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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깃글 Oct 04. 2019

보약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첫째 동생은 어렸을 때부터 밥을 잘 안 먹었다.

건강의 상징 샐러드쓰

내 기억 속에서 엄마가 밥 숟가락을 들고 동생을 졸졸 따라다니던 모습이 몇 개의 필름으로 겹쳐 보일 정도로. 돌이 지나고 유독 다른 아이들보다 마르고 자라지 않는 것 같아 이것저것 다 해 먹였다. 보약이라는 보약은 다.

나는 이 장면을 바라보는 제3자의 마음으로 밥을 아주 잘 먹었던 것 같다. 쟤는 왜 저럴까? 우걱우걱.
사실 지금도 그렇긴 하다. 나와 막내동생은 먹는 거라면 환장한다. 항상 세상에 맛있는 게 너무 많아 화가 나는 우리 둘에 비해 첫째 동생은 배부르면 아무리 맛있어 보여도 절 대 먹지 않는다. 내가 애피타이저라고 밥 먹기 전에 과자 먹자고 하면 나를 한심하게 쳐다본다.
동생에게 생존 도구일 뿐인 밥의 중요성을 알려주기 위해 개구리, 뱀, 녹용 같은 먹기 힘든 약들을 먹였다. 사춘기가 되고 나는 그런 부모님에게 불만이 생겼다. 왜 나는 보약 안 해줘? 다이어트 아니면 키 크는 약을 원했고 부모님을 후자를 택했다. 성장판 거의 닫힌 줄 알았으면 그 돈도 그냥 아낄 텐데.
처음 받아먹은 보약은 맛있었다. 식후에 먹으라고 했던 한약사님의 말을 가장 잘 들은 사람 중 한명일 거다. 나는 정말 보약도 참 잘 먹었다. 그 이후에도 손꼽을 정도로 보약을 먹었다. 딱 두 번 더였는데, 할아버지가 고3 때 해주신 것과 내가 핀란드 교환학생을 가기 전에 수족냉증을 위한 한약. 그 약도 얼마나 잘 먹었는지.
비록 먹는 걸 너무 좋아해 위와 장이 자주 탈 나기는 해도 그 흔한 비염도, 중이염도, 알레르기도 하나 없이 잘 자라고 있다. 아 이제는 자란다기보다 늙어간다고 해야 하나? 그러고 보니 보약은 어떤 것도 해주지 못하는 안타까운 부모님의 위안 같기도 하다. 스트레스 덜 받고, 건강히 잘 먹고 잘 자면 무병 무탈한 것 같다. 그것도 당연히 쉽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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