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아빠가 알아야 할 육아개념
저는 또래에 비해 결혼을 조금 일찍한 편인데요, 시간이 지나 이제 친구들도 결혼을 하고 아이들도 하나 둘씩 낳다 보니 모임을 하면 자연스럽게 육아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됩니다.
얼마 전 친구 중 한명이 다소 서운한 목소리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뼈 빠지게 일하고 집에 들어왔는데 와이프는 내가 육아 및 살림을 도와주지 않는다며 계속 불만이다. 열심히 일하고 돌아와서 피곤하지만 아이랑 놀아주기도 하고, 설겆이, 분리수거 등 나름 도와준다고 하는데 도대체 왜 불만인지 모르겠다. 아내가 직장인이라면 그럴 수 있겠구나 싶겠지만 전업주부인데도 그렇게 불만을 표한다면 나한테 너무 많은 희생을 강요하는 것 아닌가?"
친구 이야기를 들으면서 두 가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1. 육아와 일,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더 힘들까?
2. 가사 노동의 경제적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선 여러가지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1999년 김준영 성균관대 교수는 생활시간조사 자료를 기초로 하여 전업주부의 가사노동 가치를 월 113만원으로 추계하였고, 2005년 김종숙 한국 여성개발원 연구위원과 권태희 박사는 30대 전업주부의 가사노동 가치가 167만원 정도로 환산된다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수학적 근거로 계산된 것인지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2016년 한국고용정보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세탁과 청소, 정리 정돈만 담당하는 가정관리사의 연 평균 소득을 1404만원 (월 117만)으로 계산하였고, 법적 판례로 살펴본다면 전업 주부의 가사 노동 가치는 연 3745만원(월 312만원) 가량으로 측정되기도 합니다. (전업주부가 교통사고 피해 보상을 받을 때 법원에서는 일용직 노동자의 평균임금을 근거로 산출합니다.)
시기에 따라, 기준에 따라, 대상에 따라 가사 노동의 경제적 가치에 대한 편차가 있지만 하루에 4시간 정도 일하는 가정관리사의 현재 시세가 시급 10,000 ~ 12,000원 정도이고 주 5일, 9 to 5 근무 시간을 적용한다면 전업주부의 산술적 가사 노동 가치는 최소 200만원 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기에 아이의 안정적 정서 발달, 그로 인한 학습 능률 향상 등의 미래 발전 가능성까지 따진다면 그 가치는 더욱 올라가겠죠.
다시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육아와 일,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더 힘이 들까요?
만약 여러분께서 전업 주부 아빠와 워킹 대디 둘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현재 내가 벌고 있는 월급을 아내가 벌어온다면 전업 주부 아빠로 전향하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단, 전업 주부 아빠로 전향 시 아이들에게 TV 및 스마트폰은 하루 한 시간 이내로 보여주셔야 하고, 빨래, 청소, 요리 등의 집안일 까지 도맡아야 합니다.
당시 저와 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들은 총 8명이었는데요, 놀랍게도(?) 8명 모두 전업 주부 아빠보다는 직장인 아빠로 사는 것이 낫다는데 뜻을 모았습니다. 직장에서 물어봐도 대부분의 아빠들은 직장이 훨씬 낫다고 대답합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크게 3가지 이유에서 직장인으로서의 삶이 전업주부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사회와의 연결성.
인간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동물입니다. 직장에서 상사에게 깨지고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그 과정에서자극도 받고 발전도 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아이에게 매달려 집에만 있다면 아무래도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연결감을 느끼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영유아를 돌보는 전업주부라면 더욱 그렇죠. 영유아 전업주부에게 사회와의 연결성을 느끼게 하는 도구는 오직 스마트폰과 TV 뿐이니까요.
둘째, 자기 주도성.
직장인 역시 짜여진 일과대로 움직이지만 그 안에서 많은 일들을 자기 주도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회의가 아침 10시에 있다면, 09시에는 커피를 마실 수 있고, 09시 30분에는 회의 내용을 검토하고 옷매무새도 단정히 할 수 있습니다. 회의 후에는 내가 원하는 음식점에 가서 식사할 수도 있고요.
영유아 전업주부라면 어떨까요? 잠깐 책을 보다가도 아기가 울면 안아줘야 하고, 똥싸면 하던 일을 멈추고 기저귀를 갈아줘야 합니다. 감기라도 걸리면 병원 데려가야 하고, 심지어 밤중에 아이가 깨면 나도 일어나 달래줘야 하지요. 내가 아닌 아이가 중심이 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 가시적 성과.
직장 생활을 하면 프로젝트를 하던, 팝업 업무를 하던 간에 일을 끝내고 나면 나름의 성취감을 느낍니다. 집안일은 어떨까요? 기껏 집안 정리 해 놓아도 아이들이 다시 어지르는데까지 10분이 채 걸리지 않지요, 하루에 예닐곱번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줄 때, 아이의 미소에 행복감을 느끼지만 그것이 어떤 성과나 자기 발전에 기여하지는 못합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와이프 눈치 보느라 저녁에 같이 놀지 못하고 집에 곧바로 들어가는 선배들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특히 형수님께서 전업주부일 경우에는 더욱 그랬었죠. 시간이 지나 아이를 낳고 키워보니 육아가 보통 일이 아니며 왜 형수님들께서 남편이 일찍 집에 들어오기를 바래셨는지 매일 느끼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육아가 직장일보다 더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직장에서 내가 하는 일 못지 않게 육아 또한 쉽지 않다는 생각으로 아내를 대해봅시다. 육아 및 가사노동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육아에 고생하는 아내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만으로도 아내의 불만에 짜증으로 맞대응하지 않고 한걸음 물러서서 받아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부부관계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겠죠? ^^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