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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현욱 Dec 20. 2018

산후, 육아 우울증, 100% 찾아온다

직장인 아빠가 알아야 할 육아 개념


얼마 전 아기를 낳은 후배에게 산후조리원에 있는 동안 저의 조언(?) 덕분에 와이프를 기쁘게 해주었다며 감사하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후배에게 해준 이야기는 별건 아니었고, 
'산후 우울증은 무조건 오게 되어있으니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 꼭 작은 이벤트를 해라. 가성비가 짱이다'는 내용이었는데, 효과가 상당히 좋았다고 합니다. 

사실 저는 산후/육아 우울증은 우리 부부와는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근거는 없지만 왠지 잘 할 수 있을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첫 아이를 낳기 전 새로운 생명을 맞이하는 설레임과 기대로 하루 하루를 보내며 뱃속 아이에게 말도 걸어보고 육아 책도 보며 나름 열심히 준비를 했습니다. 하지만 출산이 임박해오고, 또 출산 후 그동안 전혀 해보지 않은 것들을 경험하다보니 내가 과연 부모 노릇을 잘 할 수 있을지 두려움에 휩싸이기는 순간이 오더군요, 육아에 대한 경험이 없는 것은 아내도 마찬가지이니 아내가 힘들어할 때 남편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걱정도 많아졌습니다. 지금도 육아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은 매한가지지만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혹시 모를 저와 같은 남편 분들을 위해 산후/육아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아내의 산후 우울증, 육아 우울증 100% 찾아온다.


출처 : 네이버 국가건강정보포털 의학정보


네이버 국가건강정보포털 의학정보에서 검색한 산후 우울증 [postpartum depression] 에 대한 정의입니다. 산모의 약 10~20% 정도에서 발병한다고 언급되었는데요, 과연 그럴까요?

아이를 낳고 처음 아이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엄마 아빠는 감동의 눈물을 흘립니다. 코는 나를 닮고, 눈은 당신을 닮았다며 감동하고, 새근새근 자는 모습, 초점 없이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 가끔 지어주는 베넷 웃음을 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감과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조리원을 거쳐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날 수록 엄마 아빠는 멘붕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출처 : Gettyimagebank



초유가 중요하다고 해서 우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지만 아이는 빨지 않고 그대로 스르르 잠이 들어버립니다. 두 시간 마다 깨서 우는 아이를 안고 젖병도 물려보고, 물소리도 틀어보고, 기저귀도 확인해보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고 목이 쉬어라 울어댑니다. 등센서가 생기면 아이를 눕히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안고 있어야 하지요. 목욕시키고, 기저귀 갈고, 똥 치우고, 밥 먹이고, 놀아주다 보면 금세 하루가 지나갑니다. 모든 것들이 처음 하는 일이다 보니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고, 혹시나 똥 기저귀를 늦게 치워 아이 엉덩이에 발진이라도 나면 대역죄를 지은 것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낮과 밤이 무의미해지면서 수면 부족, 만성 피로, 스트레스는 기본이요, 집안 또한 엉망이 되어가지요. 앞선 포스팅에도 언급했지만 이제 내 시간은 없어지고 철저히 아이에게 종속되는 삶을 살게 되면서 '지금 내 모습이 정녕 내가 꿈꾸던 모습인가?'라는 의문을 품게 됩니다.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나아질까요?

얼마 전 초등학생 자녀를 둔 선배와 식사를 하던 도중 선배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와이프에게 생일 편지를 받았는데 편지 내용이 대부분 사랑하고 고맙고 행복하다는 내용이었어. 근데 그 중에 '내가 나로 살지 못한 것 같아 힘들 때도 있었지만'는 문구가 있더라. 편지를 다 읽었는데 고맙고 행복하다는 내용은 하나도 생각 안나고 '내가 나로 살지 못해 힘들 때가 있었다' 라는 그 한 마디만 생각나더라" 라고요.

