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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정 Dec 10. 2022

달아나려는 아이, 파고드는 아이

둘 다 내 아이

처음 엄마 손을 놓고 아장아장 걷던 12개월 3일째부터, 이 아이는 마치 부모로부터 도망가기를 인생의 목표로 삼은 아이 같았다. 삑삑이 신발을 삑-삑 거리며 서툴게 걸을 때에도 그랬다. 차가 오니 조심하라며 허둥지둥 달려오던 부모에게 잡기 놀이라도 한듯 삑삑삑삑 도망가던 아이였다. 좀 더 커서 어린이집을 갈 때는 맞잡은 손에 어떻게든 엄지 손가락을 넣어 엄마 손을 놓고 달아났다. 그 조그만 엄지손가락이 슬그머니 들어와 꼬물거릴 때면 괜시리 웃음이 났다. 또 도망가려는 구나. 나도 어릴때 하던 수법이였으니까.


평소 아이를 재우던 아빠가 자리를 비우고 아이와 함께 컴컴한 침대에 누웠다. 팔베 하던 아이가 말했다.


“하암, 왜 이렇게 하품이 나지?”


아싸. 금방 잠이 들 태세였다. 하품을 연거푸 하더니 그렁그렁 콧바람이 세졌다. 문제는 나였다. 뒤늦은 감기에 기침이 켈켈 나기 시작한 것이다. 켈켈. 콜ㅋ롤. 큽. 켘켁켁.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기침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그저 그득한 가래를 시원하게 뱉어내고 싶을 뿐이었다. 아이는 화들짝 놀라 깼다가, 안아주세요를 시전했다. 잠들만 하면 기침이 겔겔 나와 아이는 깼다. 조그만 손으로 잠결에 목마사지를 해주고 다른 쪽 팔을 끌어다가 꼭 안았다. 둘이 나눠서 하던 육아를 혼자 하는 날이 많아지면 내 체력은 골로 간다. 켁켁켁 기침이 심해지자 아이는 또 잠결에 내 등을 토닥이고는 더욱더 내 품을 파고들었다. 여러모로 잠시 울컥했다.


그러나, 아이가 자야 내가 빠져나올 수 있다. 잠들만 하면 슬쩍 빠져 나오려는 내 팔을 붙잡았다. 이런 아이가 아닌데, 낮잠 자던 조무래기 때부터 팔베게를 하다가도 더워서 쪼르르 제 자리로 굴러가 자던 아인데. 잘때도 도망가기를 궁리하던 아이가 오늘따라 캥거루처럼 매달린다.


“소헌아. 자고 있어. 엄마 잠시 화장실 다녀올께. “

“그럼 앉아있을래.” 하며 벌떡 일어난다.

“엄마 자꾸 기침나와서 그래. 아가 잠 방해하는 것 같아. “

“아니 엄마랑 잘래.”


그러다 도저히 못 참겠어서 뛰쳐나왔다. 켁켁 콜록콜록. 시원하게 뱉어내고 나는 평화를 찾았다. 세면대에 고개를 처박은 궁둥이 한 켠에 아이가 서 있었다. 건드리면 울음이 툭 터질 것 같은 얼굴로.


불안, 지금 아이는 불안하다. 엄마가 콜록콜록 켁켁 거리다 피를 토해 급사하는 그런 구체적이고 극단적인 상상까진 하지 않더라도, 아이는 불안한 것이다. 엄마가 어떻게 될까봐.(그냥 감기야)


부모가 언제든 쫓아 올 준비가 되어 있을 때에는 마음 놓고 도망 갈 수 있었다. 믿으니까. 언제나 내 뒤에 있으니까. 그런데 엄마가 정신 못 차리고 콜록대고 있으니 뭔가 심상치 않은 것이다. 내 3년반 인생동안 엄마가 이런 적이 없었는데!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건강한 상태의 균형있는 관계에서는 서로 믿음이 있다. 그러나 안쪽이 불안해지면 과하게 잡아당긴다. 나름 사정이 있다. 오해가 생긴다. 체력이 있으면 당겨지는 쪽은 제법 견딜만 하다. 허나 마음이 없으면, 불행이 겹쳐지면, 정신줄을 놓으면 툭 끊어진다.  부모는 어떻게든 소명하려 하지만, 타인은 떠난다.


늘 관계가 균형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인생에서 한번쯤은 무너질 때도 있고, 기댈 때도 있다. 그럴 때 불안을 버틸만한 체력이 될까, 때론 불안을 안아줄만한 그릇이 될까 나는. 부모로서, 아내로서, 자식으로서, 친우로서. 마음껏 도망갔다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울먹이는 아이의 손을 잡고 와 보리차를 쥐어주고, 나도 소염제 진해거담제 기침약 등을 털어 넣었다. 프로폴리스 목구멍에 뿌려주고 얇은 마스크를 썼다. 급처방전이 먹힌 탓인지 기침은 더 나지 않고 아이는 품 속에서 잠이 들었다. 불안을 따뜻한 이불도 덮어주고나니 기진맥진하다. 몸과 영혼을 갈아서 아이를 키운다. 역시 엄마는 체력.


 #39개월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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