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의 나에게 아윤이를 데려다주었다.

7. 멀리 있어 더 가까운 사랑

by 울보엄마

– 떨어져 살아도, 우리는 여전히 부부다


우리는 지금, 함께 살지 않는다.

아윤이가 14개월일 때 남편은 해외로 떠났다.

남편은 원래도 아윤이가 잠든 후에야 퇴근하는 사람이었고,

처음엔 ‘3개월에 한 번이면 괜찮겠지’ 싶었다.


하지만 해가 지나고 계절이 바뀌며 아윤이가 쑥쑥 자라는 모습을 보며,

‘함께’라는 게 얼마나 큰 힘이었는지를

조금씩, 아프게 깨달았다.


나는 늘 말한다.

“셋이 같이 맛있는 거 먹고 산책하고 싶다, 헤헷.”

그게 왜 이렇게 멀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남편은 타국에서,

나는 한국에서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살고 있다.

각자 힘들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버틴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아윤이의 목소리에 남편은 웃고,

남편의 “이따 전화할게” 한마디에

나는 하루를 더 힘내본다.


사실, 나는 원래 남편 껌딱지였다.

사람들이 지금도 말한다.

“네가 어떻게 떨어져 살 수 있냐고.”

그 정도로 우리는 늘 붙어 다녔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고 나니,

이상하게도 그런 껌딱지였던 내가

‘떨어져도 괜찮아야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게 꼭 ‘괜찮아서’가 아니라

‘그래야 하니까’였다.


그렇게 우리 둘은,

늘 괜찮지 않지만 서로를 위해

늘 괜찮아야 하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처음엔 멀리 떨어져 있는 만큼

우리는 더 애틋했지만,

시간의 흐름은 그 애틋함을

조금씩 무디게 만들어버렸다.

마치 날카롭게 빛나던 칼날이

조금씩 무뎌지는 것처럼.


남편은 표현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나는 표현해야 사는 사람이다.


자주 볼 수 없는 남편에게

나는 늘 표현했고,

남편은 묵묵함으로 응답했다.

서로 다른 사랑 방식은

떨어져 지낸 시간만큼

우리를 더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래서 가끔은 생각했다.

‘이 사람, 날 정말 사랑하긴 하는 걸까?’

이제 나는 이 사람에게 필요 없는 것 같았다.

그저 아윤이의 엄마만이 필요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사랑받고 싶었다.

그냥, 나로서.


사랑해 달라 발버둥 쳐도

돌아오는 건

“나도 사랑하지”라는 툭 던지는 말 한마디.

그 무심한 한마디는

내 자존감을 또 무너뜨렸고,

나를 다시 동굴로 이끌었다.


그래서 남편이 미웠다.

예전처럼 나를 아끼지 않는

딸만 바라보는 남편이,

죽을 만큼 미웠다.

나 없이도 살 수 있을 것 같은

내 하나뿐인 내 편이 너무도 싫었다.


그 마음은 송곳이 되어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남편을 찔렀다.

“어차피 너 나 안 좋아하잖아.”

계속해서 마음속에 담아두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매일 아윤이와 나를 위해 묵묵히 일하는 남편을 보며,

‘저 사람은 여전히, 내 편이다.’


표현을 통해 사랑을 확인해야 하는 나에게,

표현하지 못하는 내 편은

내 편이 아니라 남의 편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냥, 그를 미워하고 싶었던 것 같다.


홀로 육아에 지쳐가는 나를

돌보지 않는 그에게—

이건 나 혼자 만든 상황이 아닌데

혼자 덩그러니 던져진 것 같아

더 미워졌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투정이었다.


가끔은 보고 싶어 미칠 것 같고,

가끔은 밉고,

가끔은 짠하고,

가끔은 그냥 아무 말 없이 옆에만 있어줬으면 좋겠다.


이러나저러나 나는 아직 오빠가 좋다.

좋아서 밉고, 좋아서 서운한 거였다.


나의 가장 친한 술친구.

나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

내가 가장 약해져도 되는 유일한 존재.


내 남편은,

사실 나에게 너무도 소중한 사람이기에

나는 너무 크게 아팠던 거다.


사랑받고 싶었던 내가,

사랑을 확인받고 싶었던 내가,

이제는 ‘우리를 믿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멀리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부부다.


연락이 뜸한 날도 있지만,

마음이 멀어질 뻔한 날도 있었지만—

그것 또한 부부다.


요즘은 아윤이가

남편의 존재를 더 애틋하게 여긴다.

“아빠 언제 와?”

“아빠랑 이거 같이 하고 싶어.”

그럴 때마다 나도 울컥한다.


보고 싶은 사람을

당연하게 볼 수 없다는 것—

그건 참 슬픈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잘 살고 있다.

떨어져 있지만 서로의 인생을 존중하고,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며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이.


내 남편은

여전히 내가 가장 잘 웃을 수 있는 사람이다.

작가의 이전글여덟 살의 나에게 아윤이를 데려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