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의 나에게 아윤이를 데려다주었다.

3.안 울어야 용감한 걸까?

by 울보엄마

아윤이는 오늘도 울면서 유치원에 갔다.

등원 버스 앞에서 내가 했던 말은

“괜찮아, 울어도 돼. 너는 지금도 충분히 용감해.”그런데 사실, 그 말은 나한테도 해주고 싶었다.
아이 하나 떼어놓는 게 이렇게 마음 찢어지는 일이었나?

아윤이는 14개월에 처음 어린이집에 갔다.

그때도 3개월의 적응 기간이 필요했다.

코로나를 핑계로 너무 집에만 있게 했던 걸까.

낯도 많이 가리고, 새로운 공간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던 아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44개월. 조금 컸으니까,

그때와는 다를 거라 생각했다.
나의 생각은 크게 빗나갔다.

말을 할 수 없던 14개월의 아윤이는 그냥 울기만 했고,

말을 할 수 있는 44개월의 아윤이는 온갖 말을 하며 울었다.
나는 매일 괜찮은 척 웃으며,

아윤이가 돌아오는 시간까지 하루를 버텼다.

그런데 매일이 전쟁이었다.

울음을 참는 아이도, 그 앞에서 안 울어야 하는 나도.
아윤이는 가정어린이집을 다녔다.

낯가림이 심한 아이에겐 소수의 친구들이 있는 작은 기관이 잘 맞을 거라 생각했다.

예상처럼 적응 기간이 끝난 후,

아윤이는 너무도 즐겁게 어린이집을 다녔다.
그러다 유치원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아윤이에게 맞는 게 무엇일까, 무엇이 좋을까' 고민하다 계획에 도 없던 큰 사립유치원을 선택했다.

버스를 타야 했지만,

오로지 아윤이를 위한 마음이었다.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모두 아윤이를 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매일 울었다.

나는 정말 아이를 위한 선택을 한 걸까.

아이를 생각하는 척, 내 욕심을 채운 건 아닐까.

밤마다 잠든 아이를 보며 울었고, 자책했다.
아윤이는 감정이 풍부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다.

그래서 더 시간이 걸리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에게 나의 말 한마디가 또 다른 상처가 될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아침마다 우는 아이, 아니, 전날 밤부터 우는 아이에게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엄마 아빠도 처음은 무서워.”온갖 위로를 동원하며 아이를 달래 등원길에 나섰다.
버스를 기다리는 곳에서 하염없이 우는 아이.

“집에 가고 싶어, 엄마랑만 있을래, 집에만 있고 싶어.”우는 아이에게 “괜찮아, 그럴 수 있어. 슬프지만 하고 있잖아. 그건 대단한 거야. 넌 정말 멋져.”또 온갖 위로를 건넸다.

그 순간, 내 귀에 화살처럼 꽂힌 말이 들려왔다.
“아니야, 울지 마. 울긴 왜 울어? 너 애기야?”
……다른 아이의 엄마였다.

그 아이는 아윤이처럼 울지는 않았지만

그저 징징거릴 뿐이었다.

그 말은 나에게 너무도 크게 들렸다.

마치‘애를 왜 저렇게 오냐오냐 키워’ 하는 것처럼..
아윤이도 들었는지 더 크게 울어댔다.

나는 아이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괜찮아, 울어도 돼. 눈물이 나는데 어떻게 참아.

엄마도 못 참아. 실컷 울어, 너는 괜찮아.”
내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위로였다.
그렇게 우는 아이를 떠나보내 고집으로 돌아와 상처받은 내 마음은 그 낯선 엄마에게 화살을 돌렸다.

‘굳이 그렇게 말했어야 했을까.’
나도 울지 말라고, 씩씩해지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또 혼자 눈물을 훔쳤다.
아윤이는 좋아지는 듯하다가도 주말이 지나면 리셋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어느 날 내게 말했다.
“엄마, 나도 친구들처럼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어.”
……마음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이 아이는 다 알고 있었구나.

가야 하는 것도, 울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하지만 본인도 뜻대로 되지 않는 거구나.

가슴이 더 아팠다.

그리고 다시,

내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위로를 해주었다.
“아윤아, 용기는 울지 않는다고 있는 게 아니야. 슬프고 무섭고 눈물이 나지만, 그래도 노란 버스를 타고 유치원에 가는 게 훨씬 용기가 많은 거야.”
아이는 선뜻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이렇게 설명했다.
“아윤아, 아이스크림이랑 매운 김치가 있는데, 아윤이는 뭐가 먹고 싶어?”

“나는 아이스크림!!”

“그럼 매운 김치는?”

“그건 안 먹고 싶은데…”

“근데 반드시 꼭 먹어야 한다면 먹을 거지?”

“응…”

“그게 용기야. 내가 좋아하는 걸 할 때보다, 내가 힘든 걸 해낼 때 그게 더 큰 용기야. 유치원도 똑같아.”
“넌 친구들보다 더 큰 용기를 마음속에 가지고 있어. 그러니까 넌 지금도 충분히 대단해.

아윤아, 울고 싶을 때 울어도 돼.

엄마가 아윤이가 힘들지 않게 계속 힘을 줄게.”
아이는 그제야 웃어줬다.
아윤이를 키우면서 나도 함께 크고 있었다.

나도 ‘울지 않아야만 용기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윤이를 키우며 더 깊이 생각하고 들여다보니 울지 않는 용기보다, 울면서도 해내는 용기가 더 크다는 걸 알게 됐다.
나의 작은 아이에게 아직은 느껴지지 않을

그 큰 용기가 아윤이 마음속에서 탄탄한 뿌리가 되기를.

지금 이 눈물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날엔 빛을 발하길.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사실 나도 모든 걸 내려놓고 펑펑 울며 쏟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거울을 보는 것만 같던 아이를 보며

‘내가 무너지면, 힘내고 있는 이 아이도 무너진다.’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나에게 내가 무너지는 건 괜찮지만 나로 인해 아이가 무너지는 건 볼 수 없었다.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 나는 엄마였다.

나를 버리고 선택한, ‘엄마’라는 사람이었다.

나를 돌아보며 힘들어선 안 되는, 아이부터 먼저 안정을 찾아줘야 하는, 나를 우선으로 둬선 안 되는...

나는, 엄마였다.
그래서 나는 나를 밀어낸 채 엄마로만 살아가기로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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