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는 찍먹하고 지나갈게요
스페인의 대표적인 관광 도시, 바르셀로나!
발렌시아에 살 때 여러 번 왔던 곳이라 이번 방문이 무척 설레거나 새롭지는 않았다.
구엘 공원, 사그라다 성당 등 관광지는 이미 다녀왔던지라 이 날은 바르셀로나 시내를 걷고 타파스로 간단히 요기를 한 게 전부였다.
내 여행 스케치북에는 도시마다 한 장의 그림이 담겨있다.
모든 도시에서 그림을 그리는 건 아니지만, 인상 깊은 풍경이나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스케치를 하는 편이다.
보통은 한 도시가 스케치북 한 장만 차지하는데 바르셀로나는 유일하게 두 장을 차지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와 바르셀로나 대성당, 두 장을 할애할 수밖에 없을 만큼 인상 깊었다.
지난번에 눈으로 꼼꼼히 담고 그렸으니 이번 방문 때는 관광지를 쓰윽 지나치고 타파스를 먹으러 갔다!
타파스의 기본, Patatas Bravas!
아, 파타타스 브라바스 위에 올라간 에이올리 소스가 너무 맛있는데 한국에선 그 맛을 찾을 수 없다는 게 늘 아쉽다.
맥주 한잔과 타파스로 뱃속에 스페인 추억 한 조각을 담고 우린 크루즈로 돌아왔다.
(선사마다, 팀마다 규율은 다릅니다. 제가 속했던 선사와 밴드의 경험을 기록한 것이며, 모든 크루즈 뮤지션의 상황과 동일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바르셀로나는 찍먹하고 지나가서 특별한 에피소드가 없으니, 크루즈 뮤지션의 일상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크루즈 안에는 다양한 뮤지션들이 있다. 클래식 연주자들, 댄스파티 분위기를 조성하는 락앤롤/블루스를 연주하는 밴드, 피아노 치며 노래하는 Piano Bar Entertainer 듀오, 그리고 내가 속한 하우스 밴드, 일명 “THE BAND.”
하우스 밴드와 타 뮤지션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우리는 정해진 레퍼토리가 없다는 점이었다.
다른 팀들은 크루즈 승선 전에 뉴욕에서 합숙 리허설을 하며 프로그램을 준비하지만, 하우스 밴드는 크루즈에서 즉석으로 결성된다. 계약 기간도 제각각이라 멤버가 수시로 바뀌었고, 그때그때 누구와 무대를 서게 될지는 일종의 ‘제비 뽑기’ 같았다.
처음 크루즈 피아니스트 일을 시작했을 때 내가 느낀 당혹감은 [크루즈 피아니스트 in 알래스카] 편에 생생히 기록되어 있다.
초반엔 우여곡절이 참 많았지만 크루즈에 데뷔한 지 3년이 지난 시점, 나는 이제 밴드리더를 해도 될 정도로 크루즈 뮤지션 삶이 익숙해졌다.
하우스 밴드의 일정은 상대적으로 여유로웠다.
주요 업무는 매일 저녁 열리는 두 번의 메인 공연(가끔은 세 번) 연주.
그리고 항해일(sea day)에는 오후 티타임 때 라운지에서 연주하는 게 전부였다.
아래 사진은 각 뮤지션들의 스케줄이다.
엔터테인먼트 팀 오피스엔 이 화이트보드에 스케줄이 매 크루즈마다 업데이트 됐다.
메인 공연장인 World Stage 일정이 곧 하우스밴드의 일정이었다.
날짜/항구/정박해 있는 시간(예: 8am-5pm)/그날의 공연을 보고 하우스 밴드 참여 유무와 리허설 유무가 정해졌다.
One World, Off the Charts, Musicology와 같은 공연은 캐스트(싱어와 댄서들이 있는 뮤지컬 같은 그룹) 공연인데, 전부다 트랙을 쓰는 공연이라 라이브 밴드가 필요 없었다. 즉, 하우스밴드는 day off!
뮤지컬이 아닌 날은 Guest Entertainer가 와서 공연을 하는 거였는데, 게스트 엔터테이너의 장르는 다양했다.
가수, 뮤지션, 댄서, 마술사, 스탠드업 코미디언, 아크로배틱 아티스트까지. 하우스 밴드를 필요로 하지 않는 공연일 경우, 우리에겐 day off가 또 주어졌다.
위 스케줄의 12일 중에 하우스 밴드가 연주한 공연은 여섯 번이었다. 이틀에 한 번씩 day off였던 셈이다.
하우스 밴드가 공연에 참여하는 날엔 주로 오후 5시에 짧은 리허설을 했다.
게스트 엔터테이너를 만나 악보를 받고 차례대로 쭉 합주하는(run-through) 리허설이었다.
본 공연 때는 항상 올블랙에 구두를 신어야 했지만, 리허설 때는 편한 복장으로 인이어만 대롱대롱 들고 대-충 나와 곡을 익혔다.
정말 감사하게도, 이번에 만난 밴드 멤버들의 초견 실력이 출중해서 대부분 한 번의 run-through로 리허설을 금방 끝낼 수 있었다.
가끔 초견을 못하거나 실수가 많은 멤버가 있으면 밴드 전체가 고생을 하는데 우리 팀은 악보가 개떡 같아도 찰떡같이 연주하는 센스쟁이들이었다.
(내 첫 크루즈 때는 금쪽이 아저씨 George가 있었다. 크루즈 피아니스트 in 알래스카 편에 등장한다.)
밴드리더 크리스도 평소에는 천방지축 날라리 같다가도 연주할 때만큼은 리더로서의 카리스마도 있고 반듯한 사람으로 변신했다.
