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렁이 성주신
부모님이 결혼해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집 이야기다. 하나의 이야기만은 아니고 내가 여기저기 주워든 이야기로 재구성한다.
이 집은 원래 첫째 큰아버지 댁이었다. 시골에서 보기드문 초록색 기와에 정남향의 너른 마루, 방 세 칸이 있는 단촐한 집이었다. 이 집에서 큰어머니는 늘 병치레가 심했고, 농사도 잘 안되고 동물들도 시원찮았다. 이전부터 팔아야지, 떠나야지 하는 걸 스무살 어린 막냇동생 우리 아부지가 덥석 문 것이다.
마침 결혼할 사람도 생겼고, 그 당시 L기업을 다니고 있던 아빠는 사택에 결혼할 사람을 들이긴 싫었다. 사택엔 아주머니들 입김도 너무 세고 자기들끼리 모함도 하는 걸 지켜봐온 터였다. 출퇴근이 길어지더라도 시골집으로 가야겠다. 그래서 당시 시골집 치고는 큰 돈 500만원을 빚을 내 주고 샀다. 형한테 알면서 덤테기를 쓴 것이다. 그때 평균 월급이 18만원. 쌀 한가마가4만5천원.
아무것도 모르는 울 엄마, 고향은 여기지만 도시에서 제약회사 다니던 울엄마 영문도 모르고 시골집에 시집와서 한참 뒤에야 이 사실을 들었다. 그것도 큰형님이 불러서 “그 집에는 개도 키우지 말고 텃밭도 가꾸지 말라며. 아무것도 안 되는 땅”이라며 악담 아닌 악담이었다.
그런데 웬걸 친정집에서 데리고 온 하얀시고르자브종 메리가 새끼를 숨풍숨풍 낳았다. (나는 여기부터 기억이 있음) 동네 사람들은 그 하얗고 오동통한 똥강아지들을 분양하라고 했다. 엄마는 동네사람이니 그냥 나누어 줄 생각이었지만 사람들은 이쁜 강아지를 그냥 데리고 오면 안된다며 주머니에 돈을 찔러주기 바빴다. 메리는 이후에도 여러번 건강하고 귀여운 강아지를 낳았고 빚 갚는데 요긴하게 썼다. 엄마는 토끼도 키웠는데 토끼들도 숨풍숨풍 새끼낳고 잘 커서 앙고라 털 팔아 부지런히 빚을 갚았다. 당시 아빠 월급으론 어림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스님이 길을 지나가다 우리집에 들어왔다. 시주 받으러 오는 스님들이 시골엔 많았기 때문에 쌀 한바가지 퍼가지고 오는데 이상한 얘기를 했단다. 이 집은 터가 아주 세고 마루에는 커다란 구렁이가 휘감고 있다고. 여기 사는 사람들 기운이 잘 맞으면 흥할 것이고 아니면 힘들게 살 것이란다. 그래서 어찌하냐고 하니 잘 만난 것 같으니 그냥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면 된다고, 자긴 시주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구렁이때문에 들어왔더란다.
그리곤 나는 중학교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했고 동생은 고딩때부터 했으니 꽤 많은 시간을 엄빠 두 분이서 사셨다. 그 사이 아빠는 멀쩡한 직장을 나와 사업을 시작하셨고 덩달아 엄마도 바빠졌다. 집은 아이들이 없고 두 분도 거의 잠만 자는 숙소가 되어버렸다. 그러다보니 집을 가꾸지 못해 나무 울타리만 부지런히 자라 거대한 사철나무같았다. 사실 뭐가 먼저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집이 어수선해서 아이들이 떠난 건지 아이들이 떠나서 어수선해진건지. 온 가족의 인고의 시간이었다.
사실 그 집을 떠날 기회는 여러번 있었다. 인근 도시에 아파트청약도 당첨되어 부푼 꿈을 꾼 적도 있었고, 학업때문에 아이들이 서울로 왔을 때 진지하게 온 가족이 올라올까도 고민했었다. 그래도 결국엔 떠나지 않았으니, 구렁이 성주신 때문이었을까.
아이들이 대학을 가고 졸업을 할 무렵 아빠는 미뤄둔 평생의 과업을 실행하셨다. 바로 새 집짓기였다. 막내돼지가 불면 날아갈새라 벽돌집을 짓듯 직접 설계하셨다. 자신의 로망 잔디밭과 벽난로, 다락방, 넓은 테라스를 가진 2층집을 말이다. 지금의 우리 집이다. 그렇게 정성스레 지은 이 집은 떠나온 내게 돌아갈 곳을 만들어 주었다. 나의 딸도 키워냈고, 코로나때는 나의 학교가 되기도 했다.
두어 해 전 설날, 친척들이 집으로 찾아왔다. 이 땅의 옛 집 주인이던 첫째 큰아버지도 오셨다. 사촌오빠의 차에서 내린 큰아버지는 한사코 집에는 들어오지 않겠다며 멀찍이 서 있다가 차로 들어가버렸다. 황망한 그 표정을 잊지 못하겠다. 자신이 등떠밀듯 팔아버린 집이 이렇게 커다란 집이 되어 떡 버티고 있으니, 그리고 그 집은 여전히 막냇동생이 주인이라니.
그리고 큰아버지는 어제 별이 되어 내일 발인을 앞두고 있다. 이렇게 한 시대가 저물어간다. 가만히 그의 기억을 더듬다보니 모르던 시절의 이야기가 전해졌다. 이 집의 역사가 말이다.
어떤 집이든 그 집만의 이야기가 있다. 한 자리에서 이렇게 버틴 이도 있고, 여러 집을 거쳐간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꿰고 보니 마치 구비문학 같은 기분이 들어 남겨본다. 당신의 집은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궁금하지 않나.