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진들은 1, 2국과는 다르게 알파고의 이해할 수 없는 수에도 “인간의 시각이기에”라는 말을 붙여 수의 깊이를 함부로 재단하지 않았습니다.
전체 대국은 3승으로 이미 알파고의 승리로 끝났고 과연 이세돌 기사가 한 판이라도 승리할 수 있다면 인간승리라고 생각하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4국 중반.
이세돌 기사는 알파고의 느슨하지만 강력한 세력에 일격을 가하는 수를 둡니다.
그것이 훗날 신의 한 수라고 불리는 78수입니다.
이 78수는 이후 여러 가지 담론이 오고 갔습니다.
약하게는 AI를 향한 인간찬가로 시작하여, 머신러닝의 한계, AI가 예기치 못한 사태가 터졌을 때의 해결방안 등 단순 바둑을 넘어 기계와 과학을 향한 한 수로 평가하며 진지하게 고찰하기도 하였습니다.
필자도 그것에 한 스푼 얹어보고자 합니다.
“서사가 신을 만든다.”
필자의 여자친구가 어느 날 알파고와의 대국을 보며 말했습니다.
“근데, 이세돌이 첫 승을 하고 그 뒤로 내리 진다면 그 승이 지금같이 회자되었을까?”
그때 번뜩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세돌의 78수는 4국에서 나왔기 때문에 더욱 빛났다는 것을 말입니다.
78수는 사실 단순히 알파고의 허를 찔렀다는 것을 넘는 한 수였습니다.
이세돌 기사는 대국 시작 전 기계에게 1패라도 하면 수치라고 말하며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수로 알파고에게 패하고, 절치부심해서 재대국을 했으나 충격적으로 내리 연패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대국의 내용은 단순히 승패로 평가할 수 없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세돌 기사가 알파고에 수에 점점 대응하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어째서 패했는지 이해조차 안 됐지만, 대국을 거듭할수록 이세돌 기사는 마치 알파고의 시선으로 바라보듯 남들은 눈치채지 못하는 수의 의미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해설진들은 수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세돌 기사만큼은 알파고의 수의 깊음에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었습니다.
마치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자신을 더욱 발전시키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대망의 78수. 그 수는 정말 대중이 생각하는 이세돌다운 수였습니다.
78수가 나오기 직전, 대부분의 바둑기사, 해설진들은 바로 찌르지 않고 한 템포를 쉬고 알파고가 대응하면 공격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비웃듯 이세돌 기사는 78수로 선제공격을 하듯이 찔러버립니다.
그 수가 나올 확률은 0.007%(10만 분의 7)
알파고는 당황했고, 회복하지 못하고 패배했습니다.
그 한 수에는 연패에도 기죽지 않고 알파고를 뛰어넘고자 하는 호승심, 그리고 공격적이고 도발적이며 당당한 자신감 등 지금까지 이세돌이 대중에게 보여줬던 ‘서사가 담긴, 이세돌다운’ 한 수였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더욱 그 수에 열광하고 신의 한 수라고 부른 것이 아니었을까요?
“블런더(Blunder. 악수)조차 매력적인 미하일 탈의 수”
체스에도 자신의 서사를 내보이는 수를 두는 선수가 있습니다.
그 선수는 바로 체스계의 영원한 판타지스타 미하일 탈(Mikhails Tal)입니다.
미하일 탈이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이유는 그 특유의 희생 플레이 덕분입니다.
체스 게임에서 근근이 장기적인 포지션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 당장의 손해를 감수하고 기물 희생을 하기도 합니다. 손해를 감수하고 두는 수이기에 기물 회수를 위한 정밀한 수 계산과 포지션 판단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웬만한 담력이 아니면 잘 시도하지 않기도 합니다.
하지만 미하일 탈은 그 희생 플레이를 매우 자주, 빈번히 행합니다. 그리고 그 희생을 통해서 승리합니다.
아래는 그 플레이 중 하나입니다.
