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마음
그 날은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최고의 날이었다. 새로운 동물들도 만나고 거북이 밥도 주고 파충류도 직접 만져보고 더할 나위없이 새로운 날이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너무 행복해!” 를 외치던 아이는 동물체험을 마치고 식당으로 향하던 에스컬레이터에서 오줌을 싸버렸다. 기저귀 뗄 때도 밤에 이불에 한번도 실수하지 않던 아이였다. 또래보다 책읽기도 빠르고 글쓰기도 빠른 총명한 아이였다. 줄줄줄 다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오줌줄기를 나는 속수무책으로 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어떡하지? 우선 화장실을 찾아 두리번 거렸다. 칸에 들어가 차분하게 바지를 벗기고 내복과 팬티를 벗겼다. 이미 한 쪽 신발은 흥건했다. 겉에 바지를 다시 입히고 흠뻑 젖은 내복과 팬티와 양말을 대충 세면대에서 행구어 짜냈다. 오줌이 뚝뚝 떨어지는 옷들을 들고 다닐 순 없는 노릇이었다. 이 과정에서 다행이라 해야할지, 아이는 울지 않고 나의 지시에 따랐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는 핸드드라이기에 손을 말리려는데, 우웅 하는 소리에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소리가 너무 크잖아요. 으앙” 아이는 삼킨 울음을 기어코 터트렸다. “괜찮아, 괜찮아” 아이를 다독이다보니 이 말이 내게 하는 말인지 아이에게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다시 마음을 추스리고는 아이 손을 잡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바지가 내려가요. 바지가 내려가면 창피해지잖아요.”
“응, 손으로 바지를 잡으면 돼.”
주차장까지 그렇게도 멀었던가. 카시트에 수건을 깔아 앉히고 여기서 화를 내면 혹시나 나쁜 기억이 될까봐 사탕을 하나 까서 입에 넣어 주었다. 아이 표정이 금새 밝아졌다.
에효, 무슨 밥이냐. 집에 얼른 가자. 얼마나 찝찝할꼬. 주차장을 빠져나와 집으로 가는 동안 꾹꾹 눌러 둔 내 마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화가 나기도 슬프기도 하면서 뭐라 한 단어로 이를 수 없는 희한한 감정이었다. 왜 갑자기 쉬를 했지? 음료수를 많이 먹었을까? 도마뱀 만지는 일이 뭔가 긴장 되었을까? 그래서 에스컬레이터에서 긴장이 탁 풀어졌을까? 그래, 초딩 때도 쉬 하는 애들도 있는데, 아직 다섯 살이잖아.
여기까지 생각이 들자 갑자기 눈알이 시큰거리고 우리 엄마가 떠올랐다. 맞아, 살면서 수많은 실수와 실패를 하는데 나의 실수를 지켜보면서 우리 엄마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해 줄 수 있는 건 없고 결국 아이가 해쳐나가야 한다는 걸. 이런 창피와 굴욕도 느껴가며 스스로를 진정 시켜야 한다는 걸 아셨겠지. 나의 아이도 앞으로 이런 뜻밖의 일들을 수없이 겪어갈텐데, 내가 온전한 정신으로 지켜봐줄 수 있을까? 이런 게 부모가 되는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