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꾸깃글 Oct 02. 2019

국어국문학과에 간 이유

전공 무관만 지원할 수 있는 전공이지만

오랜만에 갔던 학교에서 발견한 답사 관련 현수막

첫째로 태어나서 장점도 많지만 단점도 꽤 있다. 단점이 티가 그렇게 나지 않는 것도 단점이지만.
이 집안에서 성장하는 모든 것이 내가 처음이니 내가 알아보고 내가 결정해야 했다.
지금처럼 우리집이 여유롭지 않을 때 나는 참 학원을 다니고 싶었다. 당연히 배움보다 저 어린이 무리에 끼고 싶었기 때문에, 나도 학원가는 소속감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에.
그럴 때마다 내 친한 친구가 다니는 학원들을 물어 상담도 하고 가격 시간 다 알아본 후 엄마에게 알렸다. 가고 싶다고. 그때 엄마의 반려나 결재승인이 결정되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형편에만 맞으면 다 해주셨던 것 같다.
아주 일찍부터 사람은 음미체를 동시에 단련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던 나는 중학교를 들어가서 엄마한테 바이올린과 태권도를 다니고 싶다고 했다. 엄마는 그건 커서 니가 돈 벌어서 다녀 라고 했다. 내가 참 지나간 일에 기억력이 좋지 않은데, 그 말은 매우 충격이었는지 지금도 선명하다. 당시에는 그때 배우지 않으면 평생 손이 굳는 줄 알았다.
 
첫째로서의 도전, 이건 특히나 전공 등 진로 결정에 제일 취약했다. 한 명씩 있는 사촌언니 사촌오빠도 서울이라는 아주 먼 곳에 있었고, 내 주위는 코찔찔이 동생들뿐. 이과 문과를 정하는 치명적인 선택도 나는 그냥 내가 문과 같아서 문과를 갔다. 수학은 1학년 내내 반 1,2등 1등급(깨알 자랑)이 나와도 정이 안 갔다. 그렇게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친한 친구들을 이과로 보내고 나 혼자 문과를 갔다.
그리고 어쩌면 그 덕분에 고등학교 2학년 때 만났던 국어 선생님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정신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훌륭한 선생님들이었다. 딱히 국어에 큰 재미를 느끼지 않았는데 정답이 아닌 열린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조별 독서 토론의 매력을 알려준 선생님, 철학적인 쓴 팩트를 많이 때려주신 선생님, 거기에 논술 수업으로 논리적인 근거도 많이 잡아주셨던 진로와 직업 선생님도. 당시 숙제로 쓰는 독후감은 사실 비밀인데 재미있었고 좋았다.
국어국문학과는 딱딱한 정답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이런 재미있는 열린 문학을 토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최소 이런 토론을 하는 수업을 하는 국어교육 교사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냥 고른 것도 아니고,
꿈도 있었고, 목표도 있었는데.
 
현실에서 만난 국어국문학과는 조금 달랐다. 문학에 정답이 있었다. 교수는 더 멋진 토론자일 줄 알았는데 하나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특히나 국어학이 선임 학문이어서 언어과학이라든가 문법이라든가 형태소 따위를 배웠다. 국문학 중에서도 의미론이 제일 재미있게 배운 걸 기억하면 난 철학과나 사회학과를 갈 걸 그랬다(이것도 사실 모른다).
국어교사 자격이 주어지는 교직은 한 학번당 2,3명에게만 기회가 있었다. 열심히 했던 것 같은데 4등이었다. 그래, 어차피 난 한방시험이랑 맞지 않잖아, 줄어드는 인구에 비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학원까지 갈 건 아니다 싶어 교직은 깔끔하게 포기했다.
 
내 전공은 지금 내가 있기까지 크고 작게 영향을 미쳤다. 전공 무관에만 지원할 수 있는 전공이지만, 기업에서 선호하는 건 토론보다는 보고겠지만,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
 
전공을 선택한 이유를 말하고 싶었는데, 쓰다 보니 내 전체를 말한 것 같아 약간 부끄럽다.

교 정 ~
잘 읽지도 않는데 시집을 자주 사는 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을 옷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