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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정 Jan 10. 2022

사랑을 느끼는 지점

9년 차 부부일기

그는 자기 숟가락으로 남이 먹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다. 연인 사이에 서로 입에 넣어주는 것 따위는 해본 적도 없다. 한 입만 찬스 따위는 없었다. 침이 섞이는 건 더럽다며 자기 숟가락 젓가락을 가져왔을 때 허락한다. 나는 그때마다 잠시 내 존재와 그와의 관계와 우주의 흐름 따위를 의심하곤 했다. 망할.


그런 그가  입에 들어간 떡볶이를 받아먹는 사건이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5개월쯤 되었을까? 아이를 안고 있는 나에게 떡볶이를 하나 넣어주는데, 너무 뜨거워 홀랑 뱉어버린 것이다. 반사적으로 떨어지는 떡볶이를 손으로 받은 그는 자기 입에 넣어버렸다.  순간 묘하게도 나는 사랑을 느꼈다. 내가 뱉은 떡볶이를 먹다니! 자신의 경계를 무너트리면서까지 나를 향한 마음이라. 엄만  사랑이라며 사위를 추켜세웠다. 사랑을 느끼는 지점은 이렇게 급작스럽다.


그런데 오늘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우유에 네스퀵을 타 먹는 걸 좋아하는 그는 종종 그만의 레시피로 아이스초코를 만들어 준다. 초코 가루를 적당한 농도와 양으로 우유에 탄 다음 냉동실에 한 시간 정도 얼리는 것이다. 그러면 얼음 때문에 녹으면 연해 지지도 않고 찐하게 한 사발 마실 수 있다.

오늘도 그렇게 아이스초코를 만들려고 컵에 우유를 따랐다가 급한 전화가 왔다. 어쩌지 못하고 생우유가 든 컵을 냉동실에 넣었다. 아차 싶어 꺼냈을 땐 우유에 살얼음이 꼈다. 순서는 바뀌었지만 거기에 초코 가루를 넣고 섞었다.

“괜찮으려나?”

“뭐 그게 그 맛이지”

휘휘 저어 맛을 본 우리는 탄성을 질렀다.

“뭐야 이거. 너무 맛있잖아!”

마치 우유얼음을 갈아 넣은 것처럼 우유 맛은 고소하게 남아있으면서 초코를 부은 듯한! 하던 설거지를 멈추고 장갑을 벗어던질 만큼 맛있었다.

연신 맛있다를 외치면서 마셨다. 첫 입을 먹고 뒷 입은 남겨주고는 나는 다시 설거지를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숟가락 하나가 쓱 내 입으로 들어왔다. 제일 큰 우유얼음덩어리가 초코와 함께 내 입속으로 스르르. 이게 뭐지? 절대로 더럽다며 자기 숟가락으로 안 주던 짜꿍이가 내 입에 맛있다며 넣어 준 것이다. 차가운 우유얼음이 목구멍으로 스르르 넘어가며 그동안 받았던 한입만의 설움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이런 게 으른들의 사랑인 건가. 내가 싫어하는 것을 뛰어넘으면서까지 해주고픈? 으하하. 애쓴다. 애써.

뒤돌아보지 않았다. 순간의 낭만을 깨고 싶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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