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소식을 전하기 위해 랩탑을 열고 카톡을 열었다.
'내가 누구누구한테 임신 사실을 얘기했더라..' 마음속으로 명단을 정리했다.
한 명 한 명 대화창을 열어 계류유산 소식을 적는데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이렇게 열댓 명에게 "근황 업데이트"를 줄줄이 했다.
이런 순간이 올 거를 염려해서 초기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난 임신 사실을 알린 거에 대한 후회는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른다고 해서 있던 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슬픈 일을 예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사실 그대로를 나누며 기쁨도 슬픔도 함께 하는데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유산은 마음 아픈 일이지만 부끄러운 일은 아니니 꽁꽁 숨길 필요는 없지 않은가.
아프지 않기 위해 덮어둘 수는 있지만 나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내 아픔을 말하는 게 싫지 않았다.
나도 그들의 아픔을 들어줄 수 있으니까. 그만큼 소중한 관계니까.
여러 개의 대화창이 활성화될수록 젖은 티슈가 테이블 위에 산처럼 쌓였다.
그렇게 한참을 훌쩍이며 "계류유산 됐어요"를 열댓 개의 대화창에 적어서 보냈다.
하, 아직 몇 명 남았는데, 내일 해야지.
일단 Mission Complete.
오늘의 할 일 끝.
카톡 하면서 눈물을 한껏 쏟아내니 한결 편안해졌다.
아직 하루가 많이 남아있는 오후 2시, 한숨 자려고 침대에 누웠지만 쉽게 잠이 오지는 않았다.
컴퓨터로 일하고 있던 남편도 잠시 눈을 붙이러 왔다.
남편은 전날 밤, 세 시간밖에 못 잤다고 했다.
이상한 꿈을 꾸다가 새벽 3시에 깼는데 도저히 잠이 안 와서 그냥 아침까지 컴퓨터 앞에서 일을 했다고 했다.
안 그래도 내가 새벽 6시에 잠깐 깼을 때 남편이 침대에 없길래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나 싶었는데, 새벽 3시에 깼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네.
평소에 꿈도 거의 안 꾸고, 늘 잘 자는 남편인데 그날 밤은 왜 그랬을까?
무의식은 룰루의 심장이 뛰지 않는다는 걸 진작에 알고 있었던 걸까?
남편은 금방 낮잠에 들었지만 나는 옅은 잠에 살짝 들었다 깰 뿐이었다.
자고 있는 남편을 보니 오빠도 많이 속상할 텐데 애써 괜찮은 척하는 것 같아 안쓰러웠다.
우리가 부부로써 첫 시련을 맞이했구나,
이런 슬픈 순간을 함께 견뎌야 할 날들이 앞으로 많겠지,
그래도 함께니까 잘 이겨낼 거야,
이건 아마 툴툴 털어낼 수 있는 가벼운 시련일 거야,
룰루의 심장은 왜, 언제 멈췄을까,
남자아이였을까 여자아이였을까,
우린 벌써 이름도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런 우리 맘도 모르고 떠나다니 너무해,
다음에 생길 아기는 꼭 튼튼하기를,
그런데 다음에도 유산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네,
내일모레 입원해서 밤에 아프면 혼자 무서워서 어떡하지,
몸에서 나온 태아를 보면 충격이 너무 클 거 같아,
약물배출로 안 돼서 수술해야 한다면 너무 무서워,
수술이 잘못되면 어떡하지,
온갖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두 시간가량을 잠 못 든 채 누워있었다.
남편은 금방 낮잠에서 깨더니 거실에서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다.
침대에서 소리만 엿듣다가 나도 이내 거실로 나갔다.
검색어는 “계류유산 브이로그”
임신하고 기뻐하는 모습부터 눈물로 태아를 보내는 부부의 모습이 담긴 수십 개의 브이로그가 있었다.
“이런 거 뭐 하러 봐 더 슬퍼지게~” 나는 별로 보고 싶지 않았지만 남편은 뭐가 그렇게 궁금한지 영상 여러 개를 연이어서 봤다. 그리고 그 부부들이 계류유산 이후로 무사히 임신과 출산을 했는지 후속편도 찾아봤다.
“오!! 몇 개월 뒤에 또 임신했네! 출산했네!!”
슬픔이 지나간 후 기쁜 소식이 왔음을 확인하면서 위안받는 듯했다. 우리도 그럴거야!
계류유산 브이로그 중에는 시험관으로 어렵게 임신해서 유산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여러 번의 임신과 유산이 반복된 사례도 많았다.
그중 하나를 보다가 남편이 꺼억꺼억 울기 시작했다.
남편이 우는걸 처음 본 순간이었다.
아침부터 울던 나와 다르게 종일 눈물을 비치지 않았던 사람인데 참고 있던 게 터져 나왔나 보다.
그래.. 오빠도 많이 속상하지….
