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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깃글 Nov 07. 2019

우리집 너구리

폼포코 스틸 컷

우리집에는 너구리가 한 마리 있다. 그냥 하나, 아니 한 명이라고 다시 정정해야겠다. 폼포코에 나오는 새까맣고 인자하게 생긴 너구리를 너무 닮아서 우리는 막내동생을 너구리라고 불렀다. 아주아주 어렸을 때부터. 실명제를 추구하는 내 전화번호에 너구리라는 세 글자로 저장이 되어있고, 우리집 와이파이 비밀번호는 한 때 라쿤123이었고, 동생이 뭐 하고 있을 때 너구리!라고 외치면 뒤돌아본다. 키키
 
친구들 사이에서 키가 크지 않은 편인 나와 첫째 동생에 비해서 막내는 (그렇게 많이는 아니고) 평균 정도로 쑥쑥 컸다. 잘 먹고 운동을 좋아하니까 새까만 상태로 덩치도 커졌다. 엄마나 첫째 동생은 막내동생 엉덩이를 만지면서 어떻게 햇빛도 안 받는 엉덩이까지 새까만 거냐고 놀렸다. 우리 막내, 우리 막내 하면서 다들 귀엽다고 우쭈쭈 했지만 나는 뭘까 어느 순간 너구리가 다 큰 게 느껴져서 더 이상 귀엽다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영원히 어릴 것 같던 막내도 대학생이 되었다. 내가 딱 저때, 스무 살에 육 학년이었던 막내는 장사하는 엄마의 걱정 대상이었고 그 걱정을 해소할 수 있는 대체제는 딸이라고 불리는 나였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너구리 밥을 주러 학과 뒤풀이를 참석하지 못했다. 저녁이라도 누나가 챙겨주는 걸 보아야 속이 시원한 엄마에게 나는 비교적 말을 참 잘 듣는 존재였다. 너구리나 엄마를 미워하진 않지만, 게임과 술을 좋아하는 나에게 단체 모임을 빠지라는 건 괴로웠다.
 
할머니가 나를 아직도 강아지라 부르는 것처럼 스무 살, 스물한 살인 지금도 엄마 아빠에게는 아주 어리고 여린 막내인가 보다. 또 지켜보면 참 ‘막내짓’을 너구리가 잘하고 있다. 딸이라고 꼭 애교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극한으로 없는 나에 비해, 엄마 아빠 출근 시 유일하게 아직도 뽀뽀를 하는 건 너구리다. 또 눈치껏 엄마 아빠 기분도 잘 맞춰주고, 가게에 알바를 하러 간다. 한편으로는 기특하기도 하다. 아주 가끔 내가 삼만 원 오만 원 용돈을 주면 (동생이 둘이라 괴롭다! 형평성을 위해 둘 다 줘야 한다) 누님 거리면서 앞으로 조아리겠다며 충성을 다한다는 웃긴 말도 할 줄 안다. 머리는 다 컸다니까?
 
그리고 어제 조금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꽤 보수적인 편인 우리집에서 너구리가 무려 여자 친구와 해외여행을 가겠다고 말한 것이다! 이 말을 전달해주는 엄마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고 아빠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그러면서 그래도 거짓말하는 것보단 낫지만 그래도 충격이다라는 엄마 말에 내 양심은 조금 아주 많이 찔렸다. 엄마의 걱정과 관심과 질문 공세가 부담스러워 나는 항상 ‘남자 친구가 없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 성격 상 내가 남자 친구 얘기를 하면 가게 손님들도 다 알고 있을 거다!!) 아무튼 웃긴 건 덜렁거리는 너구리는 여권을 못 찾아서 여행을 못 갈뻔했는데, 아빠가 집에서 먼저 찾았으나 얘가 여행 안 갔으면 좋으니 말을 안 하다가, 집에 오자마자 집 다 뒤지고 불안해하는 표정을 보니 그냥 주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너구리 못지않게 엄마 아빠도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한때는 내가 너구리를 키웠다고 생각했지만 나도, 우리 가족 모두 아직 자라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함께 다 같이 커가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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