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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리스본 전차에서 받은 환영식

소매치기는 유럽 여행 필수 코스 아니겠습니까?

by 연주신쥬디

코닝스담 크루즈는 지중해 크루즈를 거의 마치고 북유럽을 향하던 길목에서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 정박했다.

라테는 말이야.. 쿵쿵따 할 때 필수 단어가 바로 리스본이었단 말이다..

그리고 포르투갈은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친근한 나라가 되었지 말이다. ㅋㅋㅋ

(공감하시는 분은 좋아요 꾹^^)


리스본에서 뭘 해야 할지 크루즈 베테랑 친구들에게 물었더니, 모두가 입을 모아 “에그타르트 원조, Pasteis de Belém은 꼭 가라”라고 했다.

20분쯤 외곽으로 나가야 한다는데, 에그타르트 하나 먹으러 굳이 거기까지…?
맛집을 일부러 찾아다니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베프와 결국 가보기로 했다.


Pastéis de Belém은 트램(전차)을 타고 꽤 가야 하는 거리에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한국 지옥철만큼이나 북적이는 트램을 타야만 했다.

만원 트램 안에서 꼼짝 못 한 채 정거장을 지나던 중, 기사가 길 한복판에서 트램을 갑자기 멈췄다.

왜 여기서 멈췄지? 모두가 의아해하던 그 순간, 덩치가 산만한 기사가 벌떡 일어나 승객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더니만 "You! You! You!”라는 듯 삿대질까지 하며 특정 승객들을 지목했다.

포르투갈어를 알아듣지 못하니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뭐야, 무서워!!!’

트램 문이 열리자 순간 대여섯 명의 승객이 황급히 뒷문으로 내렸고, 그제야 기사는 다시 운전을 시작했다. 몇몇 승객은 박수를 쳤다.

뭐지, 무임승차인가…?


여전히 만원인 트램을 타고 목적지에 도착해 내린 뒤에야 베프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베프는 트램에서 누군가가 가방을 건드리는 느낌이 들어서 확인해 보니 지퍼가 열려있었다고 했다. 다행히 없어진 물건은 없었고 주변을 경계하며 가방을 사수하고 있었는데 기사가 고함을 치는 상황이 벌어졌고, 베프 뒤에 서있던 남자가 삿대질을 받고 내렸다는 것!


알고 보니 트램 기사는 소매치기 일당을 알아보고 쫓아낸 상황이었다. 아하..!!!

기사가 범행 장면을 본 건지, 일당의 얼굴을 알고 있었던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삿대질로 범인을 정확히 집어내 쫓아냈던 것이다. 기사님 멋져!!!


우린 다행히 소매치기를 당하진 않았고, 독특한 환영식을 받았다.

덕분에 내게 리스본은 ‘소매치기 트램 사건의 도시’로 기억된다.


Pestéis de Belém 도착!

나는 작은 카페를 예상했는데, 여긴 공장을 곁들인 카페였다.

외벽과 카페 내부는 포르투갈 특유의 예쁜 파란 문양 타일로 꾸며져 있었지만 우리가 앉을자리는 없었다.

우리를 포함한 방문객들은 소풍 온 학생들처럼 일렬로 줄을 서서 유리 너머로 에그타르트가 대량생산 되는 현장을 구경하고 타르트를 주문했다.

음.. 에그 타르트가 많네, 맛있겠네 (흔한 S의 감상평)


디저트는 가리지 않고 좋아하지만 에그타르트를 특별히? 선호하지는 않아서 그런지, 나는 별 감흥이 없었다.

카페에는 자리가 없었기에 우린 take out으로 타르트 두 개씩 구매하고 붐비는 곳을 빠져나왔다.

베프와 공원에 앉아 도란도란 타르트를 먹었다. 우리의 breakfast였다.

