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 아이의 탈가부장적 애착인형 이름 짓기
이 아이의 39개월 인생은 토끼로 점철되어 있다. 아이는 항상 물어본다. “내가 토끼예요?” 아니, 내가 토끼를 낳았냐고. 아니라고 하면 울고불고 난리가 난다. 때문에 나는 어금니를 꽉 물고 말한다. “그럼 네가 토끼지.”
우리 가족은 네 명이라고 믿고 있는데 엄마아빠 본인, 그리고 토끼다. 그림 그리면 죄다 토끼, 다시 아기라도 된 양 이불 덮은 엄마 무릎 위에서 토끼와 함께 쏙 들어가 논다.
적당한 크기의 보드라운 털의 애착 토끼인형은 수개월 아이에게 시달린 탓에 아무리 빨아도 누런 때를 벗지 못하고 있다. 처음 신생아 때 만났을 때는 그래도 제법 아이보단 크고 의젓하더니, 이제는 전세가 역전되어 초라하기 그지없다. 토끼는 졸릴 때는 잠메이트고, 눈물이 날 때는 손수건이고, 무서울 때는 든든한 근위병이며 기쁠 때는 발리볼이 된다. 희로애락을 함께 보낸 이 애착 토끼에게 아이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 토끼 이름은 구토헌이야.”
“뭐? 구토… 뭐?”
“구토헌이라고!”
구토헌이라니! 몇 날 며칠을 고심한 아이는 엄마의 성에 토끼의 토, 본인 이름 심소헌의 헌을 붙여 토끼 이름을 만들었다. (후보: 토카연, 토세강, 토포연 등) 어쩜, 작명원리를 제대로 아는 거니? 게다가 엄마의 성을 붙일 생각을 하고! 감격.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태명은 심콩이다. 아빠의 성에 콩이를 붙여서 만든 건데, 처음엔 내가 심쿵이라고 제안했다가 아빠가 “그럼 쿵 떨어지면 어떡하냐”며 심콩이로 합의를 본 거다. 나름 성을 연결해서 지은 기발한 태명이라 자화자찬하고 있었다.
그런데 태아보험을 드는 시기에 담당 보험사가 보낸 문자에 빵 터진 적이 있었다. “구콩이 어머님! ㅇㅇ보험입니다…”로 시작하는 문자였다. 구콩이라니! 태명에 엄마 성을 붙인 거다. 깔깔, 한 번도 그런 생각 못 해봤는데! 재미있는 에피소드라 생각해서 그의 가족에게 이야기했더니 언짢은 듯 “그 보험사 참 센스 없네. 구콩이가 뭐야, 구 콩이가. “라고 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친구들하고 이야기할 때는 그저 재밌기만 했는데…
2005년 호주제 폐지는 익히 알다시피 법적으로 많은 제약으로부터 여성 및 이혼재혼 가정의 아이들을 해방시켜 주었다. 나야 뭐 내 성을 썩 좋아하진 않고, 지금까지 살면서 부모가 이혼한다던가 하는 성에 관한 고충을 겪진 않아서 그리 큰 의견을 갖지 않았다. 양성평등을 위해 엄마의 성과 아빠의 성을 함께 쓴 것도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닌데, 구이수정… 썩 맘에 들진 않다. 그러니까 나는, 실은 성에 그리 의미 부여하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지금도 가정폭력으로 이혼한 가정에서 아이에게 엄마 성을 쓰게 하려는데 아빠의 반대로 소송까지 가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판사도 상담사도 불쌍하다는 이유로 아빠 편을 들었다. 왜 반대했냐는 질문에 “그냥, 싫어서…”
만약 내가 모종의 사건사고가 생긴다면 이 아이를 지킬 수 있을까 하는 상상에 아찔하다. 지금 세상에 얼마나 많은 형태의 가정이 있는데 말이다. 단순히 성이 바뀌는 것에 대한 문제뿐만 아니라 성을 바라보는 시선, 법적인 제약, 그것을 지켜내야 하는 심리적 부담감 등.
어쨌든 우리 가족은 넷이다. 심상욱, 구수정, 심소헌, 구토헌. 써놓고 보니 이제야 뭔가 균형이 맞는 것 같다. 뭐 첫째는 아빠성, 둘째는 엄마성 쓰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 가부장적 개념을 아무렇게나 토스해 버리는 이 아이, 여하튼 내 딸은 엄마의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부수는 스승 같은 아이로다.
#39개월아가 #애착인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