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지 두 달, 특별히 임신 계획을 하지 않았는데 처음으로 해본 임신테스트기에 두 줄이 떴다.
기쁜 감정보다는 당황스러움이 더 컸다.
응? 한두 달 뒤에 준비해 보자고 남편이랑 얼마 전에 얘기했는데, 벌써 생겼다니?
하루는 혼자만 알고 있고, 다음날 아침 테스트기를 한번 더 해서 또 한 번의 두줄을 확인한 후, 남편에게 “임밍아웃”을 했다.
남편의 반응도 내 반응과 비슷했다.
남들은 막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기뻐 날뛰던데, 우리는 그 감정이 오는 데에 버퍼링이 좀 있었다.
그래도 설레는 마음을 차곡차곡 쌓으며 보건소에서 임산부 배지와 만점자리 혈액검사 결과지도 받고, 산부인과에서 초음파 사진도 받았다.
산부인과 첫 방문에서는 초음파로 아기집과 난황을 확인하면서 정확한 배란일을 알지 못하니 생리 주기로 계산하는 임신 주수보다 일주일정도 늦다는 진단을 받았다.
냉장고에 초음파 사진을 붙여놓으니 조금씩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룰루랄라 즐거운 태아이길 바라면서 남편이 “룰루”라는 태명도 지어줬다.
입덧은 없었다. 평소보다 숨이 좀 차는것 외엔 내 생활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출산은 조금 큰 병원에서 하고자 근처 대학병원 산부인과를 찾아서 두 번째 초음파 진료를 받았다.
6주 3일 차, 머리부터 엉덩이까지 1cm라는 콩알만 한 태아를 보고, 쿵쾅쿵쾅 심장소리도 들었다.
남편은 심장소리를 들으니 확실히 실감이 난다며, 소리가 너무 우렁차서 아들일 것 같다고 했다.
“심장 잘 뛰고 있고요, 말씀하신 대로 원래 주수보다 일주일정도 차이가 나네요. 예정일도 7일 뒤로 알고 계시면 되세요. 3주 뒤에 진료 오세요~”
3주.. 텀이 너무 긴데.. 그동안 어떻게 기다리지? ㅠㅠ
말띠 아기 디데이 달력이 광고에 뜨길래 고민 없이 구매하고 주수 달력으로 창틀을 꾸몄다.
임산부에게 좋다는 영양제를 꼬박꼬박 챙겨 먹고, 룰루가 태어나면 생길 변화에 대해 남편과 매일 얘기하면서 우리가 엄마 아빠가 된다는 사실에 기쁘고도 걱정되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한편으로는 이제 막 결혼했는데 우리 둘(+맘보까지 셋)만의 시간이 너무 짧게 끝나는 게 아쉽기도 했다.
룰루 태어나기 전까지 맘보랑 부지런히 놀러 다니기로 약속을 했다.
인스타 피드는 금세 임신, 출산, 아기 관련 정보로 도배되었고 자연스레 내 모든 관심사도 그쪽으로 쏠렸다.
하지만 내 몸은 여전히 임신 전과 다를 게 없었다.
남들은 초기에 시도 때도 없이 졸리고 피곤하다던데, 난 괜찮았다. 입덧도 여전히 없었다.
입덧이 있으면 어떨까 궁금했고, 난생처음으로 음식이 싫어지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혹시 오늘은 속이 메스꺼우려나?’ 하는 기대를 하기도 했지만 내 소화기간은 평소보다 더 튼튼했다.
그래서 평소보다 더 잘 먹었다. 원래 먹는 대로 찌는 체질이라 늘 식단 관리를 하는데 룰루를 핑계로 먹고 싶은걸 다 먹었다.
태아는 콩알만 한데 먹는 만큼 내 살로 붙는 게 싫었지만 이때 아니면 언제 맘껏 먹나 싶어서 신나게 먹었다.
안정기 전까진 운동 강도도 줄여서 하라니... 평소처럼 땀날 만큼 운동하고 싶었지만 운동도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 게 답답했다.
빨리 안정기가 돼서 성별도 알고, 운동도 편하게 하고 싶었다. 당연히 그 시기가 올 줄 알았다.
안정기 전까지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데, 난 가족들과 가까운 지인들에겐 임신 소식을 알렸다.
다들 진심으로 축하해 줬고, 입덧 없는 건 너무 다행이라며 먹을 수 있을 때 실컷 먹으라는 반가운 얘기로 기쁨을 나눴다.
