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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깃글 Oct 26. 2019

다시 만날 날

이제 연락을 끊었다고 말해도 되는 타이밍에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은 ‘내가 먼저’ 연락해서 안부를 묻다가, 한번 만나자고 말하고 바로 약속을 잡는다. 보통 사람들은 다 만나자고만 하고 만나지 않는데 말이다. 그리고 그 보통 사람들은 내가 이날 이날 어때 라고 물으면 다들 대답을 한다. 뭐야 정말 만날 날을 먼저 묻는 사람은 적네.
 
어느 순간부터 소속되는 조직이 하나씩 늘어가고 가지 않는 모임과 연락하지 않는 연락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 친구도 연락해야 하는데 고민되고, 이 친구는 어떻게 살까 궁금하기는 한데 연락한 지 오래되어 다시 폰을 내려놓는 나를 보며 나이가 들어감을 느꼈다.
 
그러다가 가끔, 먼저, 나에게 만나자고 연락 오는 사람들이 있다. 보통은 내가 ‘소싯적에’ 참 잘 챙겨주고 잘 해주었던 후배, 동생들. 그중 두 명의 동생이 서울에 올라와 일하게 되어 4년 정도만에 만났다. 참 오랜만이었고, 그 빈 시간들이 어색할까 걱정되었던 게 어색해질 만큼 즐겁고 재미있었다. 대학생활 내내 참여했던 인문고전독서교실이라는 인문학 행사에서 만난 인연이고, 거기서 이 동생들을 포함해 스물 또는 서른 명 넘는 친구들이 있었다. 서른 명을 묶어주던 행사가 종료된 후 이 그룹 저 그룹으로 쪼개지고, 그 쪼개진 무리 안에서 또 갈등이 생겨 누구와 누가 멀어졌다더라 하는 말을 들으며 더 작은 무리에서 나는 누구와 누구의 안부를 전달했다.
 
이번에도 누가 시험에 붙었다더라, 누구는 이제 대학원 졸업이라지, 걔는 아직 부산에 있고 얘는 강원도에 취직이 되어 이렇게 살아. 말을 전했다. 그리고 문득 이 잘게 쪼개진 무리가 언젠간 만날 수 있을까 상상해보았다. 아무래도 누군가의 경조사, 아마도 내 결혼식. 주위에서 청첩장을 주는 횟수가 점점 늘어가도 나에게 여전히 결혼이라는 게 거리가 멀다고 느끼고 있었다. 문득 이 모든 친구들을 한 자리에 만나 예전 이야기를 하며 어색하게 웃고, 다시 그 어색한 웃음이 무색할 만큼 소중해지고, 그럴 모습을 상상만 해도 마음이 뭉클하다.
스무 살 언저리에 만나 어리석음과 어리고 여린 추억들을 함께한 사람들,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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