("Mikhail Tal" vs "Andres Vooremaa, 1971)
(14. Qg3 exd4 ) 백나이트를 지키지 않고 퀸으로 공격(중앙 백나이트 희생) → (19. exf6 Ne5) 백퀸의 위협을 무시하고 백폰으로 흑폰(f6)을 공격
(20. Bc4 Nxc4) 백 비숍 희생, 이는 미하일 탈의 실수였지만 연속적인 희생 전술에 두려움을 느낀 상대는 이후 수순을 실수하고 만다.
어떤 체스 선수는 “미하일 탈은 무조건 한 번은 기물희생을 한다.”라고 평하기도 했죠.
그의 위태하지만 화려한 체스는 수많은 팬을 양성했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승리에는 반전이 있었습니다.
미하일 탈의 거침없는 희생플레이를 복기해 보면 사실 블런더였던 적도 많았다는 것입니다(위 대국의 예시).
그러나 탈의 당당함, 그리고 희생을 통해 승리했던 결과들에 짓눌려 상대방은 블런더 조차도 의미가 있는 한 수로 보이고 앞도 되었던 것입니다.
탈의 수가 사실 완벽하지 않아서 사람들은 실망했을까요?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게임 외적인 심리전까지 활용하는 그의 스타일은 더욱 독보적으로 보였고, 체스계의 판타지스타로 수많은 팬을 양성했습니다.
팬들은 완벽한 한 수가 아니라 그의 서사가 보이는 스타일에 매료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설령 블런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기대하기까지 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때로는 패배조차도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나의 서사가 보이는 스타일은 어떤 것일까?”
서사가 보이는 뚜렷한 스타일에 매료되는 특징은 분야를 막론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기발한 전략을 보여주지만 자원이 항상 남아도는 프로게이머 임요환’,
‘뛰어난 활동량으로 공간을 창출하는 두 개의 심장 박지성’,
‘피겨스케이팅의 여왕 김연아와 라이벌 아사다 마오’ 등
사람들은 단순히 잘하는 것보다는 ‘조금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명확한 스토리 및 캐릭터’가 있거나 ‘장·단점이 뚜렷한 스타일을 가진 것을 선호’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선택과 판단에 공감할 수 있고 때로는 스토리에 본인을 투영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꼭 선수나 인플루언서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혹자는 이렇게 의문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거야 유명인이니 가능한 것 아니야?’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요즘 기업은 브랜드 혹은 제품 마케팅에 공감할 수 있는 서사를 녹여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기업에서만 보일 수 있는 것에 목매고 그 답 중에 하나를 스토리로 나타내는 방법으로 시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흔히 차별성이라고 부릅니다.
우후죽순 마스코트 캐릭터를 만드는 것도 그 의도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서사가 꼭 완성된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서사를 부여하기 위해서 때로는 미완성된 혹은 완성을 위한 실패를 과감히 보여주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안경 전문업체 "에이스 앤 테이트(Ace&Tate)"는 브랜드 공식 블로그에 ‘지속가능한 매장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탄소저감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했으며, 친환경적이지 않았다.’는 글을 솔직하게 적어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지속가능한 사업을 약속하겠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강수를 둔 것이죠.
다른 브랜드로는 양말 제작 브랜드인 "삭스타즈(SOCKSTAZ)"도 들 수 있습니다.
삭스타즈는 지난 4월 리브랜딩을 하면서 우리의 손님이 누구일까를 고민하며 브랜드가 추구하는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진솔하게 풀어내었습니다.
이들은 완벽한 수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브랜드의 모습을 반성, 혹은 미래에 어떤 브랜드가 되겠다는 서사를 보여주는 한 수였습니다.
“우리 자신도 서사를 갖고 있는 하나의 브랜드입니다.”
서사를 담은 수는 개인에게도 중요합니다.
필자가 다른 글에서도 꾸준히 거론하듯이(https://brunch.co.kr/@cryingbird/1) 남과 다른 차별성은 결국 스펙이거나 스토리입니다. 같은 상황을 경험해도 그것을 어떻게 인지하고 어떻게 표현하냐는 지금까지 내가 경험했던 스토리를 보여주는 누구도 가질 수 없는 고유성입니다.
브랜드는 흔히 고객을 팬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힙니다.
여러분에게도 만약 팬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 팬들이 어떤 서사를 가진 사람으로 바라봐주길 원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