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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정 Aug 26. 2022

남아는 파랑, 여아는 핑크?

우리 딸은 초록을 좋아해


문턱에 발뒤꿈치가 찍히어 피를 본 나는 도무지 운동화를 신고 걸을 수 없어 약국에 들렀다. 어차피 한 두개만 쓸 거 아이를 위해 캐릭터 반창고를 사기로 마음 먹었다. 하도 붙이는 걸 좋아하는 아이는 엄마 얼굴에 아빠 팔뚝에 덕지덕지 붙이는 게 취미다.

약사 선생님께 캐릭터 반창고가 있는지 묻자,


“여자아이요? 남자아이요?”


그 순간 이게 무슨 질문인지 버퍼링을 한참….여자용 남자용이 따로 있던가? 뽀로로 정도로 생각한 나는 잠시 뇌를 바쁘게 굴렸다. 아…색깔을 말하는건가? 이어 내미는 파랑 분홍 반창고에 확신을 가졌다. 우리 아이는 초록색을 좋아 하는데?


“저희 약국 근처에 소아과가 없어서 종류가 별로 없네요.  아이 어디 다쳤어요?”

“아뇨. 제가요. 그냥 반창고 주세요.”


우리 아이는 초록색 좋아하는데. 초록색 연두색 청록색 좋아하는뎅… 티라노사우르스 공룡 좋아하고, 포크레인 좋아하는데…여자아이임.


언제부터 남자아이=파랑, 여자아이=핑크라는 공식이 성립된 것일까. 옷을 사려고 해도 맨 파랑 아니면 핑크다. 아니면 노랑 정도? 원피스는 왠만하면 분홍이어서 소헌이가 좋아하는 초록색 옷은 찾기 어렵다. 이번 추석에 입을 초록색 한복도 겨우 찾아내었다.


색깔에 대한 선호는 대체로 부모의 취향 보다는 또래의 취향에 따른다고 한다. 그렇다면 파랑과 핑크는 또래들이 좋아한다는 건데, 그것이 얘들이 좋아해서 파랑과 핑크가 많이 생산되는 건지 파랑과 핑크만 생산되어 또래들이 그렇게 입고 쓰는 건지 나는 모르겠다.


성역할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몇년 전 한 초등학교 돌봄 봉사를 나갔을 때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다. 초1 아이들이 레고로 집을 짓고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 라떼는 으레 소꿉놀이란 엄마와 아빠를 누가 할 지 정하기 마련인데 이 아이들은 전혀 아니었다. 그냥 아이 스스로 놀이의 주인공이 되었다. 도현이와 은우, 이런 식으로 도현이는 2층에 은우는 1층에 사는 것이다. 이들은 밥은 같이 먹고 놀이는 따로 논다. 도현이는 티비를 보고 은우는 고양이랑 논다. 우와, 세상이 한 번 뒤집어졌구나.


여튼 친구들은 어떨지 몰라도 올곧게 초록색 취향을 지키고 있는 내 아이는 지난 생일에 초록 연두 풍선과 공룡 풍선으로 꾸며주었더니만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최애의 조합, 초록과 공룡! 꾸미기는 2시간 걸렸건만, 아이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생일을 상징하는 3 풍선을 떼어 레슬링하고, 티라노사우르스 풍선과 결투 하다 터트려버리고, 천장에 매달린 스테고사우르스를 떼려고 의자를 가져와서 올라가고, 결국 떼어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3분만에 엉망진창으로 만들고도 신이 나서 깔깔깔 웃는다.


어린이집 생파에서 고맙게도 아이의 취향을 생각해 공룡 풍선으로 꾸몄다니 얼마나 좋아했을꼬. 향기반 친구들이 선물도 주고, 어린이집에서 맞는 첫 생일파티. 다른 아이들 생일 선물도 못 줬는데, 미안한 마음에 답례선물을 준비하려 쿠팡을 뒤졌다.


그런데 고른 선물에 레고가 남아용 여아용이 따로 있다. 남아용은 경찰오토바이, 소방지프차, 포크레인, 소방헬기, 해저탐저선, 해양경찰선 등등 13종인데. 여아용은 화장대, 그네…3종. 뭐야 이거 숫자도 그렇지만 너무 차이나자나. 남아용은 직업 관련인데 여아용은….. 게다가 우리 소헌이는 포크레인을 좋아하므롷ㅎㅎㅎㅎ 남아용으로 12개 구입.아직도 깨부셔야 할 관념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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