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님 왕자님 동화 한편 뚝딱
벨기에라는 나라에 와볼 일이 얼마나 있을까?
유럽 여행을 해도 벨기에는 탁 떠오르는 나라는 아닌 것 같다.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은 알아도, 브뤼헤(Bruges)는 처음 듣는 도시였다.
일단, 항구에서 브뤼헤까지 가기 위해 기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실컷 놀다가 크루즈 놓치면 안 되니까 사진으로 기차 시간표를 남겨놓았다.
이 날은 클래식 연주자 친구들 대여섯 명과 함께 하루를 보냈다.
뮤지션 여자들이 모이면 까탈스럽고 예민할 거라고 많이들 예상하는데 그것은 편견이올시다!
모두 털털하고 유쾌한 친구들이었다. 지브롤터 바위산 등반도 같이 하면서 많이 친해진 시점이었다.
기차를 타고 브뤼헤에 내렸다. 기차역에서 시내까지도 꽤 걸어가야 했다.
귀여운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뾰족한 성당을 랜드마크 삼아 쭉 쭉 따라 걸었다.
처음엔 소박하고 조용한 길이었다.
걷다 보니 상점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고 마차도 있었다!
그리고 마주한 브뤼헤의 중심, 마르크트 광장!
우와…..
사진 속의 건물은 브뤼헤 시청 건물이다. 왼쪽에는 벨기에 특유의 뾰족하고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늘어져 있었다.
여태까지 봤던 지중해 도시들의 건축물과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지중해 도시는 중세시대 전쟁 영화에 나올법한 무겁고 중후한 느낌이라면, 벨기에는 왕자님 공주님이 나오는 동화 속에 나올법한 느낌이었다.
저 시청 건물에서 왕자님이 말을 타고 공주를 찾으러 다그닥 다그닥 나갈 것 같잖아..?
심지어 지나가는 강아지와 할아버지까지도 동화 속 캐릭터 같았다.
한마디로 브뤼헤는 러블리 그 자체인 도시였다.
러블리한 도시와 어울리게도 스윗한 와플은 바로 벨기에의 전통 음식이다.
길 가다가 붕어빵 사 먹듯이, 우리는 달콤한 냄새를 폴폴 풍기는 작은 와플가게에서 인당 하나씩 사 들고는 광장에서 따끈한 와플을 즐겼다.
와플+초코+생크림+딸기 조합인데 맛이 없을 수가 없지!
마르크트 광장에서 서로 사진을 잔뜩 찍어주고, 우리의 주 목적지로 향했다.
보트 타고 운하를 도는 Canal Tour를 꼭 하라는 추천을 받고 다 같이 보트 투어를 하기로 한 것이다.
보트 투어 선착장에 도착하니 왜 이걸 추천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마르크트 광장과는 또 다른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바로 여기 있었다.
미녀와 야수 Bell이 공주가 되기 전, 천진난만한 소녀일 때 이런 동네에 노래하며 깡충깡충 뛰어다닐 것 같은 풍경이었다.
아까 광장에서 본 화려한 건물에서 왕자님이 말 타고 나와서,
이런 동네에서 과일 바구니 들고있는 가난한 소녀에게 반하는 이야기..
You know what I mean????
보트 투어를 기다리는 줄에 서서도 친구들과의 수다는 계속되었다.
무슨 얘기를 그렇게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날, 크루즈 항구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아만다와 나눈 대화는 다소 충격적이어서 기억이 난다..(글 끝부분에 공개)
우리 뮤지션 무리는 작은 보트에 옹기종기 탑승했다.
그 큰 배에서 몇 달간 사는 사람들이 또 보트에 탄다고 좋아하는 게 참 웃긴다.ㅋㅋㅋ
보트는 운하를 따라 천천히 이동했다.