확실히 뷔페에 가면 놓여있는 에그타르트보다는 훨씬 맛있었다. 바삭한 크러스트와 부드러운 커스터드의 조합 덕분에 앉은자리에서 몇 개도 순식간에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도 두 개만 사 와서 두 개로 그쳤다. ^^


이 에그타르트 두 개 먹겠다고 사람 가득한 트램도 타고 소매치기 일당 쫓겨나는 것도 보고, 참 값진 타르트다..

최근 포르투갈 맛집 추천으로 이 에그타르트집이 sns에서 유행하던데, 내가 갔을 때는(2018년 5월) 한국 관광객은 거의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제 한국 여행객들의 인증샷에 에그타르트가 필수처럼 등장하겠지?

나는 이미 다녀왔지롱.


Belem을 떠나 리스본 시내로 돌아오는 트램에선 아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 휴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 시내

내 여행 스케치북에 담긴 리스본 시내

리스본의 거리, 전차를 위한 전깃줄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한국의 지저분한 전봇대와 전깃줄이 떠올랐다.

스파이더맨이 리스본에 있었다면 이 전깃줄 위로 날아다녔겠지.


아줄레주로 꾸며진 건물 외관과 택시

그리고 리스본의 건물들은 통일된 듯하면서도 각자의 개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 조화로운 다양성 위에, 포르투갈 특유의 타일 장식인 아줄레주(azulejo)가 도시 전체를 덮고 있는 게 인상 깊었다.


이 글을 쓰고 있자 하니, 획일적인 무채색 건물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한국인들이 일상 속에서 미적 감각을 자연스레 키우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 분야에서 뒤처지지 않고 두각을 드러내는 한국인들은 참 대단하다.


Time Out Market

베프와 리스본 시내를 걷다가 들른 Time Out Market은 푸드코트 같은 구조였다.

Time Out Market (Mercado da Ribeira)

어떤 음식이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진 않는다.

내 관심을 사로잡을만한 음식이 없어서 기억이 안 나는 거겠지?

솔직히 “포르투갈 음식”에 대해 아는 게 지금도 없다.. 미안해 포르투갈..


어쨌든 점심은 먹어야 하니, 베프와 작은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메뉴를 골랐다.

문어 샐러드와 해물 리조또를 먹었나 보네.. 사진 없었으면 까맣게 잊었을 텐데.

아마 레스토랑에서 포트와인을 서비스로 줬나 보다.

그땐 포트와인을 몰랐는데, 난 분명히 "아 너무 달아" 라고 했겠지?



리스본 풍경과 보사노바


특별할 거 없었던 메뉴로 점심을 때우고 나는 베프와 리스본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로 향했다.

이 날, 난 빨간 가죽재킷을 입고 다녔는데 리스본의 빨간 지붕과 내 패션이 오묘하게 잘 어울리는 날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5월이었다. 내가 가본 모든 곳의 5월은 늘 푸른 계절인 것 같다.



전망대 옆에 평화로운 공원도 넓게 펼쳐져 있었다.

잔디밭에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근처에 기타 치며 보사노바를 부르는 버스커가 있었는데 이 풍경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순간이었다.

솔직히 에그타르트나 푸드 마켓보다 나는 이 공원과 보사노바가 더 기억에 남는다.

난 어쩔 수 없는 뮤지션인가보다, 특히 보사노바와 브라질리언 음악을 무척 좋아하는.

뚜벅뚜벅 리스본 시내 구경을 마치고 크루즈 항구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항구 근처까지도 예쁜 건물들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었다.



어린이 장난감 인형의집 처럼 생긴 리스본의 예쁜 건물들.

이런 예쁜걸 자주 보면 마음속에도 예쁜 게 차곡차곡 쌓이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서울 도심을 다니면서 거리가 예쁘다고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는데…

사람들이 내게 왜 한국에서 사냐고 물으면 safe, convenient 두 단어밖에 쓰지 않는다. 내 마음속에 예쁜 게 차곡차곡 쌓이는 도시는 아닌 것 같다. 예쁜 동네에 살고 싶다..... ^^


짧지만 강렬했던(트램 사건이 특히) 리스본을 뒤로하고 크루즈는 쭉쭉 북쪽으로 향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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