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고추장을 챙겨먹게 된 계기는 아무래도 자취생활이었던 것 같다. 기숙사를 나와 처음으로 혼자 살게 되었던 그 날, 엄마는 냉장고에 할머니표 된장과 고추장을 채워 넣었다. 열아홉살이 뭐 그렇게 휘황찬란한 요리를 해먹지는 않았지만, 나물을 넣고 비벼먹는 비빔밥부터 영혼의 간식 떡볶이까지 고추장은 당시 나에게 된장보다 꽤 쓸모있는 식재료였다.
언젠가 할머니표 고추장이 떨어졌을 때 뭐 다르겠어? 하며 시중 태*초 고추장을 샀다가 낭패를 본 적이 있다. 할머니 고추장은 매우면서도 담백하고 끝 맛이 상큼했는데, 시중 고추장은 텁텁하고 달기만 하지 맛이 없어 먹을 수가 없었다.
할머니 고추장의 위대함을 깨닫게 된 이후로 나는 그 고추장만 먹을 수 밖에 없었다. 엄마는 떨어질 때마다 부지런히 외할머니 댁에서 공수해다가 채워 넣었다. 결혼 하고 나서도 할머니는 첫 손녀딸의 식탁까지 걱정해가며 손수 만드신 고추장과 고소한 참기름을 챙겨 주셨다.
그러다 엄마가 고추장을 직접 만들게 된 계기가 있었다. 여느 때처럼 바리바리 딸에게 줄 장이며 반찬을 싸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먼 길 가는 동안 터지지 않게, 상하지 않게 정성스레 싸는 엄마를 가만히 보던 아빠가 한마디 했다.
“언제까지 장모님 고추장을 퍼다 나를 꺼야? 연세도 드셨는데.”
그 말에 꽝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해진 엄마는 그 해 가을 머리통만한 단지에 직접 할머니께 전수받은 방법으로 고추장을 담았다. 엄마가 60세가 될까말까 한 나이에 처음으로 담아봤단다. 뭐하러 힘들게 담았냐고 하니 “우리 딸 꼬추장 못 먹을까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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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님은 먹는 것에 진심이시다. 처음 결혼해서는 주말마다 손수 불고기며 소고기완자국, 칼칼한 찌개, 굴비 갈치를 구워 주셨다. 맛 또한 일품이었는데 무엇보다도 재료를 아끼지 않고 팍팍 넣으신다. 소고기완자국에 넣을 무를 도마에 놓고 썰지 않고 한 손으로 들고 칼로 비켜 부채꼴로 써는데 ‘삐댄다’고 한다. 그러면 정사각형으로 자른 무와는 다른 식감을 가진다. 소불고기도 야들야들 고소하면서도 부드럽다. 그런데 절대 레시피를 공개하지 않으시는데 그 이유는 “알려주면 여기 와서 안 먹을까봐”
그래도 집에서 해 먹을게 없다며 졸라 소불고기 레시피를 얻었다. 아마도 아들 먹을게 없을까 한숨 쉬며 알려주신 듯. 그래도 영 그 맛이 아니었다. 여러번의 실험 끝에 짜꿍이 입맛을 기준으로 성공! 그 성공의 열쇠는 바로 ‘생강’의 양이었다. 어머님! 제가 드디어 어머님 맛을 내요!
무엇보다 우리 어머님은 꽃게찌개를 잘 끓이신다. 살살 녹는 꽃게 살에 달달한 국물 한 스푼, 임신 기간에 그 맛이 생각날 정도로 일품이다. 그래서그런지 아이도 할머니의 꽃게찌개를 좋아한다. 꽃게를 다듬는 것도 그렇고 감히 따라 하는 건 엄두도 못 낼 맛이다. 서해안에 사는 관계로 철마다 꽃게를 쟁여 먹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찜통에 쪄먹기. 어머님께 너무 맛있다며 호들갑을 떨었더니 “이거 쉬워. 된장하고 야채만 좀 넣으면 돼.”
하루는 무슨 용기가 났는지 꽃게찌개를 끓여보기로 했다. 내 아이에게 해주고 싶었다. 냉동된 꽃게를 칫솔로 쓱싹 문질러 닦고, 가위로 조심스레 분해하기 시작했다. 고추는 매우니까 생략, 당근 애호박 무우 파를 썰어 넣고 된장을 풀었다. 정말 된장만 넣어도 될까? 잠시 고민했지만 더 넣을만한 것도 없었다. 된장 푼 물이 끓자 야채를 먼저 털어 넣었다. 다시 끓어오를 때 이제 대망의 꽃게를 넣었다. 국물이 잠잠해졌다가 다시 보글보글 소리가 난다. 잿빛의 게껍질이 붉게 달아오르면서 난다! 난다, 냄새가 난다! 달큰한 꽃게 국물의 냄새!
그날 저녁 만찬은 아이의 엄지척으로 마무리했다. 바로 이 맛이야! 밥 한공기를 단번에 비운 아이는 크게 외쳤다. 호박도 맛있고 게살도 맛있고, 당근도 맛있어. 엄마, 또 해줘!
내 몸에 새겨진 풍미가 이렇게 아이의 입맛으로 이어진다.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맛의 문화가 가계를 통해 전해지고 있었다. 한국인이 고달플땐 엄마표 된장찌개가 생각 나듯 오스트리아 사람에겐 굴라쉬가, 미국 중부사람들에게는 미트볼스파게티가 땡긴다. 마음으로부터 그 맛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보수적인 맛의 감각은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내려왔다.
미래의 전통이란 그런 것이다. 모든 세계의 문화가 노출되고 소비되고 중첩되고 피로하게 느껴지는 가운데서도 나를 흔드는 한 끗 차이가 있다. 내 감각이 땡겨 좋으면 닮고 싶고, 잇고 싶고, 계속하고 싶은 것이다. 언제였는지도 모르게 스며자꾸 입 속에 맴돌아 노래 부르고 싶고, 이야기하고싶고, 불편해도 입고 싶고, 맛보고 싶고 내 몸에 새기고 싶은 것이다. 기꺼이 수고로움을 감내하며, 그래서 그 맛과 멋을 내 자식에게 전해주고 싶은 것이다. 시간이 자꾸만 달아나 조급해진다. 조만간 우리 엄마의 나물무침을 배워 아이에게 해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