입덧이 없었으니 못 먹는 것도 없고, 특별히 땡기는 음식도 없었다.
에라잇, 한밤중에 뭐 먹고 싶다고 남편 심부름 시키는 거 해보고 싶었는데 아쉽군!!!!
“오빠, 난 너무 멀쩡해서 룰루가 진짜 있긴 한 건지 모르겠어.”
“그러게, 없어진 거 아니야????? ㅋㅋ”
“그러니까. 다음 초음파 검사 때 보면 없어졌을지도 몰라 ㅋㅋㅋ”
우린 이런 농담도 자주 했다.
심지어는 “만약 룰루가 초기에 유산되면 많이 슬플까? 난 몇날며칠 울만큼 슬플 것 같지는 않아.. 막 내 애기라는, 생명체라는 느낌이 안 들어."라고 말하기도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다음 초음파를 기다리는 3주가 너무 길게 느껴졌다.
“이제 3일 뒤면 초음파 본다! 빨리 보고 싶다!!”
“빨리 내일모레가 왔으면 좋겠다!!”
“내일 드디어 병원 간다!! 얼마나 컸을까?”
목요일 이른 아침, 9주 1일 차, 진료 시간에 맞춰 남편과 산부인과에 도착했다.
몸은 좀 어떻냐는 원장님의 질문에 웃음 띈 목소리로 대답했다.
“입덧도 전혀 없고 저는 너무 멀쩡해요, 그런데 이틀 전부터 갈색 피가 아주 조금씩 나와요.”
약간의 피 비침은 있을 수 있단 걸 알았기에 원장님도 나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팔다리가 뿅 나온 룰루를 보고 싶은 들뜬 마음으로 초음파 진료를 시작했다.
스크린에 내가 예상했던 룰루의 모습이 떴다. 머리와 몸통, 짧은 팔다리.
"우와, 팔다리 생겼네요!"
하지만 원장님은 룰루가 얼마나 컸는지, 팔다리 유무에는 관심이 없으셨다.
대신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하시며 초음파 방향을 이리저리 바꾸셨다.
룰루 각도가 달라지기도 하면서 스크린은 바쁘게 움직였다.
그때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원장님께서 몇 번 더 갸우뚱하시더니 아껴두신 듯한 말씀을 꺼내셨다.
“아.. 얼마 안 된 거 같긴 한데….
.. 계류유산이에요.. “
네?????????????????????????????
“태아 심장소리가 안 들리네요.. 네.. 일단 옷 갈아입으시고, 제가 천천히 설명드릴게요.”
임신 테스트기 두 줄을 봤을 때처럼, 그 어떤 감정보다 황당함이 앞서 눈물도 나지 않았다.
‘임신 초기 유산이 흔하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나한테 일어날 줄이야….. 왜지.. 난 무척 건강한 사람인데..‘
남편과 나란히 앉아 원장님의 설명을 들었다.
초기부터 태아 발달이 주수보다 일주일 늦은 것도 그랬고, 이건 태아 염색체 이상인거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앞으로의 임신에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니 너무 걱정 말라는 말씀으로 시작하셨다.
그때부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임신 정보로 도배되어 있던 내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엔 계류유산에 대한 정보도 많았고, 나도 숙지했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계류유산일 경우 그 후 처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몰랐다. 내가 겪을 거라고는 생각 안 했기에 차마 거기까진 예습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단, 아무것도 안 하면 자연배출로 나올 수가 있어요. 그런데 언제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너무 오랫동안 기다리면 패혈증이 올 수도 있고, 어쨌든 산모에게 좋지 않기 때문에 저는 약물배출을 권해드려요. 최대한 빨리 입원하셔서 약물배출을 시도해 보시고, 혹시 약물배출이 너무 오래 걸리거나 통증이 심하면 그땐 수면마취하고 소파술이라는 수술로 자궁 안에 있는 임신 조직을 긁어내야 해요.”
입원. 약물. 통증. 마취. 수술. 유산.
3분 남짓한 짧은 대화는 나와는 너무 거리가 먼 단어들로 가득했다.
난 감기도 잘 안 걸리고, 코로나도 안 걸렸고, 병원은커녕 약국에 갈 일도 없는 튼튼한 사람인데 갑자기 3일 뒤에 입원이라니, 게다가 자궁 쪽 수술이라니.
계류유산이라니, 내가.