베이시스트 아구스틴, 기타리스트 알렉스, 베프와 나도 항상 시간도 잘 지키고 주어진 임무를 무탈히 수행하는, 한마디로 알잘딱깔센 뮤지션들이었다.
짧은 리허설 끝에 뷔페에서 저녁을 먹고, 다들 올블랙으로 차려입은 후 공연 시간 15분 전에 백스테이지에서 모였다.
공연 전엔 긴장할 법도 한데, 백스테이지는 그저 깔깔 웃음 넘치는 편안한 장소였다.
와이파이가 비싸 인터넷 대신 “리얼 휴먼 인터랙션”으로 시간을 채우던 시절이라 더 그랬던 것 같다.
자기 전에 잠시 켜는 인스타그램, 정박지 카페에서 몰아서 하는 인터넷.. 지금 생각하면 불편했지만 그 덕에 오히려 단순하고 맑은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세상과 살짝 단절된 환경이 싫지만은 않았다. 원치 않는 정보를 보고 들을 일도 없었으니까.
성악 반주부터 재즈, 팝까지 모든 장르를 넘나드는 곡이 주어졌는데 모든 게 쉬웠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큐를 놓치지 않는 것, 순간적인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것 등등 연주 이외에도 잘해야 하는 요소들이 많았다.
갑자기 베이시스트가 없어서 내가 키보드로 베이스를 연주했던 적도 있고, 무대에 바람이 불어 악보가 보면대에서 떨어지기도 했고, 아이패드 페이지를 넘기는 페달 배터리가 방전돼서 당황한 적도 있었다. 키보드 패치를 계속 바꿔가며 연주해야 하는 공연도 허다했는데, 그런 경우엔 건반보다 키보드 버튼 누르는 데에 더 신중을 가해야 했다.
잔잔한 스트링 소리가 나와야 되는데 이상한 효과음이 확! 나는 것만큼 티 나는 실수는 없으니까..
8시 30분 공연을 마치면 대략 30분가량의 휴식을 갖고 10시 공연을 바로 연주했다.
그 짧은 30분 동안은 숙소에 들어와 베프와 수다를 떨거나 Officer’s Bar에 가서 맥주 한잔씩 하는 날도 있었다. (취중연주는 안 비밀^^)
10시 공연은 관객도 확실히 적었다. 우리는 똑같은 공연을 두 번 하는 거라 혹-시 8시 30분 공연에 실수를 했다면 그걸 만회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럴 때면 연주자들끼리 눈을 마주치고 씩 웃는, 우리만 아는 소통을 주고받았다.
”Off the Charts”라는 뮤지컬 공연엔 매번 밴드가 무대에 투입되었다. 시대별로 빌보드 차트에 올랐던 유명한 곡을 선보이는 뮤지컬이었는데, 화려한 의상을 입은 싱어, 댄서들과 함께 연주자들도 공연의 일부가 되어 조명 아래에서 연주를 했다. 기억나는 몇 곡은 Twist and Shout, I will Always Love You, Hard to Say I’m Sorry, Single Ladies, 등 누구든 한 번쯤 들어봤을 팝송들이었다. 인이어를 꽂고 비트에 맞춰서 연주하는데 중간중간 캐스트 멤버와 아이컨택이나 간단한 제스처 등의 연기를 하기도 했다.
에너지 넘치는 댄서들의 동작은 매번 볼 때마다 신기하고 멋있었고, 몸매 유지를 위해 거의 먹지도 않는 여자 댄서들을 보면 저렇게 먹고 무슨 힘으로 그렇게 춤을 추나 싶었다.
대부분 5시 이후에 업무 일정이 시작하다 보니 그전까지는 자유시간이었다.
이번 크루즈 여정은 매일 새로운 도시에 정박하다 보니 자유시간은 대부분 땅에서 관광하며 보냈고, 파노라마 뷰로 탁 트인 gym이나 루프탑 조깅 트랙에서 운동을 했다. 친구들과 시시콜콜한 추억도 많이 쌓았다.
나는 크루즈를 ‘잠시의 직업’으로 삼았지만, 평생 커리어로 이어가는 뮤지션들도 있었다.
목표한 저축액을 채울 때까지만 일하고, 그 돈으로 육지에서 자리를 잡거나 학자금 대출을 갚는 목적을 가지고 크루즈 직원이 된 사람들도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들이 참 현명했던 것 같다. 저축하기에 이만한 환경은 없으니까.
나도 그만두고 '크루즈 좀 더 해서 돈 더 모을걸' 하는 후회를 하기도 했다.
특히 한국에 오고 나서는 더 깊게 깨달았다, 크루즈만큼 괜찮은 조건의 직업은 한국에서 찾기 진-짜 힘들구나.
미국에서 받던 레슨비, 연주비, 레코딩비에 비하면 한국은 너무 저조했고(그만큼 cost of living이 싸긴 하지만) 다른 직업들의 급여도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낮다는 걸 한국에 오기 전까진 몰랐다. 이걸 알았더라면 나는 크루즈 일을 좀 더 하고 돈을 모은 후 한국에 오는 걸 고민해 봤을 것 같다.
‘좀 더 할 걸 그랬나?’ 하는 후회도 있지만, 결국 박수칠 때 떠난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매일이 공연이고 매일이 여행이었던 시간들. 바르셀로나에서는 특별한 에피소드 없이 스쳐 갔지만, 어쩌면 크루즈 안에서 살아낸 하루하루가 더 진짜 여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여행지도 좋았지만, 크루즈 뮤지션으로 산 날들이야말로 나에겐 가장 특별한 추억이다.
바르셀로나는 찍먹으로 지나갔지만, 다음 항구 리스본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스케치북의 한 장을 차지한 리스본의 풍경, 예상치 못한 사건까지.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