선배님께서는 아내분께서 힘든 영유아 시기를 거쳐 이제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자유 시간도 많아졌으니 이젠 자유를 즐기면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으리라 생각하셨지만 형수님은 자유 시간의 증가 여부를 떠나 직장을 그만 두고 내가 아닌 엄마로만 사는 삶 자체에 무게를 느끼신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육아가 주는 기쁨과 가치가 아무리 크다고 한들 아이를 키우면 그 기쁨을 지속적으로 느낄 수는 없습니다. 2004년 대니얼 카너먼 등 5명의 학자가 미국 내 직장 여성 909명을 대상으로 한 '어떤 활동이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가'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육아'가 전체 19개 항목 중 TV 시청, 낮잠, 집안일 보다 낮은 16위를 차지한 것을 보면 '내가 굳이 부모가 되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것 같기도 합니다.

아내의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봐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봐도, 부모님과 학창시절 선생님께 여쭈어봐도, '나는 우울증을 경험하지 않고 아이들을 즐겁게 키웠어'라고 말한 엄마들은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의학 분야에서 말하는 산후/육아 우울증은  일상 기능의 저하를 일으키는 질환(다소 심각하거나 심각해질 수 있는 수준) 을 말하는 것으로, 제로는 대부분의 엄마들이 우울증을 경험하지만 아이에 대한 책임감과 사랑을 바탕으로 힘겹게 극복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빠에게도 육아 우울증은 찾아옵니다.


출처 : Gettyimagebank


산후/육아 우울증은 아내에게만 오는 것일까요?

주 양육자인 엄마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오늘날의 아버지들 역시 인류 역사상 지금까지의 아버지들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보내고 육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동육아에 대한 인식이 사회 전체적으로 퍼지면서 그만큼 인정 받고 있지 못하고 있죠. 많은 아빠들이 집으로 출근하는지 직장으로 퇴근하는지 헷갈려하며 일과 가정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데 있어 많은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제니퍼 시니어가 쓴 '부모로 산다는 것'라는 책에도 아빠들 역시 아이가 생기고 난 후 엄마와 같이 수면부족, 만성피로에 시달리고 이런 것들 외에도 수입에 대한 압박감, 섹스를 자주 하지못하게 된 데 대한 불만에 시달린다는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저의 경우도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육아로 인한 수면 부족과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보니 매사에 짜증이 나고, 부정적인 언어가 습관처럼 나올 때가 있었습니다. 저보다 직책이 낮은 사람의 사무적인 대답에 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닌가 속으로 오해하기도 했고, 아내의 부탁을 못들은척 하고, 내가 직장에서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일장 연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몸과 정신 모두가 마이너스 상태에서 제 정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제가 느끼던 감정과 스트레스가 저와 우리 부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육아의 한 과정임을 깨닫게 되면서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되는 것이 행복한 이유


과거 아이들을 노동력으로 보고 자녀들의 인권을 크게 존중하지 않던 사회와 달리, 지금의 부모들은 자녀 양육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나름의 육아 철학에 입각해서 아이들을 소중하게 키웁니다. 사회 역시 급속도로 발전했지만 그만큼 복잡해져 출근과 퇴근의 개념이 옅어지고 퇴근 후에도 스마트폰과 컴퓨터로 업무를 해야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몸뚱아리는 하나이고 주어진 시간도 변함 없는데 사회는 복잡해지고 가정에서의 역할도 중요해지다 보니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지쳐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아는 나를 더 성장하게 합니다.
엄마가 준비해준 과일 접시를 고사리 같은 손으로 들고 가져와 '아빠 사과 아~' 라고 말하며 입에 넣어주고, 퇴근했을 때 문 앞에 달려나와 와락 안기는 아이들의 모습에 직업적 성취와는 차원이 다른 기쁨과 행복을 느낍니다. 더불어 이 아이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 것 못지 않게 나 역시 이 아이들을 원하고 필요로 한다는 것을 또한 알게 되지요.

출처 : unsplash.com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엄마 아빠가 육아에 지치고 우울증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남편 입장에서 아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일 때 '우리 아내는 긍정적인 사람이니까 괜찮을거야',  '와이프가 힘들어하는 것은 온전히 내가 부족한 탓이야' 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모든 엄마들이 겪는 그 시기가 내 아내에게도 찾아왔으니, 나는 남편으로서 그 정도가 심해지지 않도록, 줄여주기 위해 노력하자'는 마음으로 접근해 봅시다.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가 있던 우선 순위를 아내에게 두면서 말이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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