걱정 근심 하나 없는 그 평화로운 순간에 내겐 딱 하나의 근심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오리인지 백조인지, 무리 지어 있는 거대한 새들에 대한 공포였다…
그들이 제발 푸드덕 날갯짓을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새 무서워 ㅠㅠ
다행히 새들은 우리한테 전혀 관심이 없었고, 내가 꺅 소리 지르는 순간 없이, 평화롭게 보트 투어를 마쳤다.
주목적이었던 보트투어를 마쳤으니 남은 시간은 자유롭게 시내를 돌아다녔다.
초콜릿샵에 들러서 벨기에 초콜릿 몇 개와 엽서 몇 장도 집었다.
크루즈로 돌아가기 전, 벨기에 맥주라는 체리 맥주를 한잔 하러 들렀다. 안주는 감자튀김!
오전엔 와플, 오후엔 맥주에 감튀, 맛 없을 수가 없는 조합의 연속은 곧 살이 빠질래야 빠질 수 없는 조합^^
맛있게 먹으면 0 칼로리라는데, 그건 뻥이다. 난 항상 맛있게 먹는데 몸에 축적되는 칼로리는 어마어마한걸 보니..
체리 맥주는 그닥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냥 벨기에 맥주 체험한 거에 의미를 두기로 ^^
이 날은 친구들 무리랑 이동하느라 현장 스케치를 할 수 없었다.
대신, 크루즈로 돌아와서 사진을 보고 벨기에의 예쁜 건물들을 스케치로 남겼다.
그동안 봤던 건물들과 확실히 다른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선을 단순화해서 다른 그림체를 시도해 봤다.
꽤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완성되었다!
브뤼헤 구경을 알차게 마치고 크루즈 항구로 돌아가는 기차 안, 나는 아만다와 나란히 앉았다.
타마스와 open relationship중인 아만다, 그 자체만으로도 내겐 굉장히 특이한 존재였는데, 이 날 기차에서 들은 내용은 another level의 특이함이었다.
아만다는 레이첼이라는 사진작가 직원이랑 친하게 지내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 둘은 단순 친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내게 털어놨다.
… ㅇ_ㅇ ..
그러니까, 타마스라는 남자와 결혼 가능성을 두고 오픈 릴레이션십중이야. 그래, 그럼 뭐 다른 애인을 만날 수 있다고 서로 합의한 거까진 알겠어..
그런데 그 애인이, 남자가 아니라, 동성인 여자라고..?
그러니까 아만다는 남자친구도 있고 여자친구도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여기서 더 충격적인 건….
아만다 레이첼 둘이 사귀는 걸로도 모자라, 게이인 다니엘까지도 그 관계에 involve 되어있다는 거다.
다니엘은 게이고, 아만다랑 레이첼은 여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지구는 평평하다는 소리야 싶었지만 나는 더 자세히 묻지는 않았다.
내 놀란 표정은 이미 드러날 대로 드러났지만, 더 물어봤다가는 아만다를 외계인 보듯이 바라보게 될까 봐 적당한 놀라는 거에 그쳤다.
적당한 타이밍에 기차가 항구에 도착하면서 다행히 충격의 대화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대화는 그저 충격의 서두에 불과했고, 후엔 이런 이야기를 들어도 무덤덤해지는 내가 되었다.
크루즈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만으로도 책 한 권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내 기준에 외계인 못지않게 특이한 사람이지만 난 아직도 아만다와 인스타그램으로 서로의 안부를 전하며 지낸다.
아만다는 결국 타마스와 결혼도 했고, 심지어 임신도 했다.
그 과정 중에, 혹은 지금까지도, 아만다와 타마스는 아마 오픈릴레이션십을 유지하며 제3, 제4, 제5자.. 가 존재했을 텐데, 그래도 둘이 결혼하고 아이까지 가진 걸 보면 서로가 1순위이긴 한가보다. (?_? 이해하려고 애쓰는 나..)
이렇게, 크루즈 생활은 상상 밖의 이야기들을 접하는 환경을 만들어줬다.
코닝스담 크루즈는 벨기에를 떠나 북쪽으로 항해를 이어 나갔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