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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정 Sep 25. 2023

자연주의 출산을 결심한 것은

음악치료사 출산기


실은 엄마 때문이었다. 자연주의 출산을 결심한 것은. 엄마는 나를 낳을 때 병원 간 지 2시간 만에 낳았다고 아주 어릴 때부터 말해줬다. 아빠는 타지에 있었고, 1월의 어느 날 왠지 애가 나올 것 같아 버스를 혼자 타고 가서 낳았다고 했다. 그 올라가는 길이 언덕이라 좀 힘들었다고. 이 신화 같은 이야기를 반은 믿지 않았지만, 막상 내가 애를 낳을 때는 아주 크게 작용했다. 나도 엄마처럼 쑴풍 낳을 수 있을 거야라는 막연한 자신감? 딸은 엄마의 출산방식을 그대로 닮는다고 했으니까.


짝꿍이와 먼저 상의를 했다. 무통주사도 안 놓고, 제모도 안 하고 회음부도 안 찢는대. 차가운 병원 침대에서 낳는 게 아니라 보통의 방에서 분만을 한대. 아빠가 함께 들어가서 낳는 거야. 응급 처치가 필요할 때만 의사가 개입하고 둘라와 산파가 도와줄 거야. 모자 분리를 안 하고 낳은 방에서 2박 3일 지내는 거야.


의외로 그는 나와 생각이 비슷했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인간이 아이를 낳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일이라 믿었다. 물론 아기가 자리를 잘 잡지 못하거나 산도가 제때 열리지 않거나, 산소부족과 같은 위급한 상황에서는 제왕절개를 하는 등의 처치가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의료진들의 편의를 위해 제모나 회음부를 미리 가르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분만실의 회전 때문에 충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퇴원하고 싶지도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를 낳자마자 신생아실로 분리시키지 않는 것이다. 모자동실에서 우리 부부는 뜻을 같이했다. 게다가 자연주의출산을 하는 곳이 마침 우리 옆 동네였다. 뭔가 착착 맞아떨어진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자연주의 출산은 아빠에게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했다. 4번의 교육을 받아야 했고 아빠는 그중 모유수유 교육을 제외한 세 번의 교육을 꼭 받아야 그 병원에서 출산할 수 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아기를 낳으면 아빠는 문 밖에서 기다리다 간호사로부터 “귀여운 공주님이에요” 하며 소식을 듣고 유리창 너머 신생아실에서 첫 만남을 가지지만 여기는 그렇지 않다. 산모가 진진통을 견디는 동안 예비 아빠도 교육 때 배운 운동을 함께 하며 고통을 덜어준다. 등을 받쳐주며 아기 낳는 자세를 지지해 주면 출산할 때 훨씬 힘이 되고 아픔이 경감된다. 낯설고 차가운 분만실 침대에서 엄마 홀로 외로이 분투하는 것을 떠올려보라.  안 그래도 무서운 것이 출산이다. 출산 동지로 함께 호흡을 조절하며 부부가 서로 데워진 살을 맞대고 분만하는 것은 두려움을 넘어선 고귀한 행위이다.


이 모든 것을 그는 감당해 주었다. 지방을 왔다 갔다 하면서도 함께 교육을 들으며 부모가 될 준비를 해 주었다. 출산할 때 역시 빠른 판단력으로 병원으로 이동하고 나의 가쁜 숨을 조절해 주며 온몸으로 지지해 주었다. 그리고 기적과도 같이 다섯 번 힘주고 아기가 태어났다. 으앙! 2시간 만에 나를 낳았다는 엄마 말은 과장된 게 아니었다!


아기는 내가 힘을 세 번째 주었을 때 머리를 내밀었고, 산파가 내 손을 끌어 아이의 머리를 만지게 해 주었다. 까끌까끌한 머리카락이 만져졌다. 네 번째, 그리고 다섯 번째 힘을 주었을 때 뽕! 그리고 스르르 미끄러지듯 나왔다. 산파는 아직 태반도 빠져나오지 않은 자그만 아기를 내 가슴 위에 올려 주었다. 가쁜 숨을 내쉬며 아이를 안았다. 벌건 아기는 을라을라 울었고 이내 태반도 스르르 빠져나온 것을 느꼈다. 갓 아빠가 된 그는 어느새 웃통을 벗고 내 옆에 누워 캥거루케어를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산파는 아직 탯줄도 자르지 않은 아기를 아빠의 가슴 위에 올려 주었다. 그는 소리쳤다. “와 발가락이 나랑 똑같아!” 모든 게 신기하고 웃기고 눈물 나고 벅차오른다. 머리 위에서 폭죽이 터지는 것 같았다.