우린 엉엉 울면서 서로를 토닥여줬다.
괜찮아~ 또 건강한 아기 생길 거야..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고 지금도 그렇게 믿는다.
우리 결혼하자마자 특별한 노력 없이 아기 생긴 거잖아?
간절히 원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너무 빨리 생겨서 아쉬워했잖아, 우리끼리 더 재밌는 추억 쌓다 보면 더 좋을 때에 건강한 아기 생길 거야.
언젠가는 건강한 아기를 출산할 거라 믿지만, 지난 한 달 동안 내년을 상상하며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했던 우리의 마음이 한순간에 공허 해진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이제는 무의미해진, 기뻐했던 지난날들을 눈물로 흘려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뭘 잘못해서 태아가 죽었나?라는 질문을 전혀 안 할 수는 없었지만 곱씹어보니 유산될 태아라는 징조는 초기부터 있었다.
주수보다 작았고, 입덧이 하루도 없었던 건 태아가 그만큼의 영향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단정 지었다.
다행이었다. 임신 기간 동안 입덧과 임신 증상으로 고생했다가 이 지경이 됐으면 너무 억울하고 태아에게 정이 들었을 텐데 난 아무런 지장 없이 멀쩡히 지냈으니.
게다가 임신 기간 동안 여러 번의 악몽을 꾸었다. 남편이 전날 밤 잠을 설쳤듯이 내 무의식은 애초부터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전날까지만 해도 약간의 갈색 피 비침이 전부였는데, 이 날부터 마치 생리하듯 붉은 피가 조금씩 나기 시작했다. 통증은 없었다.
‘며칠 전부터 갈색 피가 나오던 이유가 유산해서 그랬던 거구나..’
코스트코에서 사 온 갈비를 저녁으로 구워 먹었다.
우린 입맛도 비슷하고 같이 뽀시락 뽀시락 요리하는 걸 좋아한다. 평소처럼 한 마음 한 뜻으로 영양 가득한 저녁 밥상을 차렸다.
밥을 먹는 동안에는 또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며 아무렇지 않은 듯 맛있는 음식을 즐겼다.
냉장고엔 아직 룰루 초음파 사진이 붙어있었고, 창틀에는 귀여운 W009 디데이 달력이 놓여 있었다.
치워야지 생각했지만 쉽사리 손이 가지 않았다.
한국에 온 지 6년이 넘었지만 그동안 한국에선 운전할 일도 없었고, 시험 보기 귀찮아서 여태 무면허로 살고 있었다.
그런데 룰루를 임신하고, 아기가 있으면 아무래도 면허가 있어야겠다 싶어서 6년간 미루던 면허 취득 준비도 하던 중이었다.
필기시험은 한 번에 붙었고, 기능 시험은 다음날 아침으로 예약해놓은 상태였다.
미국에서 운전을 10년 이상 했는데 면허 시험을 봐야 한다니, 미국에선 한 번도 안 해본 후진 T주차를 해야 한다니….
밤늦게 남편이랑 근처 주차장에 후진 주차 연습을 하러 나갔다.
전혀 감이 오지 않는 후진 T주차를 몇 번 시도하고 에라잇, 될 대로 돼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유튜브로 운전면허 기능시험 꿀팁을 찾아보며 다음날 봐야할 면허시험 걱정하느라 슬픔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하루가 참 길었다.
씻고 침대에 누우니 또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팔다리가 뿅 나온 룰루 초음파 사진을 받고, 설레는 마음이 한 겹 더 쌓일 거라 기대했던 날이었는데, 기대와 전혀 다르게 흘러간 하루가 이렇게 끝이 났구나.
“오빠도 많이 속상하지..” 나를 토닥여주는 남편에게 말했더니 남편은 남들 계류유산 브이로그를 본 게 큰 위안이 되었다고 했다.
난 더 슬퍼지기만 했는데, 오빠는 그랬구나, 그럼 다행이지..
그래서 나도 내가 겪는 계류유산이라는 이 상황을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늘 나를 위해 기록하는데, 이번 기록은 어쩌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자기전에 또 한바탕 눈물이 났다. 이때의 눈물은 입원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컸다.
명품 가방은 없어도 내 건강이 명품이라고 말하며 나름 건강 관리를 잘 해왔는데, 내 몸이 생각만큼 건강하지 않다는 사실도 슬펐고, 앞으로는 병원과 친해져야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그래도 하루가 지나면 슬픔이 덜 할 것 같았다. 그래야만 했다. 다음 날은 출근도 해야 했고, 다다음날은 연주하러 대전까지 가야 했고, 그 다음 날은 입원도 해야 하니까.
운전면허 시험 때문에 긴장한 탓인지 뭔지 새벽에 여러 번 깼지만 아무튼 계류유산 진단을 받은 날은 ‘지난날’이 되었다.
(다음 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