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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깃글 Oct 28. 2019

가을 출장

어쩌면 다시없을 즐거운 시간

“출장 다녀온다”라고 말하니까 어른이 된 기분이다. 삼 년 넘게 숲 속, 누군가의 집, 영화관, 전시회장.. 대행사의 숙명으로 가보지 않은 출장지가 없는데도 아직 출장이라는 단어는 낯설다.
 
기차역으로 출근해 다른 지역으로 익숙하지 않은 몸과 마음을 이끌고 도착했다. 조금 흐린 날씨, 아직은 택시를 잡고 타서 내가 어느 자리에 앉아야 하나 서툰 막내. 높은 직급의 외부인들과 함께한 점심 식사에서 대화를 이어가기에도, 먼저 꺼내기에도 어색한 사회생활 레벨. 명함 주고받는 손가락은 어색해 죽는다. 정치, 경제, 사회 이슈가 가볍게 오고 가고 일에 관한 불만이라든가 불평도 당연히 나왔다. 허허, 하하, 호호, 과장님들은 이런 대화 참 잘하시는구나, 선배들에게 폐가 될까 봐 더 말을 줄이고 젓가락만 휘적였다.
 
안녕히 가세요. 마지막 인사를 하고 후우 안도의 한숨을 쉰다. 다들 고생하셨어요, 커피 한 잔 하러 가실까요? 흐린 날씨에도 가을의 형형색색 이파리에 우리는 날씨가 참 좋다고 말하고 그렇다고 대답했다. 전주 온 김에 한옥마을을 안 갈 수 없죠, 여기 언덕으로 가볼까요? 사진 찍어 드릴게요! 요즘에는 한복 말고 개화기 의상도 입나 봐요. 각자가 과거에 왔던 한옥마을 기억을 공유하며 택시, 버스에 올라 다른 지역으로 향했다.
 
한 시간 정도의 꿀잠 그리고 침묵, 대전 톨게이트를 지나고 읏차 가방을 다시 챙겨 매었다. 숙소까지 택시로 7분 걸어서 30분인데, 어떤 게 좋으세요? 신기하게도 우리는 또 걷기를 선택했다. 왼쪽에는 아파트 단지 오른쪽에는 복합상가만 있는 신도시 구조에 신기해하며 신호 기다리고 걷고 기다리고 걸으니 도착했다. 저녁은 지사분들과의 만찬, 같은 소속이라는 소속감, 비슷한 처지로 나누는 업무 이야기, 걱정보다 재미있고 즐거웠다.
 
다음 날 부스스한 상태로 숙소 1층 카페에서 모닝커피를 마셨다. 플랫화이트에 솔티드 캐러멜 마들렌을 먹으며 이 시간에 회사가 아니라 여기서 디저트를 즐길 수 있어서 참 행복해요. 끄덕끄덕. 또 걸어서 점심 미팅 장소로 향했고, 이번 업체 국장 팀장들은 대전 지역인으로서 또 이런저런 불만과 입장을 내비쳤다. 입이라고는 먹을 때만 주로 뻥긋거린 나는 신문 좀 읽고 책도 좀 읽어서 대화를 더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직원이 되어야지라고 다짐했다.
 
안녕히 가세요. 오늘은 날씨가 더 푸르렀다. 서울 가기 전에 어딜 가볼까요, 저기 앞에 한밭 수목원이 있던데 40분 거리인데 또 걸으시겠어요? 우리는 출장 내내 걸음 메이트가 되었다. 대전청사는 생각보다 웅장했고 근린공원은 깔끔하고 예뻤다. 꽃과 잎, 열매를 구경하며 사진을 찍고 잘 나왔다고 칭찬했다. 들판을 뛰어다니는 강아지와 비둘기 무리를 보며 저 삶들을 허허 부러워했다. 단풍길을 따라 걷다 보니 수목원이 나왔고, 자전거 타실래요? 렌털 가게 앞에서 우리는 모두 동의했다. 씽씽, 가을잎과 엑스포 다리, 흐르는 천과 풀빛 속에서 또 우리는 사진을 찍고 가을을 만났다.
 
저 너무 즐겁고 행복한데 출장이 이런 거라면 매번 올 거예요! 저희 멤버들도 좋았어요. 날씨도요. 막간에 들렀던 역 근처 카페, 한 손에 든 성심당 쇼핑백, 살랑살랑 가을바람. 서로가 찍어준 사진을 공유하며 또 좋다 행복하다는 말을 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출장이라기보다 워크숍 같았던 일박이일 여정, 일상에서 벗어나 가을을 마음껏 걸어보았던 소중한 기억이 되었다.

전주는 한옥마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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