처음으로 아빠 가슴 위에서 심장을 맞대고 누워 있던 아기는 편안한지 가만히 개구리처럼 붙어 있었다. 한참을 신기해하고 들여다보고는 아빠는 드디어 탯줄을  자르는 성스런 의식을 치렀다. 둘라 선생님은 아기가 태어난 날짜와 시간을 적어 주었다. 새벽 4시 25분.


아기는 잠깐 간단한 신체검사와 접종을 마치고 15분 만에 돌아왔다. 이미 기진맥진한 나는 침대에 널브러져 있었고, 아빠는 두 뼘 남짓한 아기를 한 팔에 들고 얼렀다. 아기는 내가 안을 때보다 빵빵한 배 쿠션이 있는 아빠가 안았을 때 더 편안해했다. 아기가 칭얼거릴 때마다 나는 원격으로 “콩이 우쭈쭈. 아고 그래쪄.”를 하면 이내 잠잠해졌다. 와, 신기하다. 아빠가 안고 있어도 이게 되네. 앗! 그때 알았다. 아기가 엄마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장황하게 앞서 출산기를 쓴 이유가 바로 이거다. 엄마가 안고 있지 않아도 엄마 목소리를 들으면 칭얼거리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갓 태어난 아기는 엄마의 체취, 촉감, 얼굴 모습은 아직 습득하지 못했다. 오직 엄마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엄마의 목소리! 바로 청각 정보라는 것이다.


뱃속에 있는 아기는 다섯 가지 감각 중에 가장 먼저 청각이 발달한다. 청각은 가장 원초적인 감각으로 17주 정도에 귀가 완성되고 신경이 연결되기 시작해 이내 소리를 듣는다. 먼저 엄마의 다양한 소리를 듣는다. 엄마의 위가 소화하는 소리, 혈류가 흐르는 소리, 장이 꿀럭거리는 소리, 꼬르륵 소리, 방귀소리 등 오장육부가 일하는 소리, 그리고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것도 양수를 통해 어마어마한 데시벨로. 엄마의 목소리를 광광 매일 하루종일 듣는다.  바로 이 같은 의학적 사실이 음악치료의 논거가 된다. 그리고 눈도 뜨지 못한 아기가 태어나 알게 되는 것이다. 엄마를 찾을 단서는 바로 엄마의 목소리라는 걸!


아기가 태어나는 것이 첫 번째 분리이다. 편안한 양수 속에서 툭 터져 나와 안 그래도 불안한데 매일 들리던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얼마나 두려울까. 그래서 아이는 울음을 터트린다. 가뜩이나 환경이 바뀌고 한 몸 같던 엄마와 떨어졌는데 신생아실로 아기를 분리한다? 아기 입장에선 태어났는데 아무리 울어도 엄마 목소리가 안 들리고, 우주 어딘가에 뚝 떨어진 기분일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분리불안, 엄마 껌딱지.


태어나면서 엄마와 떨어져 본 적이 없는 내 아이는 분리불안이 없어서 탈이다. 아기 때도 엄마 간다! 하면 빠이빠이를 해 주던 아이. 그간 엄빠의 노력을 아는지 어딘가 내 근처에 엄마가 반드시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는 아이. 그런 면에서는 참으로 고마운 아이다.


제왕절개냐 자연분만이냐 보다 아기에게 더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의료진의 편의로 태어나자마자 신생아실로 분리하는 것, 그리고 산후조리원에서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아기는 뱃속에서 듣던 엄마 목소리를 듣지 못해 은연중에 유기불안을 심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부자연스러우면서도 편의를 도모한 현대식 출산 시스템이 아기의 불안을 부추기고 결국 부모가 체력을 갈아 그 불안을 채우는 게 아닐까. 삐뽀 하정훈 소아과 선생님이 그러셨다. “2주 조리원 천국에 있고, 그 이후를 지옥으로 보내실래요? 처음에 좀 고생하면서 아이와 행복을 만드실래요?”


#조리원은모자동실로 






에세이 <마음을 듣고 위로를 연주합니다> 연장선에서 음악치료사의 일상과 직업적 생각을 담고 연재합니다. 책이 궁금하시다면 링크를 클릭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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