진료실에서 나와 복도에서 우는 것도 잠시, 만약의 수술에 대비하여 혈액검사, 심전도검사, 흉부 엑스레이를 찍고 귀가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주룩주룩 눈물이 나는 채로 각종 검사를 받았다. 그동안 남편은 병원 복도 대기석에 앉아 임신 사실을 알던 가족과 지인들에게 유산 사실을 알리는 카톡을 보냈다.
“이래서 안정기 전엔 임신 소식 얘기 안 하는구나.. “
“그러게..”
검사를 마치고 입원 안내문을 받아 병원을 나와 차에 탔다.
차에 타자마자 가족들에게 카톡으로 유산 사실을 알렸다.
나만큼 슬퍼했을 우리 가족. 이럴 땐 차라리 가족들이 멀리 미국에 있는 게 더 낫네, 싶었다.
가까이 있어서 만났더라면 내가 더 울었을 테니까.
눈물은 계속 났지만 슬픔에 잠기기 싫어서 남편과 맛있는 걸 사러 코스트코에 갔다. 본의 아니게 코스트코 오픈런을 하게 됐는데, 10시 전부터 사람들이 벌써 줄을 서있었다. 우린 어쩌다 보니 일찍 왔지만 이 사람들은 일부러 일찍 온 거일 텐데, 뭐 하러 일찍 오지? 궁금해하며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렸다.
저 멀리서 걸어오신 아줌마가 살짝 내 눈치를 보더니만은 자연스럽게 우리 앞에 서서 새치기를 했다.
참나.
지하철 임산부석에 앉아있는 아줌마들의 모습과 교차했다.
"오빠, 꼭 저 나이대 아줌마들, 저런 옷차림 아줌마들이 임산부석에 앉아있다? 근데 이런 데서 새치기까지 하는 줄은 몰랐네. 참나."
그 아줌마는 모르겠지, 5분 빨리 들어가려고 새치기한 그 자리 한 발자국 뒤엔 죽은 태아를 아직 품고 있는 여자가 서있었다는 걸, 그 여자가 팅팅 부은 눈으로 본인 뒤통수를 째려보고 있었다는 걸.
새치기 아줌마 덕분에 유산의 슬픔은 잠시 잊혔다.
“나 이제 회도 먹을 수 있어. 곧 방어 철이니까 방어회 실컷 먹을 거야. 오늘 바로 커피도 마실 거야!!!!”
코스트코에서 먹거리를 카트에 가득 담고, 집에 오는 길엔 동네 베이글 맛집에서 통통한 베이글 몇 개도 사 왔다.
양손도 무겁고 마음도 무겁게 집에 오니 꼬질한 맘보가 총총총 반겨줬다.
맘보를 보니 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맘보야, 맘보는 건강하게 태어나서 언니한테 와줘서 고마워. 맘보 아프지 마. 맘보 아프면 언니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슬플 거야. 아프면 안 돼..”
요 며칠새에 맘보가 유난히 나를 졸졸 쫓아다녀서 '맘보가 어디 아픈가?' 싶었는데, 혹시 맘보는 룰루의 유산을 알고 나를 위로하려고 따라다녔던걸까?
맘보랑 아침 산책을 나왔다. 룰루가 태어나면 유모차 끌고 맘보랑 산책할 상상을 했었는데 그런 날은 조금 미뤄두는 걸로 하자.
찬바람이 제법 부는 데다가 배고파서 산책은 짧게 마치고 돌아와 베이글로 배를 채웠다.
디카페인 대신에 진짜 커피를 마셨다.
그렇게 장을 보고, 맛있는 걸 먹고, 맘보와 산책을 하는 동안엔 눈물이 나지 않았다.
남은 눈물이 많다는 건 알았지만 하염없이 울고 있을 내가 아니었다.
맞아, 예전에 많이 슬펐을 때에도 난 일상에 충실했었지. 펑펑 울고 싶었지만 꾹 참고 Funk & Pop 앙상블 수업에 가서 온갖 신나는 곡을 연주했던 나였지.
눈물을 머금고 마이클 잭슨 P.Y.T를 연주하던 나.
우연히 이 날은 출근 없는 날이었는데, 만약 출근을 해야 했다면 난 또 눈물을 꾹 참고 일터에 가서 내 역할을 다 했을 것이다.
출근이 없는 만큼 긴 하루가 남아있었다.
빨리 해치우고 싶은 미션이 한 가지 있었다: 임신 사실을 알고 있는 지인들에게 유산 소식 알리기.
'어차피 해야 하는 슬픈 미션, 미루지 말고 후딱 해치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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