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감기
26개월 아가가 생애 최초 감기에 걸렸다. 추석 즈음 첫 번째 감기가 걸리고 나을 때쯤(의사 쌤 말로는) 두 번째 감기에 걸려 근 4주째 코맹맹이에 코찔찔이 상태다. 생애 처음 감기 바이러스를 맞이한 소헌이는 예방접종 외에 병원을 방문하여 코 석션도 하고 귀 내시경도 하였다. 감이 좋은 아가는 연휴라 평소 가는 병원도 아닌데 들어서자마자 울어재꼈다.
“구슈저엉 규슈저어엉~~”
엄마 아빠 이름을 알려준 이후로 아가는 엄마 아빠를 이름으로 불렀다. 딸바보 엄빠는 그 모습에 인지 능력 쩐다며 감동하던 시기였다. 그날 아가는 병원 복도에 엄마 이름에 원망이 섞인 울음을 토해내며 아빠에게 끌려갔고, 내 얼굴은 온도계마냥 귀까지 빨개져 누가 봐도 내가 ‘구수정’인지 알 정도였다.
“나까지 감기 걸리면 끝장이다.”
아기 밥은 누가 하며 아빠가 출근했을 때 어쩌냐. 갑자기 ‘엄마’라는 직책에 대한 사명이 불타올랐다.
아기를 만지기만 해도 손을 씻고, 비타민 c d, 마그네슘, 아연을 들이부으며 면역력을 겨우 유지했다. 다 너를 위해서였다. (아기 콧물을 어른의 숨으로 호스를 빨아주는) 코 뻥 해도 바로바로 씻었고 목이 아프면 목 마사지에 도라지차를 배 터지게 마시며 그렇게 4주 가까이 버텼다.
아가는 감기 증상만 빼면 에너지 만땅인데, 도무지 시원하게 낫지 않는다. 오늘도 같이 칸쵸를 먹다가 아가가 코를 후빈 손으로 과자를 집어먹는 걸 보고 조용히 손을 닦아주고 자리를 피했다. 아가야, 엄마는 니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니란다. 감기 걸리면 끝장…. 쿨럭.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가가 남은 칸초를 한 움큼 집는다. 나에게 다가온다.
“소헌아 칸쵸 맛있엌컼”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입에 칸쵸를 쳐 넣는 아가. 입에 들어간 칸ㅊㅛ를 이거 어떡하지?
아기가 나를 빤히 바라본다. 왜 안 먹어? 씹어먹어. 아가는 세상에서 아직 배워보지 못한 험한 말을 눈빛에 담아 그윽하게 바라본다. 그 눈빛에 압도되어 나는 와그작 칸쵸를 씹었다. 아… 엄마는 니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니…헐 x됐다.
#생존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