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제목을 이태원 참사에서 공식 명칭인 10.29로 변경합니다.
그 고통을 기억한다. 사방에서 누르는 힘을 어쩌지 못하고 죽을 것만 같은 그 공포. 타인의 살과 채취가 불쾌하게 온 몸을 부비고 숨은 안 쉬어지고 피가 머리로 쏠리는 그 기분. 내 신체는 나로인해 통제되지 못하고 세찬 물 속에서처럼 이리저리 휩쓸리는 상황들. 이러다 사고나겠다 싶은 불안감.
그런 상황들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난다. 여의도 벚꽃축제, 불꽃축제, 월드컵 축구경기, 콘서트장, 새해 보신각 앞, 연휴전날 서울역, 출근길 2호선 지옥철… 대충 생각나는 내가 경험한 것들이다. 데이트날 한강 불꽃축제에 가기 위해 여의도 어느 지하철에서 내렸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울의 모든 사람들이 불꽃놀이 보러 왔을까? 그는 어떤 불안감에서인지 잡던 손을 꽉 쥐었다. 지하철 출구에서부터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잰걸음으로 나아갔다. 모르는 사람의 등과 어깨가 부딪치다못해 뭉개졌다. 의도치않게 만져지고 닿았다. 불쾌감이 극에 달했다. 데이트를 위해 예쁘게 차려입은 옷과 머리는 헝클어졌다. 종종 손을 놓칠 정도로 밀쳐졌다. 그는 자신의 몸 앞으로 나를 세워 보호하듯 걸었다. 폭죽은 하늘 위에서 터졌지만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검은 재가 콧잔등 위에 내려앉았고 우리는 그 날 이후로 크리스마스, 새해는 조용히 집에서 보내기로 했다.
뒤에서 밀려드는 인파로 인해 다리가 휘청일 때면 이러다 압사되는 건 아닌가 공포가 밀려왔다. 그런데 그 공포가 현실이 되었다. 바로 2022년 할로윈 이태원에서 말이다. 사고는 순식간이었을게다. 서로 반대를 향해 가던 사람들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밀기만 하였다. 사람 위에 사람이 넘어지고 덮쳐지고 밀렸을 것이다. 뉴스에 따르면 3~4중으로 쌓였다고 했다. 맨 밑에 깔린 사람은 적어도 240킬로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숨이 끊어졌을 것이다. 증언에 따르면 깔린 사람들이 비키라 소리 지르다 일순간에 조용해졌다고 했다. 증언자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고.
사람이 몰리는 곳에서 일어나는 사고는 인재다. 예측이 되는데도 대비를 못하면 인재다. 적어도 이태원의 할로윈은 예측 가능한 인파였다. 그럼에도 대비를 잘 하였는가. 지날수록 한숨과 슬픔이 몰려온다. 160여명이 사망하거나 다쳤다. 그들은 대부분 10대에서 20대였다고 한다. 중간고사를 끝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축제를 즐기던 이들이었다. 아마도 긴 펜더믹 이후 할로윈이라 들뜬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사건 후 예정된 많은 할로윈 행사가 취소된 것으로 안다.
그렇지않아도 어제 만 세 살 딸아이에게 할로윈 코스튬을 입혀 주었다. 호박색 원피스에 검은 망토를 입히고 양갈래로 예쁘게 머리를 땋아 묶은 다음 마녀 모자 핀을 찔러 주었다. 머리핀을 싫어하는 아이지만 그 날만은 할로윈이라 그런지 거울을 여러번 보고 꺄르르 웃었다. 논밭에 둘러쌓인 길이었지만 아이는 꼬마마녀가 되어 사방팔방 소리를 지르고 뛰어다녔다. 식당에 가서도 행복한 흥분은 가라앉지 않아 가족들이 애를 먹었다.
내일은 어린이집에서 할로윈 행사가 있는 날이다. 아직 공지사항은 없지만 엄마의 마음은 좀 심난하다. 아이들이야 뭘 알겠냐만은 이런 참혹한 사건을 두고 부모들은 어찌 해야 할지. 옷 하나 바꿔 입었다고 이렇게 행복해하는 아이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이태원 참사에서 유명을 달리한 10~20대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할로윈축제를 즐겼던 아이들이자 이미 문화였다. 어린이집에서, 영어학원에서, 또는 거리 상가에서 할로윈은 친숙한 날이었다. 할로윈은 우리 아이도 어린이집에서 처음 접한 문화다. 젊은이들의 일탈로 치부하기엔 이미 이들의 축제이자 문화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문화를 제공한 이들은 결국 어른들이었다.
많은 사람이 그런데를 왜갔냐, 그런 상황에서 요즘 젊은이들은 서로 돕지 않는다 타박을 하기 전에 안타까운 죽음에 관해 함께 공감해 주시길 바란다. 사고는 한순간이었지만 깔리고 엎어지고 엉킨 상황에서 스스로 몸을 일으키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주체할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무언가를 하고 싶었던 이들이었을 것이다.
물론 어른으로서 많은 말들이 떠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내 그럴줄 알았다”거나 “왜 서양문화를 즐기냐”는 공감지수 0인 말들은 이곳에서는 삼키길 부탁드린다. 희생자들에 대한 지적질보다 그 찰나의 공포를 안타까워하고, 애도하는 마음이 앞서길. 불행에 공감할 줄 아는 것이 그게 어른이지않나. 공감도 지능이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사고 현장 사진 및 영상은 고인을 위해 부디 공유하거나 재배포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