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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깃글 Nov 08. 2019

사망 0명 부상 67명

죽음 앞에서

뉴스란 타인의 아픔을 더디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고 어디선가 읽었다. 뉴스의 가치는 늘 반복되는 일상보다 갑작스럽고, 새롭고, 기이하고, 충격적이어야 하니까.
누군가의 사고를, 누군가의 죽음을, 누군가의 불행을 일상처럼 바라보는 현대인들. 그래서 삼인칭의 죽음은 슬퍼하기보다는 흘러가고만 있다. 마치 뉴스 자막처럼.
나도 나의 일상대로 일을 하고, 운동을 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강을 지나면 자동적으로 창가를 바라보는데, 한남동에서 신사로 한남대교를 타고 오면 한 전광판이 눈에 띈다.
 
어제의 교통상황
사망 0명
부상 67명
 
다행이다. 누군가는 다쳤지만, 너무 아프겠지만, 힘들겠지만 세상을 떠난 사람은 없구나. 아주 가볍고 형식적으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다리를 마저 건너고 집 근처 정류장을 내렸지만 그 숫자들이 잊히지 않는다. 0명.. 67명..  
 
아버지가 몇 년 주기로 병원을 가셨을 때가 있다. 처음은 늘 응급실이었고, 마지막 병원 때는 나와 첫째 동생과 같이 있던 아빠가 쓰러질듯해서 119를 불렀다가 늦게 와서 택시를 타고 병원을 갔다. 그렇게 도착한 응급실에서 말 그대로 혼비백산을 경험했다. 처음으로 내 삶에 죽음이 가깝게 느껴졌던 순간. 소리 지르고, 삐삐- 기계음이 들리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의료진들. 아버지의 상태가 잠잠해질 때쯤 옆 침대로 응급환자가 들어왔다. 그분은 술자리에서 갑자기 심장이 뛰지 않아 실려왔고,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심장제세동기를 사용하는 것을 들었다.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긴급함과 절박함이 내 생명까지 앗아가는 듯했다. 그 상황을 못 이겨내어 밖에 잠시 나왔고, 다른 가족들이 와서 먼저 집에 갔던 나에게 동생이 그분은 결국 돌아가셨다고 말해주었다.
 
안타까웠다. 젊어 보이셨는데, 달려오던 가족들이 표정도 기억나고 그냥 정말 모르는 그 타인의 삶이 너무 안타깝고 눈물이 났다. 사망 1명. 병원은 그렇게 하나의 숫자를 추가하게 되겠지만, 그 1에 담긴 삶과 눈물은 셀 수 없을 것이다.
 
죽음은 이렇게 가까워질수록 괴로워져 더 무덤덤해진다. 또 그 감정을 미루게도 된다. 아버지가 내 옆에서 힘을 못 쓰시고 의지하던 그 순간 슬프기보다 오히려 내가 이럴수록 더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다짐했다. 스물셋넷, 어린 나이에 눈물도 많은 나였지만 처음으로 가장으로서의 무거움을 느끼고 눈물이 전혀 나지 않았다. 오히려 병, 죽음, 아픔을 통해 더 삶을 강렬하게 느꼈다.
 
죽음을 쉽게 얘기할 수 있는 건 살아있기 때문이고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많은 나에게 죽음은 다시 마음을 경건하게 다지게 해 준다. 아무쪼록, 오늘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이 더 편안하기를. 그들의 사랑하는 사람들의 슬픔이 더 빠르고 단단하게 잦아들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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