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수정 Oct 15. 2021

엄마는 니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생애 첫 감기

26개월 아가가 생애 최초 감기에 걸렸다. 추석 즈음 첫 번째 감기가 걸리고 나을 때쯤(의사 쌤 말로는) 두 번째 감기에 걸려 근 4주째 코맹맹이에 코찔찔이 상태다. 생애 처음 감기 바이러스를 맞이한 소헌이는 예방접종 외에 병원을 방문하여 코 석션도 하고 귀 내시경도 하였다. 감이 좋은 아가는 연휴라 평소 가는 병원도 아닌데 들어서자마자 울어재꼈다.


“구슈저엉 규슈저어엉~~”


엄마 아빠 이름을 알려준 이후로 아가는 엄마 아빠를 이름으로 불렀다. 딸바보 엄빠는  모습에 인지 능력 쩐다며 감동하던 시기였다. 그날 아가는 병원 복도에 엄마 이름에 원망이 섞인 울음을 토해내며 아빠에게 끌려갔고,  얼굴은 온도계마냥 귀까지 빨개져 누가 봐도 내가 ‘구수정인지  정도였다.


“나까지 감기 걸리면 끝장이다.”


아기 밥은 누가 하며 아빠가 출근했을 때 어쩌냐. 갑자기 ‘엄마’라는 직책에 대한 사명이 불타올랐다.

아기를 만지기만 해도 손을 씻고, 비타민 c d, 마그네슘, 아연을 들이부으며 면역력을 겨우 유지했다.  너를 위해서였다.  (아기 콧물을 어른의 숨으로 호스를 빨아주는)   해도 바로바로 씻었고 목이 아프면  마사지에 도라지차를  터지게 마시며 그렇게 4 가까이 버텼다.


아가는 감기 증상만 빼면 에너지 만땅인데, 도무지 시원하게 낫지 않는다. 오늘도 같이 칸쵸를 먹다가 아가가 코를 후빈 손으로 과자를 집어먹는 걸 보고 조용히 손을 닦아주고 자리를 피했다. 아가야, 엄마는 니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니란다. 감기 걸리면 끝장…. 쿨럭.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가가 남은 칸초를 한 움큼 집는다. 나에게 다가온다.


“소헌아 칸쵸 맛있엌컼”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입에 칸쵸를 쳐 넣는 아가. 입에 들어간 칸ㅊㅛ를 이거 어떡하지?

아기가 나를 빤히 바라본다. 왜 안 먹어? 씹어먹어. 아가는 세상에서 아직 배워보지 못한 험한 말을 눈빛에 담아 그윽하게 바라본다. 그 눈빛에 압도되어 나는 와그작 칸쵸를 씹었다. 아… 엄마는 니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니…헐 x됐다.


#생존신고

매거진의 이전글 왜 당신에게는 재미있는 일들만 생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