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습관과 엄마의 취향을 닮았다

어쩌다 보니 육아

by 구수정

어린이집 등 하원을 시키는 엄마 아빠의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엄마와의 등 하원 길은 5분이면 오는 길을 20분이나 걸려서 온다. 가는 길에 책에서 본 괭이밥도 봐야 하고 꽃나무의 향기도 맡아야 한다. 그 시간에 청소하시는 이모님과 낙엽을 쓰는 아저씨에게도 꼭 인사해야 한다. 나무에 달린 열매가 빨갛게 변하는 것도 꼭 빼놓지 않고 관찰해야 하고 나무에 달린 팻말도 하나하나 만져가며 봐주어야 한다. 안 읽어주면 안 간다. 으허. 덕분에 연산홍 자산홍 산철쭉 팽나무 등 모르는 나무 이름을 엄마가 배웠네. 아직 개미의 늪에는 빠지지 않았으나 봄이 오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며칠 전에는 괭이밥을 봐야 한다며 신나게 집을 나섰는데, 정원 관리를 한다고 다 뽑아버려 시무룩해졌다. 상실의 감정을 생애 처음 느낀 걸까?

그렇게 하나하나 살펴보고 참견하고 나무 이름을 부르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임박해져 엄마는 조급하다. 그래도 어쩌랴. 내가 어릴 때 다 했던걸.


나도 유치원 초딩 저학년을 시골 분교로 다닌 터라 볼거리가 많았다. 길에 튀어나온 아스팔트를 꼭 밟아보고, 논두렁에 개구리 있나 확인하고 가는 길에 소(키우는)집사님과 돼지(키우는) 집사님께 꼭 인사를 하고 갔다. 우리 엄마는 복장 터졌겠지만 단 한 번도 재촉하지 않았다. 하아, 이 업보가 나에게로 왔구나.


그런데 아빠는 단 5분 만에, 아니 그보다도 더 빨리 주파한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오는지 궁금했던 내가 물어봤더니 “다 방법이 있지.” 하며 비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어쩌다 하원길에 동행하게 되었을 때야 그 비법을 알게 되었는데,

아빠가 “잡으러 간다” 하며 뛰면, 뛰는 걸 좋아하는 아가는 깔깔깔 웃으며 뛰기 시작한다. 아빠의 체력을 닮은 아가는 사방이 제 세상인 양 껑충껑충 뛰어다닌다. 아빠는 콩 같은 아이 뒤통수에 손을 대고 있다가 집 방향이 아닌 곳을 보면 머리 방향을 돌려 정면을 보게 한다. 그러면 아이는 깔깔대고 그 방향으로 뛰어간다. 또 딴 곳을 보면 머리 방향을 돌려 정면을 보게 한다. 경주마처럼 집에 간다는 목표만 보고 뛰어가는 두 부녀를 나는 헉헉 쫓아가기도 벅찰 정도였다. 이렇게 집에 온다니! 갑자기 속은 느낌. 이렇게 육아의 방식이 다를 수가. 다행히 아이는 엄마와 아빠의 방식을 넘나들며 신나게 놀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등굣길에 나무 팻말을 보더니 글자를 읽는 게 아닌가? 오오옷 신기한 엄마는 “이것도 읽어봐. 저것도 읽어봐” 한 글자 한 글자 손으로 짚으며 읽는 27개월 아가. 우리 엄마가 나 세 살 때 책 읽었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닌가 보오.

아이는 아빠의 습관과 엄마의 취향을 닮았다. 어딘가 닮은 구석이 요기조기 존재한다. 와꾸가 넘 아빠 판박이여서 그동안 좀 서운했는데… 이 아이는 신기하게도 아빠보다 엄마보다도 더 몸도 튼튼하고 마음도 튼튼한 것 같다. 하이브리드 아가. 요새 엄빠는 바스락거린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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