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를 벗어나
#지적장애 #음악치료
오랜만에 성인 지적장애 내담자를 맡았다. 음악을 듣고 심상 그리기를 하는데 우리 아이가 만3세 즈음 그리던 솜씨가 나와 웃음이 났다. 색깔도 핑크, 노랑, 하늘. 눈코입을 그리는 방법, 해맑은 표정, 옆에 표현된 구름들. 노래를 너무나 좋아하지만 (음감이 아직 형성되지 않아)음치. 아, 지적장애도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정말 3-4세 정도의 지능이 발현된다는 말이 맞구나.
책에 나오는 내용들이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다보니 새삼스러운 면이 있다. 이전에 본 아이 중 나의 세션에서 가장 어린 나이는 35개월 아이였다. 아이가 태어나고보니 신생아는 내가 처음 경험해보는 인간의 형상이었다. 피아제의 감각운동기(0-2세)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아, 이것이 대상영속성이로군! 아이가 그토록 까꿍놀이를 광적으로 좋아하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은 또 전조작기(2-7세) 아이 답게 토끼들과 매일 대화하며 자기가 낑깡유치원 원장님도 되었다가 엄마도 된다. 그렇게 소꿉놀이를 하루종일 질리도록 한다. 어느 날, 자신의 실수를 소꿉놀이에 대입하며 토끼인형에게 엄마인 척 타이르는 광경을 목격했을 때 저릿했다. 엄마가 했던 말을 그대로 따라 하면서 말이다. 실수를 저지른 괴로움, 불안, 그리고 앞으로의 다짐 등을 소꿉놀이라는 가상의 상황을 만들어 스스로 해소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정적 감정을 다시 꺼내는 것이 상처가 될 수도, 그냥 묻어놓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아이는 굳이 꺼내어 스스로 정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더라. 소꿉놀이를 통해.
음악치료사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꼬마 내담자들에 대한 이런 발견에 감격스러웠다. 우리 엄마를 앉혀두고 내가 발견한 것들에 대해 신이 나서 다다다다 이야기한 적이 있다.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것 같다. 가만히 듣고 있던 엄마가, “니 애나 그렇게 키워.” 지금 우리 엄마는 그 말을 했는지도 잊어버렸겠지만, 문득 생각이 든다. 나는 내 애를 그렇게 키우고 있을까?
그건 책에만 있는, 외워야만 하는 시시콜콜한 이론이 아니라 내 삶에 들어와 있는 것이었다. 오히려 이 아이는 내게 스승이 되었다. 내가 키우고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나에게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다. 아이는 내 세계를 단번에 찢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