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차 부부일기
그는 자기 숟가락으로 남이 먹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다. 연인 사이에 서로 입에 넣어주는 것 따위는 해본 적도 없다. 한 입만 찬스 따위는 없었다. 침이 섞이는 건 더럽다며 자기 숟가락 젓가락을 가져왔을 때 허락한다. 나는 그때마다 잠시 내 존재와 그와의 관계와 우주의 흐름 따위를 의심하곤 했다. 망할.
그런 그가 내 입에 들어간 떡볶이를 받아먹는 사건이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5개월쯤 되었을까? 아이를 안고 있는 나에게 떡볶이를 하나 넣어주는데, 너무 뜨거워 홀랑 뱉어버린 것이다. 반사적으로 떨어지는 떡볶이를 손으로 받은 그는 자기 입에 넣어버렸다. 그 순간 묘하게도 나는 사랑을 느꼈다. 내가 뱉은 떡볶이를 먹다니! 자신의 경계를 무너트리면서까지 나를 향한 마음이라. 엄만 찐 사랑이라며 사위를 추켜세웠다. 사랑을 느끼는 지점은 이렇게 급작스럽다.
그런데 오늘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우유에 네스퀵을 타 먹는 걸 좋아하는 그는 종종 그만의 레시피로 아이스초코를 만들어 준다. 초코 가루를 적당한 농도와 양으로 우유에 탄 다음 냉동실에 한 시간 정도 얼리는 것이다. 그러면 얼음 때문에 녹으면 연해 지지도 않고 찐하게 한 사발 마실 수 있다.
오늘도 그렇게 아이스초코를 만들려고 컵에 우유를 따랐다가 급한 전화가 왔다. 어쩌지 못하고 생우유가 든 컵을 냉동실에 넣었다. 아차 싶어 꺼냈을 땐 우유에 살얼음이 꼈다. 순서는 바뀌었지만 거기에 초코 가루를 넣고 섞었다.
“괜찮으려나?”
“뭐 그게 그 맛이지”
휘휘 저어 맛을 본 우리는 탄성을 질렀다.
“뭐야 이거. 너무 맛있잖아!”
마치 우유얼음을 갈아 넣은 것처럼 우유 맛은 고소하게 남아있으면서 초코를 부은 듯한! 하던 설거지를 멈추고 장갑을 벗어던질 만큼 맛있었다.
연신 맛있다를 외치면서 마셨다. 첫 입을 먹고 뒷 입은 남겨주고는 나는 다시 설거지를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숟가락 하나가 쓱 내 입으로 들어왔다. 제일 큰 우유얼음덩어리가 초코와 함께 내 입속으로 스르르. 이게 뭐지? 절대로 더럽다며 자기 숟가락으로 안 주던 짜꿍이가 내 입에 맛있다며 넣어 준 것이다. 차가운 우유얼음이 목구멍으로 스르르 넘어가며 그동안 받았던 한입만의 설움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이런 게 으른들의 사랑인 건가. 내가 싫어하는 것을 뛰어넘으면서까지 해주고픈? 으하하. 애쓴다. 애써.
뒤돌아보지 않았다. 순간의 낭만을 깨고 싶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