처럼 열심히 준비했겠지, 나처럼 어릴 때부터 음악을 시작했겠지 등등 "내가 하는 건 모두가 당연히 하는 정도의 몫"이라는 생각이 컸다.
뒤늦게 알게 됐다.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는 "당연히 해야 하는"것들은 많은 학생들에게 당연하지 않았고
음악을 갓 배우기 시작한 학생들도 많았고
그냥, 노래방 가서 노래 한 곡 하듯이 오디션을 가볍게 여기는 학생들도 많았다.
그들이 다 못하나? 그건 또 아니다.
정말 다양한 환경에서 자란 각양각색의 어린 뮤지션들이 모인 곳이 버클리였다.
한국에서는 음악 입시를 위해 자퇴를 하고, 하루에 10시간씩 연습을 하고, 단기간에 완성형 뮤지션이 되기 위해 온갖 투자를 다 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걸 안다. 오로지 입시를 위해 다른 건 다 제쳐둔다. 나는 그들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내가 겪었던 입시와는 너무 다른 형태라 가끔은 혼란스럽다. 그렇게까지 "음악에만 올인" 해야 하나?
나도 연습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극복해야 할 것들도 많았다(지금도 너무 많다). 어려운 거 투성이에 재즈가 뭔지도 모르는데 미국 고등학교 빅밴드에 얼떨결에 들어가서 곤욕을 치루기도 했다. 너무너무 하기 싫었지만 버텼다. 그런 와중에 The Tom and Jerry Show는 듣자마자 이건 쳐야겠다! 싶어서, 좋아서, 잘 치고 싶어서 연습을 해서 입시곡으로 연주를 했고, 미국 고등학교 생활도 착실히 했으며, 세명의 친구들이 일요일 이른 아침에 입시 현장에 같이 가줄 만큼 친구들과의 즐거움도 일상에서 누렸다. 스스로 입학원서 준비, 학교와의 커뮤니케이션도 했어야 했고, 여하튼 버클리 오디션을 위해 일상을 제쳐두긴커녕 모든 걸 다 유지한 채 플러스 알파로 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난 다방면에서 다듬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Disciplined, Optimistic, Open-minded 세 단어로 나를 표현할 수 있었던 거 아닐까?
한 가지에 몰두하는 건 필요하다. 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고 그 능력은 분명히 빛을 발하는 때가 온다고 믿는다. 하지만 남들만큼 몰두하지 않는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 건 아니더라. 일상에서 겪는 소소한 경험도 한가지에 몰두했을 때 얻는 것 만큼이나 가치가 있다.
내가 만약 일상을 다 포기하고 매일 10시간씩 피아노 연습만 하며 입시 준비를 했다면 나를 표현하는 형용사 세 개를 말해보라는 질문에 뭐라고 답했을까?
Mindless, Dry, Stubbo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